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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A>(2010), 레인보우] 에이엄 앤섬(anthem) 만들기, 레인보우의 ‘A’: 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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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작성일 2026-10-1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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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Rainbow), <A>, DSP미디어, 2010.08.12. 발매


#에이엄브렐라 #무성애 #레인보우_A #케이팝 




레인보우 ‘A’ 뮤직비디오1)





1. 여돌과 게이, 그리고 게이가 아닌 우리



아는 사람들은 아는 신촌의 술집 ‘더빠’에서의 각별한 추억으로 시작하려 한다. 20년 넘게 건재한 그 바는 근처 대학생(및 청년(?))들의 아지트가 되었는데, 사장님의 운영 철학 덕분에 누구에게나 오픈된 공간이다. 그래서 근처 생활권 퀴어들이 그곳을 사실상 점령했다. 내가 자주 드나들었을 때는 2018년이었는데, 얼추 밤 10시가 되면 음악은 케이팝으로 바뀌고 적당히 취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때 주로 나온 케이팝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중반 여자가수 노래이다. 엄정화의 ‘포이즌’('98), 손담비의 ‘토요일밤에’('09),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10) 등 전국민이 모를 수 없는 노래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게이들이 사랑하는 K-디바 플레이리스트에 가까웠다는 것이 가장 퀴어했다. 게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고, 레즈비언들은 (모두가 알다시피 춤을 추지 않기 때문에) 구경하고, 나머지 ‘젠더아리까리’들, ‘바이/팬/폴리’들은 알아서 적당히 끼는 그 공간에서 비퀴어들은 다소 어리둥절하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표정으로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더빠는 나에게 꽤나 유토피아적인 이미지로 남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곳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긴다.

그런 역전과 재전유가 당연시되는 공간에서 나는 내 친구와 함께 비밀스러운 ‘재재전유’를 도모했는데, 그 대상은 바로 레인보우의 ‘A’('10)라는 곡이다. 소위 ‘아이돌 2세대’라 불리는 레인보우 역시 같은 세대 아이돌 티아라 등과 함께 자주 나왔다. 레인보우의 ‘A’가 나오면 게이들이 춤추는 사이에 나와 친구(에이엄)는 이 노래를 에이엄의 노래라고 비밀스럽게 ‘재재전유(?)’하는 놀이를 하곤 했다. 게이가 여돌 춤을 끼 떨며 추면서 ‘재전유’한다면, 그 사이에서 에이엄 노래라고 해석하며 같은 춤을 추는 에이엄 둘은 그 곡을 ‘재재전유’한 것이 되지 않을까? 어쨌든 모두가 레인보우의 <A>에 맞춰서 신나게 춤추고 있으니 하나가 된 기분이긴 했다. 가시화 덜 된 여성 패씽 에이엄 둘과 게이들이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작고 오래된 술집이라는 무대라는 것 자체가 그 노래를 더욱 퀴어하게 만든다. 





2. 이러한 해석은 농담 반이기도 하지만 진담 반이기도 하다



레인보우의 <A>는 2010년에 발매된 싱글이다. 앨범을 관통하는 컨셉이 없을 뿐더러 뮤직비디오를 봐도 의미화 가능한 정도로 디벨롭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 당시 여자 아이돌에게 요구되었던 평균적 수준의 성상품화 코드가 보인다. 짧은 치마 또는 핫팬츠, 시그니처 춤은 윗옷을 벗는 것 같은 몸짓을 따온 춤. 이것을 어떤 진보성(이 시대 퀴어 담론이 위치해있는 곳)과 연결 짓기에는 무리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에이엄인 친구와 ‘퀴퍼에서 틀어야 하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 곡이 다시 생각났다. 그룹명이 ‘레인보우’라는 점이 ‘A’라는 제목의 의미를 ‘에이엄브렐라’의 약어로 해석할 수 있게 해준다. 심지어 앨범 커버조차 ‘레인보우’와 ‘A’ 타이포를 무지개색으로 칠한 것이다. 나와 친구는 우리가 더빠에서 했던 ‘재재전유 놀이’와 앨범커버를 바탕으로 가사도 우리식으로 해석하면서 ‘이건 확실하다’라는 확신어린 말을 하곤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농담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날 의미화한 것을 거짓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이 농담 이후로도 레인보우의 ‘A’가 에이엄 노래임을 주변에 설파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농담’ 이후 우리는 이것이 진짜로 에이엄 개인의 정서를 담아내는 것 같다고 느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해석은 반쯤 농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진담이기도 하다. 그 해석을 우리가 가장 익숙해하는 작품 분석의 방식(한국인 대부분이 통과하게 되는 국어과목의 시 해석 방법)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A AAA A AAA A AAA

