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영화 <여고괴담 2: 메멘토 모리>(1999)] 백합 소녀의 투쟁: 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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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작성일 2026-02-02 12:01본문

1. 퀴어의 유행
최근 퀴어는 유행 중이다. 이 시건방진 말은 퀴어 상품화 문화 산업의 증가, 퀴어의 정보에 관한 독해력 증대와 활발한 가시화, 개인의 능력을 제1가치로 치는 신자유주의 세계의 고착화, 정체성이 곧 ‘돈’이 되는 세계관 등이 성행함을 뜻한다. 앞서 언급된 다양한 상황으로 인하여, 퀴어로 정체화되거나 규명되는 대중문화 향유층이 성장했다는 점 또한 퀴어의 유행에 한 몫을 했다.
퀴어가 ‘유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유행이라는 단어에 필수불가결로 포함된 불길한 자본주의의 아우라를 차치하고서라도, 유행이라는 맥락은 작금의 퀴어 문화에 꽤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퀴어를 상품화하는 또는 대중화하는 문화 콘텐츠가 양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서브컬처와 순수(?)컬처의 경계를 가르는 것은 다소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나, 가장 대중적이며 보수적인 문화 일반 중 하나인 소설과 영화에서조차도 퀴어가 주목되고 있다는 지점은 흥미롭다. 한국 퀴어 문학에 관한 관심 증대와 퀴어 작가가 현재진행형으로 퀴어 문학을 창작하고 있다는 점,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퀴어 페미니즘 영화에 대한 관심 증대와 그 ‘성과’. 서브컬처는 말할 것도 없이 퀴어 풍년이다. 특히, K-pop이 퀴어 문화를 착취하는 방식과 문화 향유자들의 퀴어에 관한 또는 퀴어한 욕망은 상당히 유서가 깊다.
이 글은 앞서 언급했던 범박한 사례들을 명확하게 정리하거나, 퀴어한 것은 무엇이고 안 퀴어한 것은 무엇인지를 이분법적으로 따져묻거나, 퀴어 유행이 가져올 미래를 질문하는 것 따위에 관심이 없다. 이 글이 궁금해하는 것은 퀴어가 가시화되고 양적으로 증가한 지금의 상황에서 왜 어떤 욕망은 말해질 수 없는 것으로 봉해지는지, 그렇게 유령화된 존재들은 어디로 가는지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이 글은 소녀성이라는 자본주의적 상품을 기본 의제로 가져간다. 소녀는 문화적으로 청소년기라는 상태와 여성성으로 패싱되는 섹슈얼리티를 지닌 존재다. 소녀의 섹슈얼리티는 21세기에 오면서 거대한 소녀 산업을 이끄는 중대한 문화 자본이 됐다. 이 소녀 산업은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 청소년에게 롤모델, 탈출구, 정체화 등 억압이자 해방으로 작동했다. 소녀들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 되라는 ‘걸 파워’를 추구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녀들의 몸과 인격, 그리고 개성은 끊임없이 성애화된 자본과 상품소비의 시장에 포획된다.1) 따라서 소녀성의 재현에서 소녀의 섹슈얼리티는 대놓고 드러내서는 안 되는 치부이자 일종의 무기로 기능한다.
