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레즈비언 정치도전기>(2009), <불온한 당신>(2015)] 관객을 어떻게 운동에 ‘동참’하게 만들까: 지효 > 전지적 퀴어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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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작성일 2026-03-2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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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정치도전기(The Time of Our Lives)>, 홍지유·한영희 감독, 2009.

<불온한 당신(Troublers)>, 이영 감독, 2015.



#관객성 #다큐멘터리 #카메라 #정치








관객을 어떻게 운동에 ‘동참’하게 만들까:

〈레즈비언 정치도전기(The Time of Our Lives)〉(2009, 홍지유·한영희),

〈불온한 당신(Troublers)〉(2015, 이영)을 통하여










1. 서론: 퀴어 영화의 접촉과 교신


대학 동아리와 PC통신으로 가시화된 1990년대 중반의 성소수자 문화와 한국퀴어영화제의 시초인 무지개영화제의 2001년 출범 등은 한국의 퀴어 영화를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게 했던 사건 중 하나다. 많은 퀴어 영화는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실험하는 동시에 정치성을 전면으로 지향해왔다. 이 말은 한국의 모든 퀴어 영화가 ‘인권 운동’으로 기능한다거나 그 점을 지향해야 함을 뜻하지 않는다. 이 말은 퀴어 영화와 비평의 (무)의식 속에 인권 담론이 일종의 정동으로 훈련됐다는 의미에 가깝다.

정동 이론가 사라 아메드는 정동을 개별적인 심리학적 기제보다는 신체적인 공간과 사회적 공간의 맥락을 구성하는 접촉으로 분석하며, 따라서 정동을 몸과 몸을 연결하는 동적이고 집합적인 방식으로 주시해야 함을 주장했다.1) 퀴어 영화는 정동의 동적 효과를 통하여 타자화된 몸들 간의 접촉면을 적극적으로 구축한다. 이 교신은 스크린을 마주한 관객으로까지 ‘연대감’이 확장될 수 있고, 그것을 정치적 저항의 시작점으로 삼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퀴어 다큐멘터리는 적극적으로 공감각적 감정을 구축해왔다.

이 글에서 다룰 다큐멘터리 〈레즈비언 정치도전기〉(2009, 홍지유·한영희) 〈불온한 당신〉(2015, 이영)은 모두 정동을 통한 감정의 연대를 스크린 내외부에서 실험한 텍스트이다. 본고는 이 두 작품을 통해 퀴어 다큐멘터리가 ‘연결’의 정동을 사용하여 어떻게 관객성을 규합하고 퀴어 정치의 상상력을 구성하는지 의논하고자 한다.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를 만든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한국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정치인’ 타이틀을 가진 최현숙의 선거운동을 소상히 기록했다. 이 공적 커밍아웃 정치가 말하는 퀴어 정치는 친밀한 퀴어 공동체로 수렴했다. 〈불온한 당신〉은 퀴어 선조와 현재의 소수자 간의 교신을 담았으며, 혈연이 아닌 유대로 이루어진 이 계보학은 소수자를 혐오 정치에 맞서는 현재의 주체로 형상화했다. 이 두 작품을 통해 퀴어 다큐멘터리는 재현의 도구를 넘어, 퀴어 아카이브를 유연하고 비균질적인 만남과 망각 그리고 전유의 가능성으로 직조하는 도움을 것이다.



2.1. 다큐멘터리 분석: 퀴어의 카메라와 그들의 관객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와 〈불온한 당신〉은 활동가이자 예술 노동자인 주체들이 제작했다. 따라서 두 작품 모두 소수자 정치를 보편성의 범주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다만 두 작품을 만든 배경에 시차가 있기 때문에, 이 지점을 먼저 짚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는 이명박 정권 출범 첫해인 2008년에 만들어졌으며, 이 배경에는 IMF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하다. 불온한 당신〉은레즈비언 정치도전기이후 6년이 흐른 후 나온 작품으로, 신자유주의의 공포라고 볼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절박한 정서’가 공고화된 현실을 다뤘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젠더, 지역, 성소수자, 장애,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는 그 극단성이 도드라질 정도로 광장에서 돌출적으로 발현됐고, 이는 〈불온한 당신〉이 중요하게 고발하는 지점이다.