반복으로 강조. 이 음악이 에이엄(A-umbrella)을 위한 음악이라는 것을 암시함.

just U'r collection line

ez acess line 스스로 매인 AAAA

(에이엄 당사자, A들이) 유성애중심주의적 사고에 스스로 매이다.

그렇게 갇혀서 쌓인 니 깊숙히 패인

유성애중심주의적 사고에 스스로 매여 ‘정상성’에 갇힌 ‘너’.

→ ‘너’의 내적 모순과 불만은 쌓여만 감.

→ 그렇게 ‘너’의 내면에 상처가 점차 깊숙히 패임.

나아아 나아아 나아아 오 (후렴구)

그저 감출 뿐이야 허술한 포장에

연애섹스에 관심이 없거나 연애섹스에 대한 욕망이 없다는 것을 감추는 것임을 폭로.

허술한 포장: 관심있는 척 주류에 어울리는 것을 이르는 비유.

훌쩍 숨겨버린 너의 현란한 스타일

허술한 포장과 대응. “디나이얼”임을 암시.

허울좋은 허상 일뿐 진실이 될 수 없어

로맨스에 대한 환상은 허상이라는 것을 드러냄.

(유성애중심주의는) 널 내리 누르고 또 조르고

뭘 모르고 또 바라고 있어

: 사람들은 ‘너’가 에이엄인지 모르고 수행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의미.

A! oh oh oh oh oh oh oh woo~

= 에이엄을 이르는 말(약칭).

just A! A! oh oh oh oh oh oh oh woo~

= ‘너’는 그저 에이엄(A)인 것이다.

(love*)그게 흔하니 (love*)사랑*이 흔하니

사실은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개념이 현실에 흔하지 않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부분.

* 주류적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의미.

** 에이섹슈얼리티에서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사랑’으로서의 의미. 이 경우 “로맨틱한 사랑”에 한정되지 않고 우정, 가족애, 동료애, 그리고 그 외 형태의 애정을 포괄한다.

(love*)쉽게 다 change a love** 갈아타 갈아타 oh

사랑의 개념을 다른 범주로 갈아타라는 인식 변화를 촉구.

(love**)적어도 너만은 (love**)세상에 너만은

(love**)소중히 여길 수 있길 있길

자신의 에이엄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소중히 하라는 교훈.

just U'r collection line

ez acess line 스스로 매인 AAAA

그렇게 갇혀서 쌓인 니 깊숙히 패인

나아아 나아아 나아아 오

woo!

A! oh oh oh oh oh oh oh woo~

just A! A! oh oh oh oh oh oh oh woo~

그저 서툴 뿐이야 두꺼운 화장에

자기 자신을 감추고 ‘정상성’에 맞춰 수행하는 것을 ‘두꺼운 화장’이라고 비유함.

= ‘정상성’에 맞춰 수행하는 것이 서툰 에이엄 당사자들

한껏 묻혀버린 너의 진실된 맘

에이엄 당사자들의 진실된 마음은 ‘묻혀버리’고, 그들의 진실된 마음(일상 속 수행으로 드러남)은 모두 유성애정상성에 끼워 맞춰진 채로 해석되곤 함.