소녀의 섹슈얼리티는 모호한 경계 내에서 가능한 것으로, 이러한 장막은 그녀들이 청소년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청소년이라는 위치는 성애가 허용되지 않는 시간선인 동시에 밝은 미래성을 대표하는 관음화된 공간이다. 대상화된 주체로서 재현되는 청소년은 많은 규칙 아래에 놓여있는데, 따라서 이 시기에는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이성애 또한 탄압 대상이 된다. 동성애를 하는 소녀와 이성애를 하는 소녀 모두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학교, 교복, 출석번호, 나이, 순수함, 미성숙함이라는 인식 속에서 소녀의 섹슈얼리티는 그 자체로 터부, 은폐, 또는 소문의 대상이 된다. 이는 여자 아이돌에게 가해지는 압박과도 맞닿아 있으며, 이 모든 재연은 소녀 산업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욕망 중 하나다. 한국 영화에서 ‘여고생’의 기표를 만든 영화는 〈여고괴담〉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국산의 호러 영화를 부흥시킨 〈여고괴담〉은 여학교에 다니는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2. 달라진 모습의 여귀
1999년에 개봉한 〈여고괴담 2: 메멘토 모리〉(이하 ‘여고괴담 2’로 설명)는 여성동성사회에서 소녀성이 어떻게 생성되고 정착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여학교에서 일어나는 여학생들 간의 불안감, 친밀함, 애증 같은 다양한 정서는 이 영화의 중요한 동력원이다. 이 복잡한 감정은 여성-청소년-여학교라는 시공간을 경유하여 이성애중심의 사회 체제에서 결코 포섭될 수 없는 지점을 남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특기할 지점은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귀의 모습이다. 〈여고괴담 2〉에 나오는 여귀는 국산 호러 영화에서 기대되는 여귀의 형상이 아니다. 비전형적인 이 여귀의 첫 시작은 〈여고괴담 1〉로 뽑을 수 있다. 국산의 호러 영화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여귀는 민담이나 전설에서 나오는 처녀귀신의 형상이었다. 따라서 〈여고괴담 1〉이 보여준 여귀는 도발적이고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고괴담 1〉은 1990년대의 불안을 계승한 동시에, 국산 공포 영화를 재부흥 시킨 영화사의 사건이었다. 이 센세이셔널한 영화는 권위적인 선생과 학교를 문제 삼으며, 당시로서는 세련된 여귀를 선보였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크게 성공했는데, 이는 권위적이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학교에서 발생한 문제를 인지하고, 그것의 해결을 바랐던 당시 관객의 암묵적 공감으로도 볼 수 있다.2)
〈여고괴담〉 시리즈가 특별히 잔혹하거나 징그러운 귀신 이미지를 쓰지 않는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그중 〈여고괴담 2〉는 가장 ‘덜 공포스러운’ 귀신이다. 〈여고괴담 2〉의 귀신은 죽음 그 순간에 얼어붙어서, 온몸의 관절을 비틀면서 다가오는 시체도 아니고, 피칠갑을 한 채 섬뜩한 안광을 뿜어내는 복수귀도 아니다. 이 비교적 온건한 형상의 여귀는 〈여고괴담 1〉 같은 정통 호러물의 감각을 기대했던 관객들의 예상을 무너뜨린다. 〈여고괴담 2〉는 여학교의 폐쇄적인 문화에 따른 학생 간의 정서와 소녀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고괴담 2>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각한 민아는 몰래 학교에 들어가다가 효신과 시은의 교환일기를 발견한다. 효신과 시은은 한 달 전에 교실에서 공개 키스를 한 유명인들이다. 지금은 같이 붙어 다니지는 않는다. 민아와 같은 반인 시은은 혼자 다니지만 카리스마가 있는 보이시한 인물이고, 다른 반 효신은 공개적인 왕따다. 교환일기장 읽기에 푹 빠진 민아는 효신과 시은만의 텔레파시에 끼어들 수 있는 능력을 체득한다. 한편, 시은은 신체검사를 뺀 효신을 찾아가고 결별을 선언한다. 그날, 신체검사가 한창이던 중에 효신은 자살한다. 학교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아무도 나갈 수 없는 감옥이 되어버리고 효신이 귀신으로 돌아온다.
세련된 촬영과 편집, 그리고 섬세한 미장센과 연기를 통해서 여학교 특유의 긴장감은 훌륭하게 구축됐다. 〈여고괴담 2〉는 캐릭터와 집단의 정서적 흐름을 따라, 공포스럽고 끔찍한 귀신이나 점프스퀘어처럼 현란한 촬영기법 없이도 호러물의 스릴을 선사했다. 〈여고괴담 2〉에서 효신은 피투성이 시체로 등장할 때를 제외하면, 사지가 멀쩡한 형상으로 나온다. 왜 이 영화는 전형적인 귀신으로 효신을 그리지 않았을까?
