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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분홍빛 손톱, 아사노 아츠코] 3월, 설레는 첫사랑 이야기: 모글토리, 긱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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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작성일 2026-03-1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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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노 아츠코, 김난주 역, 『분홍빛 손톱』, 까멜레옹(비룡소), 2008


* [지난 게시글]에서 선정한 리뷰입니다.





첫 번째 리뷰

<담담한 문장 속 반짝이는 묘사>, 모글토리(2015-07-21)


#설레는 #청소년 #이단아 #레즈비언 #초능력 #학교폭력 #첫사랑



퀴어 소설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조금 비극적인 냄새가 풍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한 절망, 쏟아질 비난에 대한 두려움, 다수와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괴리감. 퀴어를 소재로 하는 많은 작품들이 내뿜는 이 음험함 때문에 계속 읽다보면 자꾸만 기분이 찜찜하고 우울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은 간질간질하고 가슴 설레는 소설이 읽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다시 펼쳐보고 싶어지는 책 『분홍빛 손톱』.


아사노 아츠코의 장편소설 『분홍빛 손톱』(2008)은 평범한 여고생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주인공, 다카토 루리의 특별한 일 년간을 담은 이야기다. 어느 날 방과 후 옥상으로 불려나간 루리는 세 명의 선배들에게 둘러싸인다. 불러낸 이유는 이전에 루리를 찾아온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너 내 남자친구랑 잤지?” 으르렁대며 사이좋게 따귀 한 대씩 주고받는 소녀들 주위로 까마귀들이 까악까악 신나게 모여들어 구경한다. 그리고 그 순간 돌연 옥상으로 올라온 한 소녀, 아야메 슈코.

루리는 이 까만 안경을 쓴 보기 드문 미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같은 나이대의 다른 여자애들과 달리 엄격할 만큼 직선적이고 담백한 루리와 엉뚱하고 특이한 감수성을 지닌 슈코는 흘러다니는 소문들의 주인공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 공통적인 단어 ― 평범과 이단. 소문을 따라 이어지는 마녀재판에 동성애자와 초능력자는 진절머리를 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소문과 진실 사이에서 자기 자신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주체할 수 없이 술렁이는 마음, 아무렇지 않은 척 포개는 손, 귓불을 간질이는 귓속말. 읽는 사람까지 두근두근 긴장되는 상황을 전하는 어조는 의외로 담담하다. 대신 넘치지 않는 간결함 속에 반짝이는 묘사가 가득 들어차 있다.


“기다려요. 왜 화를 내요?”

“화 안 냈어.”

“화났잖아요.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 화났어. 그것도 아주 많이.”

“왜요, 갑자기?”

슈코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동백 꽃잎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던 햇살이 슈코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빛나는 머리칼은 아련한 향기를 머금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격정이 잘 어울린다. (p.252)


‘동백 꽃잎’처럼 절기에 따라 나뉜 장(章)마다 계절감이 뚜렷하다. 감각적이고 생명력이 느껴지는 묘사는 십대의 요동치는 마음을 생동감 있게 전달해준다. 게다가 주인공 루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때때로 주변 인물로 시점이 옮겨가기 때문에 그다지 길지 않은 작품 내에 많은 이야기를 빈틈없이 담고 있다.

여백이 있지만 불필요한 공백은 보이지 않는 짜임새, 부드럽고 둥근 문체, 읽는 사람까지 가슴 떨리는 심리묘사. 루리의 분홍빛 손톱처럼 은근한 아름다움을 가진,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두 번째 리뷰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 긱또(2016-09-13)

#바이섹슈얼 #여성동성애 #청소년 #성장 #다름


이제 곧 열일곱 살을 맞는 루리의 여름이, 평생에 한 번 밖에 없는 열일곱 살의 여름이 눈부심 속에 시작되고 있었다. (p.43)

아사노 아츠코의 장편소설 『분홍빛 손톱』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교정에 내려앉은 꽃잎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이야기다. 여름을 시작으로, 가을과 겨울을 지나 새로운 봄을 맞는 두 주인공의 계절들은 그동안의 성장 과정에 따라 점차 변화하고 다른 색깔을 덧입는다.