다큐멘터리는 흔히 현실에 대한 객관적 기록물로 여겨지지만, 다큐멘터리의 피사체인 ‘날것’의 실재는 촬영 행위가 시작되는 순간 변형된다.2) 두 작품에서 카메라는 언제나 거리나 광장의 한복판에 존재했고, 따라서 이 카메라는 피사체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며,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정동의 파동으로 ‘현실’을 조립했고, 관객을 적극적으로 연루시켰다. 퀴어 관객은 영화 속 고통과 환희에 공명하는 주체가, 비퀴어 관객은 퀴어 정동을 감각적으로 경험하면서 불편함과 죄책감, 혹은 연대감을 환기하는 감정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정보의 박제나 재현물을 넘어서, 관객을 정치적 행위의 일환으로 호명하고 감정 공동체·연대체로 호출하는 퀴어 다큐멘터리의 기능을 보여준다. 즉, 두 텍스트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와 〈불온한 당신〉은 퀴어 정동을 통해 퀴어 공동체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담론화한다.

먼저,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는 2004년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으로 발족하여, 퀴어·사회적 참사·노동 운동 등의 사회적 의제를 성실히 기록해온 다큐멘터리 제작 집단인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가 만든 공적 커밍아웃 정치의 아카이브다. 연분홍치마의 홍지유와 한영희 감독은 최현숙과 선거본부 구성원(이하 선본원)이 선거를 준비하고 14일간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담았다. 최현숙은 기혼 상태에서 커밍아웃하고 남편과 이혼한 40대 레즈비언으로, 오랫동안 진보 운동에 몸담고 있었다. 그는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종로구 국회의원 기호 6번으로 출마했다. 진보신당 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당당하게 커밍아웃하면서 대중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소수자 정치의 소신을 밝혔다.

카메라에 담긴 최현숙은 쉴새 없이 선거 유세를 하는 모습이었다. 열정적으로 유세를 이어가던 최현숙은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본부 바닥에 드러눕거나, 동료들 앞에서 고민을 털어놓는다. 최현숙의 노고를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얼굴에 가까이 달라붙는 카메라의 렌즈는 그를 '언니'라 부르며 애정 어린 시선을 아끼지 않았다. 이곳의 카메라는 영화의 거리두기 문법을 거부한다. 전지적 시점을 취득하지 않은 카메라는 피사체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그 대상과의 정서적 교류를 암시하는 클로즈업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초월적 시점이라는 권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카메라와 촬영 대상을 '동등한' 주체로 직시하려는 다큐멘터리의 기법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야기로 펼쳐지는 논쟁, 비판의 근거를 제시하는 지성, 주체인 동시에 관찰자, 그리고 사건인 동시에 그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는 현대 다큐멘터리의 의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3) 이곳의 카메라/시선은 최현숙과 선본원을 영웅이라는 불리는 타자로 만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들이 감당하는 피로의 총체를 모두 껴안듯이 살갗에서 살갗으로 전달했다.

거리두기를 포기함으로써, 연분홍치마의 카메라는 연대로서의 길을 시각화했다. 한마음 한뜻으로 최현숙의 득표 결과와 낙선을 자신의/우리의 업적처럼 축하하는 다양한 정체성·성 지향성을 가진 연대체는 밤샘을 불사하고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이들은 최현숙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가족 같은 동지들이었다. 이 수사는 비단 스크린 안에서만 적용되지 않는다. 공동체 감각은 곧 설렘이나 뭉클함 등의 정서로 관객으로까지 확장된다.4)

〈불온한 당신〉은 고통의 정서를 더 강조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영은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영화감독이자 여성주의 영화단체 ‘움’의 대표다. 그는 〈이반검열〉(2005),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2007)와 같이 적극적으로 한국의 몸 검열과 퀴어 역사를 되짚는 작업을 해왔다. 〈불온한 당신〉에서 그는 적극적으로 카메라의 권위를 사용하며,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난무했던 현장을 고발하는 무기로 사용한다.