귀신의 형상은 호러물의 여귀다운 모습이 아니었고, 이에 따른 관객의 기대감을 무산시켰다. 호러물은 타자를 형용할 수 없는-이해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함으로써 공포감을 이끌어내는데, 따라서 공포영화에서 등장하는 괴물은 당시 사회문화적으로 타자화된 존재들이 비집고 나온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3) 이 호러 아닌 호러인 영화는 타자를 다른 맥락에서 은유했고, 여기서의 타자성은 소녀라는 이름의 유령에 있다.
3. 소녀성을 이용한 호러
소녀, 그리고 소녀의 섹슈얼리티는 거대한 소녀 산업을 이끄는 21세기의 문화 자본이기도 하다. 소녀를 다룬 미디어 문화 산업은 수없이 많지만, 이 영화가 그것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지점은 이 영화가 주목한 소녀성이 여학교의 소녀문화와 소녀 간의 친밀한 감정에 있다는 점을 뽑을 수 있다. 여학교는 소녀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하는 폐쇄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정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이기도 하다.
여학교는 여성동성사회이기 때문에, 섹슈얼리티에 가해지는 탄압이 더 거셀 수밖에 없다. 여학교에서 재현되고 수행되는 소녀성은 아이를 낳기 위한 모성을 갖기, 그와 동시에 근대적 영혼을 가진 신세대 젊은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많은 의태를 반복해왔다. 그것은 미래의 현모양처의 몸, 국가에 헌신하는 젊은 여성/어머니의 몸, 유혹의 대상이자 동시에 미래를 위해 지켜져야 하는 자원을 뜻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성행한 S문화는 여성 간의 성애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동시에 얼마나 비가시화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사례다. 20세기 초 근대적 여성 고등교육기관이 세계 곳곳에 등장하면서, 여학생들의 동성 연애 사례가 보편적으로 발생했다.4) sister 또는 sisterhood에서 따와 서로를 S언니 S동생하는 S문화는 여성 근대 교육기관과 함께 시작했다. 이 성적 수행은 앞서 말했듯이, 다발적이다. 여학교에서 소녀의 성적 수행에서 이성애는 언제나 동성애만큼이나 탄압 대상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학생 간의 성적 교제는 때로는 이성 교제보다 권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성 간 성애는 언제나 은유적으로만 재현된다. 여성 간의 성애, 친밀함, 애착은 자연스럽지만 언제나 이성애적인 것으로 교정당하기 직전의 청소년기의 자유에 불과하다.
이렇게 한정된 사회적 인식, 학교라는 권위적 공간, 교실의 이성애중심성 사회에서 소녀 간의 동성 성애는 일종의 백합 공동체를 이룬다. 백합은 여성 간의 성애와 친밀성의 코드를 다루는 서브컬처 및 문화 콘텐츠를 뜻하며, 주 향유층은 여성이다. 백합은 제국일본과 그것의 식민지에서 성립됐던 여학교와 여학생과 뗄 수 개념이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여성 근대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5) 그 탄생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콘노 오유키의 〈마리아 님이 보고계셔〉(1998-2012)와 같은 폐쇄적인 여학교에서 일어나는 동성 간의 친밀성, S문화적 성애, 그리고 소녀문화가 백합의 주요한 정동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는 편이다.6)
백합은 필연적으로 여성동성사회 혹은 여성 둘만의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랑을 다룬다. 동성애의 짝으로 만들어진 이성애가 문화와 사회 전반에 압도적인 권력을 갖게 되면서 레즈비언은 이성애를 실천하는 여성과는 매우 다른 존재가 되었으며, 동시에 그는 이 이성애 문화를 깨뜨릴 수 있는 저력을 갖게 되었다.7) 백합 정동은 상대에 대한 나 자신의 동일시보다 이 세계 자체에 있다. 이것은 나와 너 둘로만 이루어진 세계 외의 세계는 모조리 가짜라는 선언이다. 그러한 폐쇄성과 어울리게도 백합의 성애 표현은 징후로서의 성애에 가까우며, 이는 소녀라는 기표가 갖고 있는 유령적, 타자적, 불분명한 이미지를 공고히 한다. 그리고 〈여고괴담 2〉에서는 그러한 모호성에 기대어 학교에 구멍 뚫기를 행한다.