매일 같은 위선일뿐 영원히 갈 수 없어

= 에이엄 당사자가 ‘정상성’에 맞추어 연애를 수행하더라도 그것은 ‘위선’과 다름없으며, 그 ‘(수행으로서의) 사랑’은 ‘영원히 갈 수 없’음을 반-자조적으로 표현.

널 내리 누르고 또 조르고

뭘 모르고 또 바라고 있어

love 그게 흔하니

(love*)그게 흔하니 (love*)사랑이 흔하니

(love*)쉽게 다 change a love** 갈아타 갈아타 oh

(love**)적어도 너만은 (love**)세상에 너만은

(love**)소중히 여길 수 있길 있길

just U'r collection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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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갇혀서 쌓인 니 깊숙히 패인

나아아 나아아 나아아 오

똑바로 나를 바라보라고

에이엄 당사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똑바로 자신을 바라봐달라(에이엄 정체성을 인식하고 받아들여달라)고 요구하는 말.

가면은 버려 가라가라고

디나이얼 시기에 '정상 연애'를 수행하느라 쓴 ‘가면’을 버리겠다 다짐하는 부분.

네가 원하는걸 말해보라고

중의적 의미로 읽을 수 있음.

(1) 에이엄 당사자인 ‘나’가 진실로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스스로에게 요구한다는 의미.

(2) ‘나’와 연애를 했던 유성애자들(‘너’)의 요구를 잘 이해하지 못해 결국 ‘원하는 걸 말해보라’고 요구하게 된다는 의미.

난 달라 좀 달라 넌 몰라 

‘나’가 에이엄 당사자, ‘너’가 연애수행을 했던 유성애자.

→ ‘나’는 에이엄이라 좀 다르다, ‘너’는 정상성에서 비껴나간 ‘나’를 모른다는 의미.

내 색깔은 레인보우

에이엄도 퀴어(성소수자)의 일부라는 것을 가시화하려는 시도.

진실에 목 메인 girl(화자가 여성임을 유추할 수 있음)

유성애중심주의와 “로맨틱한 사랑”은 이데올로기라는 진실.

love* is pain 지금 넌 부족해

무성애자로서 그동안 해왔던 사랑(love)*은 고통(pain)이었으며, “지금 넌 부족해”라는 식의 ‘진실된 사랑’ 내지는 ‘진심’을 요구받았던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를 고백.

가식이 진실을 진실이 가식을

중의적 의미: 

(1) 가식: 정상성 수행으로서의 연애

진실: 에이엄 당사자의 진실된 애정, 그러나 정상성과 먼 수행

(2) 가식: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개념

진실: 유성애중심주의는 이데올로기라는 사실

수백번 덮어서 눈을 멀게 하잖아

= 이데올로기의 문제점

적어도 너만은 그래도 너만은

화자가 여전히 ‘너’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음

똑바로 날 바라 보길 보길

= 자신의 에이엄 정체성을 이해해달라는 요구

(love**)적어도 너만은 (love**)세상에 너만은

(love**)소중히 여길 수 있길 있길

여기서의 ‘너’는 화자(‘나’)로, 스스로에게 소중히 여기라는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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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갇혀서 쌓인 니 깊숙히 패인