〈불온한 당신〉 시놉시스는 ‘다큐멘터리 감독인 나는 “당신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비난하는 이들을 만났다’5)로 시작한다. 이영은 직접 혐오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퀴어로서, 본인의 의지를 강력하게 대변하는 일인칭의 눈으로 카메라를 사용한다. 카메라는 곧 예술 노동자이자 퀴어 활동가의 눈이고, 그 눈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극렬한 혐오에 직면한다. 그래서 〈불온한 당신〉은 청각적으로도 비위의 관점에서도 시끄러운 다큐멘터리다.

〈불온한 당신〉은 바지씨 이묵의 구술사와 3.11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일본 레즈비언 커플의 인터뷰, 그리고 광장에서 벌어지는 혐오라는 세 가지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면은 바지씨 이묵이 고향 여수에서 이영 감독과 함께 일상을 보내는 씬이다. 이묵이 이영을 퀴어 후배로 여기며 그와 교감하는 초반 시퀀스의 평화는 혐오 세력의 적나라한 폭력의 인서트로 인하여 완전히 산산조각 난다. 

성북구에 자신과 같은 바지씨가 많이 살았다는 이묵의 말에 이어진 장면은 성북구라는 청정 지역이 불결한 퀴어 서식지로 바뀔 거라고 소리 지르는 혐오 세력의 시위다. 성북구청 인권조항 제정, 서울시학생인권조례 제정, 서울퀴어퍼레이드, 세월호 유가족 진상규명 시위에 난입하는 혐오세력을 담은 장면이 뒤이어 이어진다.

이영은 이 혐오의 발화와 폭력을 매우 길고 자세하게 잡았다. 그렇기 때문에 〈불온한 당신〉은 물리적으로 시끄러운 영화다. 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악다구니와 고함. 패드립, 종북 세력, 빨갱이, 기독교의 죄악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 삿대질, 밀치기, 몸빵, 퀴어퍼레이드 차량 밑에 기어 들어가기와 같은 위협. 

카메라의 시선과 동일시 되기 마련인 관객은 이 엄청난 시청각적 폭력으로 인하여 한 무리의 ‘박해받는 자들’로 결집된다. 무수한 혐오 워딩과 난동을 여과하지 않고 기록함으로써, 이는 윤리에 대한 비위 문제를 끌어내며, 관객을 고통의 현장 한가운데로 배치한다. 그 순간 관객은 정말로 ‘물리적으로’ 스크린의 소수자가 받는 차별을 함께 겪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2.2. 다큐멘터리 분석: 복수 또는 포기


성북구청 인권조항을 반대하는 혐오 세력을 찍던 이영은 수상해보인다는 이유로 촬영을 제지받는다. 이영은 분노를 감추지 않으며, 카메라에게 “야, (이거까지) 찍어.”를 외친다. 퀴어퍼레이드의 혐오 세력에게 바싹 붙어서 그들을 미동 없이 찍는 이영의 모습은 다른 스텝의 카메라에 의해 다큐멘터리에 기록된다. 이영의 분노를 담은 기록물은 다큐멘터리 속 현실로 조립되며, 이에 극장 안 관객들은 스크린 속 퀴어가 받는 ‘박해’에 동기화 된다. 〈불온한 당신〉이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촬영 방법론을 채택해야 했던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이 다큐멘터리가 신자유주의의 타자 혐오의 시대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세월호 유가족의 진상규명 시위가 받았던 탄압은 ‘상식’을 넘어서는 조롱, 맞불집회, 온라인 상의 언어 폭력, 국가의 방치와 극우세력의 육성 등이 폭발적으로 가시화된 ‘조직화된 혐오’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유가족들은 퀴어처럼 광장에서 모욕 받고 존엄성이 훼손당해도 괜찮은, 또다른 ‘비시민’ 피해자로 그려졌다. 이러한 연상법은 이영의 또 다른 문제 제기다. 세를 불리는 혐오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로 인한 국가폭력을 암시하고, 한국 사회의 비시민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이나 행위와는 상관없이 생명권을 박탈해도 마땅한 ‘빨갱이’가 된다. 실제의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시민에서 탈락한 주체들 누구나 빨갱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빨갱이는 궁극적으로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는 기표다.