4. 백합 소녀의 항의
〈여고괴담 2〉은 소녀문화를 활용하여 대문자 학교를 파훼한다. 왜냐하면, 〈여고괴담 2〉는 백합 공동체뿐만 아니라 소녀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학교는 필연적으로 위압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의 소녀들은 음악실과 옥상, 구석진 복도 같은 둘만의 공간으로 끊임없이 이탈하며, 절대적인 원근법을 끊임없이 유린한다. 교환일기나 편지, 카메라와 같은 아날로그적으로 직접 접촉해야만 하는 물질을 통하여 소녀들은 ‘우리 둘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소녀문화의 정석인 수필과 일기장은 〈여고괴담 2〉에서 더 백합물의 정석을 입어, 교환일기장으로 진화한다.
교환일기는 선형적으로 문서화된 대문자 역사가 결코 아니라 망설임과 감정이 그대로 흔적처럼 찍힌 글쓰기로, 그 자체로 소녀적인 것을 상징한다. 이 교환일기는 〈여고괴담 2〉을 추동하는 가장 큰 상징물 중 하나다. 일기장의 콜라쥬된 문자와 이미지들은 제도권-예술에 대한 일종의 거부이기도 하며,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가능성을 얼핏 가시화하는 궁전이기도 했다.8)
특히, 〈여고괴담 2〉의 효신과 시은, 그리고 민아는 텔레파시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시은은 텔레파시를 통해 효신과 민아와 애정을 쌓을 수 있었고, 민아는 효신과 시은의 사랑을 엿들으면서 레즈비언으로 각성해갈 수 있었다. 효신은 피아노 줄을 끊으며 시은에게 소리를 들려주며, 둘만의 상상의 공간을 펼쳐낸다. 소녀문화가 공포물의 정통적인 무기이기도 한 청각을 활용하여 견고한 원근법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즉, 소녀적인 것이 공백-공포가 깃들 수 있는 곳이 된다.
〈여고괴담 2〉에서 귀신이 되는 사람은 효신이다. 효신은 가장 모호한 캐릭터다. 레즈비언이라는 소문과 임신했다는 소문이 돌고,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만, 합창부의 반주를 맡은 선생에게 평판이 좋은 학생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이인 시은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효신은 고립된 만큼이나 독립적이었다. 지난한 설득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는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그가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을 비친 유일한 순간은 시은과의 사랑을 인정받고 싶다는 소원을 빈 시퀀스가 유일하다.
이 소원은 학교라는 권위적인 틀 내에서는 이룰 수 없는 소원이고, 따라서 효신은 옥상에서 투신한다. 그날은 효신이 소원을 빈 신체검사 날이자, 시은과 공개적으로 키스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후였다. 효신은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시은에게 키스를 한 적이 있다. 교환일기장 때문에 수모를 겪은 효신이 충동적으로 시은에게 입을 맞춘 것이다. 밀어내는 시은과 교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효신은 재차 시은에게 달려들어 한 번 더 키스한다. 이 씬은 효신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에 대한 상징적인 장면이다. 또한 줄곧 민아의 시선에서 그려졌던 효신과 시은이 민아의 ‘망상’에서 전면적으로 튀어나온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다.