루리와 슈코 두 사람은 모두 학생들 사이에서 터무니없는 소문에 시달리거나 뚜렷한 개성으로 인해 소외당하고 배제되는 인물들이다. 사람에게서 동물의 이미지를 보거나 까마귀와 대화하고 동식물과 친구인 슈코, 그리고 남자를 몸으로 유혹하고 다닌다는 각종 소문에 시달리는 루리. 주위 아이들은 끊임없이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두 사람을 판단한다. 그러나 루리와 슈코는 다르다. 오직 서로에 대해 진심을 볼 줄 알았던 것, 그것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서로의 독특함이나 남다름이 이상한 것으로 해석되기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매력이자 다른 방식의 소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응. 그래도 휴대 전화 때문에 코가 막히는 건 좀 이상하잖아.”
“이상하지 않아요.”
루리는 이상하지 않다고 다시 한 번 말하고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멋있어요.” (p.73)

약간은 신비롭고 종잡을 수 없는 선배, 슈코를 알게 되면서 루리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일견 두 학생의 풋풋하고 달달한 학창시절 연애이야기로만 읽히기 쉽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루리의 성장담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아 보인다. 작품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산뜻한 분위기와는 또 다르게, 『분홍빛 손톱』 안에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는 고민,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과 가정 문제,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자기방어와 보호막 등에 관한 현실적이고 무거운 주제들이 존재하고 있다.

자신의 성적 취향이 두려웠다.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바람을 피우는 것도, 엄마가 살이 찌기 시작한 것도, 언니가 한숨을 쉬는 것도, 다 아무 상관없었다. 그저 자신이 두려웠다. (p.147)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고 로맨틱한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에는, 약간의 당혹감은 있었으나 감정 자체에 문제를 느끼지는 않았다. ‘이래도 괜찮을까?’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회적으로 답습된 생각일 뿐, 그들은 자신의 감정에 문제를 제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성 지향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기가 과거의 루리에게도 있었고, 슈코는 도모야라는 이전 남자친구를 정말로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과거들이 모여 지금의 슈코와 루리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은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는 감정은 그들을 가끔은 걱정케도 하지만 오히려 더욱 자유롭게 해준다. 이들에게 있어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란 자신을 내보이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고, 이것은 가로막히지 않아도 되는 것에 의해 막혀 있는 것일 뿐이다. 둘의 설레는 마음과 서로를 향한 감정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자유 그 자체였다.

알려질까 봐 두려웠다. 자신을 직시하기가 겁났다. 주위의 소녀들은 그렇지 않은데, 이성에게 끌리지 않는 자신이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져 괴로웠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p.238)

자신의 성 지향성을 긍정하기가 어렵고, 약간은 당황스럽고, 털어놓을 곳 하나 없는 보수적인 국가에서 청소년 성소수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생각들은 루리의 독백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 와 닿는다.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인지하고 자신이 주변의 또래 다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당혹스러움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루리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도 하고, 다른 퀴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몰라도 앞으로 많은 것을 알아가면 되잖아. 그런 건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아닐까?” (p.157)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 슈코에 대해 알아가면서 루리는 더 많은 성장을 한다. 자신의 나약한 점과 강한 점을 모두 내보이고 진실된 소통을 하면서 슈코와의 연애 관계를 시작할 때 사계절의 한 페이지는 또 다시 넘어간다.

루리는 항상 우리의 운명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소설 속에서 이야기한다. 비록 지금은 비밀스러운 격정의 사랑처럼 보일지라도, ‘선배, 운명은 바꿀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

손가락에 힘을 준다. 슈코의 따스함이 전해진다. 손끝에서 피를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마음속으로 행복하다고 느낀다.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걷는다. 그 정도의 일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행복을 느낀다. (p.206)

루리와 슈코의 사랑스럽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이 성장 이야기는, 교복을 입고 사랑하는 연인과 손을 잡으며 등하굣길을 걷던 추억을 되살리고 또 그 시절의 스스로를 곱씹어 보게 만든다. 자연스레 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찾고 또 그 안에서 다른 나를 찾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이야기,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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