그러나 이 혐오 워딩은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한국의 극우 세력에게는 여전히 매우 유효한 지표이기도 하다.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한 저복지 국가, 과거청산을 완수하지 못한 포스트콜로니얼 국가에서 극우 정치적 활동은 곧 자신의 존재 의의를 국가의 명예에서 찾으려는 전통주의자의 인정투쟁에 가깝다.6) 사회적 인정을 목표로 한다는 지점에서 혐오세력은 여타 인권단체와 겹치는 정서를 가질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이영의 카메라는 혐오의 복합적인 맥락과 미묘한 정동을 정교하게 담지 않았다.

오히려 카메라는 혐오 세력을 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절대로 통하지 않을 거라는 공포감을 선사하는 존재로 그렸다. 이는 끊임없이 요구가 무산되고, 항변조차 가로막힌 채 온갖 훼방과 난동을 맞닥뜨린 이영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이 분노는 곧 복수로 이어진다. “‘당신’이 나를 혐오한다면, ‘나’ 또한 당신을 혐오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카메라의 권력에 기댄 복수심은 ‘그들’을 완벽하게 비이성적이고 추한 존재로 타자화/덩어리화 한다. ‘그들’은 아예 대화가 불가능한 존재로 상정되며, 관객들이 혐오 세력에게 감정이입 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배제된다.

이를 통해 관객을 ‘저쪽이 아닌 이쪽’ 편에 선 가상의 연대체로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을지도 모르나, 투쟁하는 퀴어와 혐오 세력을 명확한 권력 관계로 양분해버린 이분법의 렌즈로 인하여, 활동가들이 무력한 피해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곳에서의 퀴어는 경계를 퀴어링하기 보다는 언제나 탄압받는 자, 그리고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극심한 혐오에 내몰린 자로 형상화된다. 즉, 카메라의 복수가 소수자의 무력함을 강조하는 처사가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난입했을 때, 마이크를 뺏긴다. ‘그들’의 고함과 윽박에 변변찮은 항변조차 막힌다. ‘우리’의 논리는 ‘그들’의 비논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것이 된다. 퀴어 축제는 자긍심이 넘치거나 즐거운 것이 아니다. ‘그들’이 당당하게 ‘우리’가 절멸되어야 한다고 광장에서 말할 때, ‘우리’는 스스로 대변할 있는 순간조차 잃어버린 존재다. 결국, 정치적 주체로 등장한 소수자는 낙인을 그대로 흡수하며 린치와 폭력에 압도당한다. 카메라가 찍어누르다시피 담은 거대한 혐오는 소수자가 사는 세상의 폭력으로 비대해진다. 결국, 이 소수자 광장의 아카이브는 무력함을 강조하게 된다.

반대로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는 이러한 적나라한 혐오의 모습을 담지 않았다. 물론, 담지 않았다고 해서 폭력적인 아웃팅이나 협박, 위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현숙은 자신의 생각보다 심각한 린치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러한 순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인터뷰했다.7) 그러나 연분홍치마는 의도적으로 그러한 순간들을 제거하거나, 기록하더라도 마로니에 공원에서의 유세 시퀀스처럼 순화하여 담았다. 그럼으로써 드러나는 정서는 무관심이다.

비퀴어 시민들은 최현숙의 커밍아웃에 부정도 긍정의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지나치거나 잠시 걸음을 멈출 뿐이다. 이는 당선 가능성이 없는 정치인에 대한 무관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무관심 자체가 소수자 정치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마로니에 공원의 유세 시퀀스에서 나타났다.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시민과, '상관 없다'라고 말한 시민 둘 다 추가 질문에서 정치인의 성 지향성과 성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으며, 일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언뜻 퀴어 프렌들리하다고 읽을 수 있는 이 반응은 사실 전형적인 성소수자의 타자화다. 성소수자는 물론 소수자 정치에 대한 기대와 인지조차 없다는 암시한다.