나아아 나아아 나아아 오




읽다가 헛웃음이 나왔다면 성공이다. 일차원적인 가사를 고도의 은유로 선해해주기, 없었을 의도를 맥락을 어떻게든 끌어와서라도 만들어내기, 중독성 있는 후렴구에 상징성 부여하기 등이 애잔한 노력으로 보이기도 하다. 그게 퀴어의 독해 방식이라고 주장하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하지만 직접적으로 발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브텍스트로만 존재하는 퀴어 코드들을 찾아내려고 몸부림치던 문화적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무리수 해석’은 ‘무리수’이기 때문에 퀴어 비평이 될 수 없을까? 종종 남성중심적인  문화비평을 볼 때면 ‘무리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한 것들과 위와 같은 ‘놀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비평과 분석의 타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물론 이런 것들을 하나씩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텍스트에서 퀴어함을 발굴할 때(퀴어 비평을 할 때) 요구되는 타당함의 척도가 다른 경우와 동등하지 않다는 점에서 지금은 타당함에 대한 검증이나 인정을 포기하고 선언을 하고자 한다. 우습겠지만 타협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깃발을 꽂는 행위이며 낙관적으로 보자면 개척 정신이라 할 수 있고 자조적으로 표현하자면 침탈이겠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현대 퀴어 담론이 친절하게 옹호해준 바로는, 재전유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여기서 재전유의 목표는 새로운 질서이다. 이것이 절대적이고 불변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할 생각은 없고, 행정적이거나 제도적인 성격조차 아니다. 이 새로운 질서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문화적인 측면에서 공유되는 암묵적 룰에 가까운 것 같다. 따라서 목표가 새로운 질서라는 말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문화적 질서가 내 질서이기를 바라는 다소 천진난만한 바람일 수 있겠다. 

여기서의 ‘나’는 단지 이 노래에 맞춰 술집에서 같은 퀴어들과 광란의 춤을 추고, 같은 퀴어 친구와 이 음악의 상징성에 대해 농담하고, 가끔 기분이 처질 때 이 음악을 들으며 남들은 모를 은밀한 서브텍스트를 알고 있다는 짜릿함으로 하루를 보낼 에너지를 찾는 지극히 평범한 개인이기 때문에 내 질서를 주창하고 강요하고 새 진리로 떠받들어야만 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이 세계에 어떠한 영향력도 없음을 알고 하는 유희인 것이다. 

그러나 운 좋게도 이 재전유가 성공한다면 재전유된 것이라는 사실조차 남지 않도록 덮어쓰기할 결단이 있다. 그래서 원래의 의미와 재전유된 의미가 서로 뒤섞여 무엇이 먼저였는지 모르는 상태의 카오스가 될 것이다. 나는 그 혼란 속에서 단 하나의 질서를 가리키고자 한다. 


모든 것은 퀴어하다. 퀴어가 그렇게 말했기(읽어냈기/보았기/이해했기/즐겼기) 때문이다.


이 질서는 ‘아니다. 아닌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라는 대칭적 선언으로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세계를 무너뜨릴 만큼 위험한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 선언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이 드러내는 점은 경계하는 이가 내면화한 권위주의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선언 아래에서 가장 먼저 하고자 하는 유희는 다음과 같은 농담이다. 레인보우의 <A>는 에이엄브렐라라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시화하는 에이엄 앤섬(anthem)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되는 로맨틱한 사랑을 수행해야만 하는 압박으로 ‘허술한 포장’에 스스로를 ‘감출 뿐’인 화자는 결국 ‘세상에 너만은/소중히 여길 수 있길’이라는 말로 자신의 다름을 긍정한다. 수행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정상성에 맞추려다 실패한 사랑과 인간관계는 ‘매일 같은 위선일 뿐 영원히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똑바로 나를 바라보라’고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가면은 버’리고자 한다. 에이엄 정체성은 성애의 대상이나 성 정체성의 문제보다도 기존의 유성애적 문화에서 비껴간 것에 가깝기 때문에 퀴어 정체성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다는 맥락이 있는데,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보면 ‘내 색깔은 레인보우’라는 구절이 무엇을 선언하고자 하는지 유추할 수 있다. 에이엄브렐라 스펙트럼의 개인 역시 퀴어라는 것이다.2) 이러한 선언 후 화자는 타인에게 ‘똑바로 날 바라보길’이라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를 요구한다. 이 곡의 노랫말이 에이엄브렐라 정체성을 가진 개인임을 알려주는 결정적 단서는 ‘A’라는 제목과 ‘A’가 반복되는 후렴구이다.