이 당혹감은 연분홍치마와 최현숙, 그리고 선본원 모두가 인지했지만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이 한계는 최현숙이 창신동 시장에서 거리 유세를 할 때도 여실히 드러났다. 최현숙은 스스로를 '여성 정치인'이라고 말하며, 즉 여성의 정치와 진보적인 정치를 말하며 시장의 여성 자영업자에게 다가선다. 이어지는 인서트는 다양한 중노년 여성들과 교감하는 최현숙의 열정적인 모습이다. 최현숙이 말하는 ‘여성 정치’는 결국 기존의 ‘여성’ 정치인이나 진보 성향 정치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즉, 레즈비언 정치인이 실질적으로는 기존의 정치인과의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최현숙은 소수가 변화시키는 다수의 정치를 꿈꾸나, 실상 그것의 정치성은 기존의 여성/진보 정치인과 다를 바가 없거나, 성다수자에게 성소수자 의제가 모두의 문제라는 시급성에공감’시키기를 실패한 것처럼 그려졌다. 또한 최현숙의 정치의 청사진이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효용성이 떨어졌다는 지점도 있었다. 창신동 선거 유세에서 한 여성 상인은 말한다. “이런 거(명함) 필요 없으니 가져가라고.” 발언할 수 있거나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받지 못한 정치인으로서 최현숙이 할 수 있는 것은 '반짝' 유세밖에 없었고, 그 한계 속에서 최현숙과 선본원은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이 최초의 커밍아웃 정치는 성소수자 정치인으로서의 특징적인 진보성, 또는 기존의 여성 정치인으로서도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인 효능감을 주지 못했다는 점을 암시한다.

다큐멘터리는 최현숙의 공약을 자세하게 소개하지는 않았다. 부분적으로 등장한 그의 공약은 이주 노동자의 인권 보장, 정상가족 중심의 선거법 폐지, 성전환자성별변경법 제정, 차별금지법과 동반자등록법 제정 등이 있었다. 이 의제와 함께 최현숙은 퀴어 문화의 문법을 사용한 선거 유세를 했다. 선거법 폐지 시위를 하면서 최현숙은 정상가족을 타파하는 퍼포먼스를, 마지막 선거 유세가 이루어진 혜화역 4번 출구에서는 최현숙은 크로스젠더 분장을 한  선본원의 퍼포먼스를 통해 '퀴어함'을 보여주려고 한다. 소프트한 수위의 드랙 퍼포먼스에 질겁하는 시민과 '뜻밖에도' 흥겹게 즐기는 시민의 얼굴 둘다 카메라에 담긴 것은 언뜻 ‘현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성소수자가 ‘엽기’ 행각을 드러낼 때만 지나치지 않고 멈추는 얼굴들은 무관심이라는 정동을 강하게 드러낸다.

무관심의 정동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은 없으나, 이 다큐멘터리는 광장의 정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당선하지 못한 최현숙과 동료들은 이제 광장에 나가 운동을 지속한다. 최현숙은 정치는 ‘친구’를 만들어 가는 것이며, 동지들과 함께 광장에서 의지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현숙이 선택한 커밍아웃 정치가 실질적으로 어떤 ‘해방감’을 남길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최초의 레즈비언 정치인이라는 명칭의 '최초'라는 권위는 뭉뚱그려진 광장이라는 결론으로 인하여 일종의 정체된 유토피아를 드러낸다. 이는 퀴어성을 미래로 유예하고, 광장을 낭만화하는 독해이며, 최현숙의 ‘성취’를 모든 퀴어의/대중의 진보성으로 읽는 투박한 해석에 가까울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만들어졌던 2009년은 한국의 진보 정치에 대한 ‘낙관’이 아직 작동하고 있었던 시공간이다. 이 비평글이 쓰이는 2026년은 박근혜 탄핵 집회와 윤석열 탄핵 집회가 일종의 광장 정치의 ‘성공’으로 독해되는 시간선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광장을 정말 대안으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2.3. 다큐멘터리 분석: 시공간의 연결


〈불온한 당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바지씨’를 기록한 민족지학적 성격을 지닌 퀴어 아카이브라는 점이다.바지씨’는 1960년대부터 쓰였던 속어로, 남학8)애인9)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이후 여성 동성연애자 사이에서는 소위 ‘남자 역할’을 하는 레즈비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대로 ‘치마씨·치마양’은 여성스러운 레즈비언, 또는 성소수자―이반과 반대되는 ‘일반’인 이성애자 여성들을 가리켰다. 당시에는 바지를 입은 여성이 매우 희귀했기 때문에 여자가 바지를 입으면 눈총을 샀고, 군인이 아닌 남자들은 대부분 장발이던 시절10)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를 입은 바지씨는 기묘한 존재였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한눈에 젠더 분별이 되지 않는 바지씨는 길거리에서의 일련의 린치를 피할 수 없었다.

동시에 바지씨들이 그렇게 눈에 띄는 존재였기 때문에, 바지씨들은 서로를 포착하여 끈끈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있었다. 한국레즈비언권리연구소에서 발행했던 레즈비언 증언집 시리즈 2“길거리 지나가면 같은 사람은 느낌이 와. 그래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휘파람을 불어. 쪽에서 신호를 알아보고 웃으면 아, 같은 사람이구나 했지. 당시에 그렇게 명동거리에 레즈비언이 많았어.”11)라는 50대 최명환의 증언이 대표적이다.

이영 감독은 이묵을 비롯한 ‘퀴어 선배’들을 만나기 위해서 옛날 신문을 뒤지며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바지씨로 추정되는 ‘선배’의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자신의 부치 레즈비언 용모를 보여주며 ‘후배’라고 스스로 소개했다.12)  당시 이영이 만났던 바지씨 선배들은 이영에게 친밀함을 느끼며 이영의 조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물론, 바지씨는 현대 레즈비언의 펨·부치 문화에서의 부치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맥락과 자장 속에서 생겨나고 멸종한 바지씨라는 퀴어 정체성은 지금으로서는 해석할 수 없는 여백이다. 이영은 바지씨 레즈비언이라는 ‘공백’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첫 시퀀스는 바지씨 이묵의 고향 여수에서 시작되며, 평화롭게 흘러가다가 곧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장면으로 급변한다. 3.11 쓰나미로 인한 깨달음으로 결혼한 일본 레즈비언 커플인 논과 텐의 일상은 이영이 펼쳐내는 끝없는 혐오의 중간에 짧게 삽입된다. 퀴어들의 겪었던 지역도, 시대도 다른 차별과 억압이 ‘지금 여기’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편집이다. 이영의 전략은 친밀성을 기반으로 한 선후배 퀴어 아카이브와 퀴어 정치의 계보학을 획득하지만, 바지씨를 현재의 혐오 정동과 병치시키는 방식은 다소 뭉툭하고 추상적이다.

앞서 말했듯이 바지씨는 현재의 퀴어 정체성으로 포섭될 수 없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가 설정한 연쇄적인 시간성에서 바지씨는 추상화된 퀴어 선배로 패싱(passing)된다. 또한 당연하게도, 이묵이 경험한 혐오와 이영이 경험한 혐오는 다르다. 이묵이 살았던 시대는 1970년대 유신 정권의 서울, 검열의 시대였다. 검열은 21세기 한국에서도 끝나지 않는 문제이나, 당시의 몸의 검열풍속 검열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정당화되었다. 몸의 문제는 수동적인 태도를 요구받았고, 문란성, 퇴폐성, 음란성에 대한 ‘정의’의 철폐가 내려지고는 했다. 따라서, 바지씨가 겪은 억압을 현재의 억압과 결할 때, 몰이해와 추상화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의 민족지학지는 지금 여기의 스테레오타입을 흔들 수 있는 실마리 또한 제공한다. 이묵의 패싱 문제는 도시/시골에 대한 편견을 흔들어놓는다. 바지씨 이묵에게는 농촌이 자신의 젠더를 따져 묻지 않는 무심한 공간이고, 서울이 정상성 이데올로기를 수행하지 않은 주체를 가혹하게 적발했던 공간이었던 것처럼, ‘도시의 익명성은 퀴어에게 더 자유로운 자원을 제공한다’라는 인식에 또다른 틈을 제공한다.13) 서울의 익명화라는 안락함은 공평하지 않다. 젠더, 출신, 나이에 따라 패싱될 있는 자유의 자원은 달라진다.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의 선본원 중 한 명은 자신이 다른 선본원과 다르게 얼굴을 드러낸 채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를 자신이 서울의 대도시 특성에 기대어 설명했던 것처럼, ‘도시―촌락 사고 체계의 이분법적 구분을 감안하더라도, 폐쇄적 성격의 좁은 사회에서는 퀴어 공동체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대도시의 익명성과 개방성이 퀴어성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라는 말은 여전히 성립한다.’14) 익명성에 기대어 '커밍아웃'이 가능했다는 지점으로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는 성소수자가 편히 얼굴을 드러낸 한 사람의 개인으로 존재하기도 어려운 사회라고 한국을 정의하며, 커밍아웃의 정치성과 진보적 힘을 이야기한다.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에서 나온 패싱 문제를 좀 더 살펴보자. 대다수의 선본원들은 그동안 비퀴어로 패싱해 온 것이 탄로날까봐 두려워한다. 다큐멘터리의 몇몇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되었으며, 최현숙의 선거 유세를 돕는 인물 몇몇은 혹시라도 지인이 자신과 마주칠까 봐 가면을 쓰고 불안에 떤다. 이에 대비되게도 최현숙은 커밍아웃을 계속해서 반복하지 않으면, 레즈비언 정치인이 아니라 ‘여성’ 정치인으로 패싱되었다.