3. ‘선언’과 퀴어




퀴어 비평은 퀴어 당사자가 창작했는지, 퀴어 당사자의 경험을 의도적으로 녹여서 창작했는지, 퀴어 가시화를 위한 작품인지를 위주로 논의되곤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작품에 퀴어임을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현실의 퀴어가 그대로 전사될 것을 요구하기도 하며, 그것에 따라 리얼리즘의 결여를 지적하거나 정치적 의미의 결여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것이 ‘퀴어 작품’의 ‘퀴어성’을 담보하는 지표인 것인 양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퀴어가 어떤 작품을 어떻게 소비하고 즐기고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잘 축적되지 않는다. 퀴어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임에도 필사적으로 가져와 삶의 중요한 조각으로 삼고 있는데도 그것이 포착되지는 않는다. 가령 애니메이션 〈봇치 더 록!〉3)의 주인공 ‘봇치’ 고토 히토리를 트랜스젠더라고 해석하는 당사자는 수도 없이 많지만 정작 그 작품에서 그 인물이 트랜스젠더임을 암시하는 장치는 거의 없다. 오로지 주인공이 대인기피증이 있는 ‘아싸(아웃사이더)’라는 점과 캐릭터 디자인이 트랜스젠더 플래그 색인 분홍색과 하늘색이라는 점을 두고 트랜스젠더 당사자인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굴절적 해석들이 전통적 비평의 영역에 걸맞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모두 ‘오타쿠’적이고 자의적인(따라서 무의미한) 해석이기 때문에 기록에 남을 수 없게 되는 현실은 다소 씁쓸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은 마음 편히 나를 투사할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상징을 끌어와서라도 의미화해야 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퀴어 당사자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퀴어로서 살아가며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 중 하나인 셈이다. 

우리가 퀴어인 이유는 우리가 퀴어라고 스스로 결정하거나 선언했거나 이미 그렇게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처럼 작품 내외적 담론이 ‘퀴어’와 큰 연관이 없더라도 퀴어 당사자인 내가 퀴어한 내용으로 해석하고 있고 퀴어한 맥락으로 감상하고 있다면 퀴어한 작품인 것이다. 그리고 해당 작품에 대한 퀴어한 맥락 또는 퀴어한 감상이 ‘없어’ 보이는 것은 그것이 발화되지 못했거나 기록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나의 향유 방식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퀴어링(퀴어하게 읽기)’이다.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는 복수태”4)라는 익히 알려진 선언을 통해 앞선 ‘무리수 비평’이 더 이상 무리수로 자조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 더 밀어붙여 보고자 한다. 나에게 레인보우의 ‘A’라는 노래는 내가 이 노래를 소비하는 맥락까지 포함된 텍스트이다. 그 맥락에는 내가 에이엄이라는 정체성을 스펙트럼상으로 갖고 있다는 자기선언과 에이엄 정체성과 이 노래를 연결지어 재재전유 놀이를 할 수 있었던 더빠라는 공간에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같은 에이엄 친구들에게 이 곡이 에이엄 노래같다고 소개하며 들려줬을 때 친구들이 가사를 보자마자 단박에 공감간다는 말을 들었던 맥락도 포함된다. 이것이 레인보우, ‘A’라는 텍스트의 여러 복수태 중 하나이다. ‘텍스트는 기호에 비해 접근하거나 체험되는 것’이다. ‘기표는 입구가 아니’고, “의미로서의 뒤늦음”5)이기 때문에 레인보우의 ‘A’는 비로소 에이엄 앤섬(anthem)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 https://youtu.be/QnAhnxmSNFw?si=HJ372m-mmKqmnoDv

2) 무성애자가 영어로 ‘Asexual’이기 때문에 무성애 스펙트럼을 하나의 우산 아래에 있는 여러 정체성이라고 통칭하여 ‘에이엄브렐라(A-umbrella)’라고 부름.

3) 하마지 아키 작가가 호분샤 《망가 타임 키라라 MAX》에 연재 중인 4컷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4) 롤랑 바르트, 김희영 역, 『텍스트의 즐거움』(2002), 동문선, 42쪽.

5) 위의 책,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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