퀴어 재현의 스테레오타입인 섹슈얼리티의 과잉 전시로 최현숙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레즈비언을 자연화/일상화 하려 했던 연분홍치마의 의도이며, 이 일상화는 성소수자 가시화의 다변화 전략이었다.15) 그러나 최현숙의 선거 유세는 여성 정치인이 아닌 레즈비언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소수자 정치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지나치게 ‘성공적인’ 패싱으로 인하여 최현숙이 일반적인 여성으로 패싱될 때, 이러한 정동의 지형 속에서 커밍아웃 정치는 과연 타자를 발견하는 정치가 될 수 있는가? 어쩌면 이것은 동일화된 정체성을 반복적으로 선언하는 정치에 가깝지 않는가?



3. 결론: 퀴어한 아카이브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와불온한 당신〉은 모두 ‘퀴어 아카이브’를 시도하는 다큐멘터리다. 그러나 이들이 기록하고자 한 퀴어 정체성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모순과 실패, 반복과 비정형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것이었다. 이는 불완전한 아카이브다. 그렇기 때문에 박제되어 망각될 위험에 처하지 않은 아카이브다. 오쿠이 엔위저의 아카이브 이론처럼, 이 아카이브는 단순히 과거를 축적하는 공간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사유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천적 체계가 된다.16)

〈불온한 당신〉은 혐오의 광장이 끝날 가능성은 요원하다고 말한다.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의 최현숙은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정치인이지만, 그의 정체성은 여성 정치인으로 패싱되며 지워진다. 두 작품 모두 퀴어 정치의 ‘실패’에 직면한다. 그러나 바로 그 실패야말로 퀴어 아카이브가 작동하는 지점일 수 있다. 퀴어는 대문자 역사의 관점에서 ‘말할 수 없음’의 공백에 자리하는 존재이며, 그 공백은 종종 왜곡되고 굴절된 서사로 메꿔진다. 그러니 그 공백을 공백 그 자체로 기억의 대상이자 해석의 지점으로 삼는 것이 퀴어 아카이브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잭 할버스탬이 실패를 일종의 퀴어한 서사로 해석됐던 것처럼, 끊임없이 실패했고, 실패하며, 앞으로도 실패할 ‘우리’는 이제 이 실패를 부정도 긍정도 아닌 그저 수용의 대상으로 받아들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본 글의 퀴어 다큐멘터리는 이 실패를 반복적으로 소환한다. 공동체 상영과 지역 상영,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아웃팅 및 오해를 방지하고 직접적인 해석의 통로를 확보하려 했던 퀴어 영화 감독들의 실천17)은 퀴어성을 안전하고 명확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한다. 해당 글이 다룬 영화의 감독들은 활동가와 예술인의 경계를 나눌 수 없는 기록자들이며, 자신들의 영화 실천을 일종의 퀴어 액티비즘으로 연결짓는다. 그렇기에 그들이 만들어낸 이 실패의 아카이브는 정체성의 증명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의 실패와 반복, 착오와 무력함, 그리고 희망과 운동의 기록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빈틈’ 속에서 또 다른 타자와의 연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최현숙은 선거 유세 중에 대학로에서 경찰이 재능교육 노조를 연행할 때 주저없이 달려간다. 그가 노동자와 함께 투쟁하며 연대의 몸짓을 실천하고, 노들의 천막 야학을 찾아가 자신의 정책을 자세히 소개할 때, 그의 공적 커밍아웃 정치는 연대의 정치, 타자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정체성 정치로 확장된다. 이영이 특정 인물의 몫을 부각하기보다는 다양한 시공간의 시퀀스를 겹쳐놓는 방식으로 세월호 유가족과 퀴어를 연대체로 묶을 때, 이 퀴어 다큐멘터리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기억을 호출할 수 있었다. 물론 현실은 여전히 검열의 세계다. 퀴어영화제에 대한 18), ‘나중에’를 외치느라 2009년 레즈비언 국회의원 출마인이 외쳤던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았다는 점, 퀴어 아카이브 전시를 진행하고 있던 서울시립미술관이 ‘중립적이지 않은’ 평론을 검열하는19) 등 퀴어 아카이브가 자아내는 균열은 승리의 서사로 완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미완결성이야말로, 아카이브가 ‘영원히’ 퀴어하게 작동할 수 있는 지점이며, 지금 여기의 실패가 퀴어 담론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Sara  Ahmed, Affective Economies, Duke  University  Press,  2004,  p.118.

2) 차민철, 『다큐멘터리』,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100-102쪽.

3) 마이클 래비거, 조재홍·홍형숙 옮김, 『다큐멘터리』, 지호, 1997, 23-24쪽.

4) 나라, 「다큐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를 보고 : 감동적인 용기와 열정」, 『행성인 웹진』, 2009. 4. 28.

5) 시놉시스는 조금씩 다르다. 해당 시놉시스는 2020 제21회 제주여성영화제 홍보문에 사용된 글로,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jejuwomen.kr/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265&page=14

6) 김보경, 「누가 역사를 부인하는가―5·18 과거청산 부인의 논리와 양상」, 『트라우마로 읽는 대한민국―한국전쟁에서 쌍용차까지』, 역사비평사, 2014, 358쪽.

7) 노민아·이민하, 「최현숙 인터뷰」, 『공감: 공익인권법재단』, 2008. 5. 29.

8) 「「사바사바」로벼락부자38따라지」 "돈벌어 남주나"‥‥「공갈」등 ⼀般化(일반화)된 俗語(속어)수두룩」, 『조선일』, 1975. 3. 8.

9) 「오늘의青少年(청소년) 脫線豫防(탈선예방)과 善導(선도)를위한 緊急動議(긴급동의) (12) 隐語(은어)」, 『동아일보』, 1978. 4. 21.

10) 박김수진, 「60대 레즈비언, 윤김명우 이야기」, 『문학들』 2018년 가을호, 심미안, 2018, 342쪽.

11) 윤아영, 「국내 여성 동성애자의 장소 형성과 문화 실태」, 『여성연구논총』 13, 성신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소, 2013, 80쪽.

12) 정지혜, 「<불온한 당신> 이영 감독, “혐오를 방치하면 사회 전반의 공기가 된다”」, 『씨네21』, 2017. 7. 20.

13) 루인(배성민)·정희성, 「퀴어와 공간의 관계 재구성 : 영화 〈불온한 당신〉(이영, 2015)의 바지씨 이묵을 통해 한국이라는 공간의 이성애 규범성과 도시-촌락 이분법 탐문하기」, 『공간과 사회』 63, 한국공간환경학회, 2018, 217쪽.

14) 위의 글, 211쪽.

15) 제이, 「(성소수자+진보) × 정치 = ? : 〈레즈비언 정치도전기〉가 던져주는 질문들」, 『여/성이론』 20, 도서출판여이연, 2009, 247쪽.

16) 오쿠이 엔위저, 장한길 옮김, 「아카이브 열병: 역사와 기념비 사이의 사진」(2008), 장한길 블로그(https://hangildoogil.tistory.com/37), 2021. 5. 30.

17) 박지훈, 「한국 초기 퀴어 독립영화의 지향점과 쟁점들: 감독들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문화』 36,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2021, 215쪽.

18) 이예슬, 「“대학 가치 스스로 깎아내려”···퀴어영화제 개막취소에 학생들 ‘부글부글’」, 『경향신문』, 2025. 5. 8.

19) 남웅 평론가의 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도록 게재가 거부됐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에서 확인할 다.

     형석, 「‘계엄 비판’ 글 퇴짜…서울시립미술관 ‘검열’ 논란」, 『경향신문』, 202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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