어차피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면 이해 자체를 구하지 않겠다는 효신의 선언이 교실의 퍼포먼스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효과적인 퍼포먼스였지만, 동시에 시은이 효신을 밀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클로짓인 시은에게 효신은 따라가기 벅찬 존재다. 시은은 그녀의 사랑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로맨틱한 우애관계가 당시에 크게 사회적 저항을 받지 않고 온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성애를 위혐할 정도가 아니며, 오히려 그 폐쇄성과 일과성에 주목하여 이성애의 우위성을 담보하는 불완전한 위치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9) 백합물의 원조인, S관계는 ‘우정 이상 사랑 미만’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개념화 될 수 없음 사이에서 자기를 거듭 상실하며, 이러한 반복성은 동반자살이라는 선택을 충분한 것으로 만든다.10) 영화의 초반 장면에서 효신과 시은의 동반자살을 연상하게 하는 시퀀스가 있다. 그것 또한 물의 이미지로, 물속에서 붉은 끈으로 발목을 묶은 시은과 효신은 끊임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이윽고 시은이 끈을 풀고 물 밖으로 헤엄쳐 나간다. 시은은 효신의 자살 퍼포먼스에 동참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효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소원을 빈 효신은 생애 단 한 번만 주어지는 기회이기 때문에 그만큼 압도적일 수밖에 없는 항의인 자살을 감행한다. 효신이 죽은 날은, 앞서 말했듯이 신체검사의 날이었는데, 이는 건강한 국민을 만들겠다는 뿌리깊은 우생학이 드러나는 날이자, 학생들이 자신의 몸이 숫자화되는 것에 무감해지는 날이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몸은 공개적으로 표기되고, 선생과 학생들은 그것을 웃음거리로 삼는다. 효신은 그러한 신체검사를 원천 차단하고, 시은에게 자신을 설득하는 것도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을 고발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살해한다. 이것은 내내 유령이 되었던 이상한 아이의 투쟁이자, 육화된 항의이며, 사랑의 증표다. 성장을 ‘정상성’의 규준으로 내세우던 신체검사의, 학교의, 세계의 질서는 순식간에 학생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해진다.11)
아이들의 비명 속에서 효신의 피투성이 시신은 강력한 퍼포먼스이자 주박이 된다. 민아가 효신을 이해하기 전까지, 그날 학교는 아무도 나갈 수 없는 감옥이 된다. 효신과 시은의 관계가 공개적으로 인정되는 생일 파티라는 환상을 민아가 보고, 시은이 효신의 생일을 축하할 때 드디어 주박이 해소된다. 학교를 굽어보는 효신의 거대한 눈이 눈물을 흘리며 사라지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벌컥 열린 정문을 박차고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학교에서 도망친다. ‘비가 오는 날 데리러 갈게’의 약속을 지킨 시은은 효신이 다시 태어난 날-생일을 축하한다. 이들에게 다시 남은 것은 그들만의 텔레파시뿐이다. 효신, 시은과 민아는 여전히 백합 소녀로서 학교에 남는다.
5. 소녀의 섹슈얼리티
소녀의 섹슈얼리티는 모호한 경계 내에서 가능한 것으로, 이러한 장막은 그녀들이 청소년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청소년이라는 위치는 성애가 허용되지 않는 시간선인 동시에 밝은 미래성을 대표하는 관음화된 공간이다. 대상화된 주체로서 재현되는 청소년은 많은 규칙 아래에 놓여있는데, 따라서 이 시기에는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이성애 또한 탄압 대상이 된다. 동성애를 하는 소녀와 이성애를 하는 소녀 모두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학교, 교복, 출석번호, 나이, 순수함, 미성숙함이라는 인식 속에서 소녀의 섹슈얼리티는 그 자체로 터부, 은폐, 또는 소문의 대상이 된다. 이는 여자 아이돌에게 가해지는 압박과도 맞닿아 있으며, 이 모든 재연은 소녀 산업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욕망 중 하나다.
〈여고괴담 2〉는 백합물의 유산 중 하나인 소녀문화에 올라타는 동시에, 기존의 백합물이 은밀하게 묘사해왔던 영역인 소녀의 섹슈얼리티 부분을 적극적으로 묘사해나간다. 이 적극성은 기존의 백합물이 지니고 있던 자기폐쇄성을 탈피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즉, 너와 나의 세계를 넘어서 우리의 세계로 가겠다는 의지로의 표명이다. 효신과 시은의 세계를 통해서 민아는 백합 소녀로 각성해나간다. 교환일기라는 촉각적이고 콜라쥬적인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서, 시선의 사각지역인 옥상에서 시은과 밀회를 나누면서, 모두가 들을 수 없는 텔레파시로 비밀을 속삭이면서 효신, 시은, 그리고 민아는 사랑을 지속해나간다.
1) 조혜영, 「페미니스트 소녀학을 향해」, 조혜영 엮음, 『소녀들: K-pop 스크린 광장』, 도서출판 여이연, 2017, 12쪽.
2) 안정아, 「한국 호러 영화 속 ‘여귀(女鬼)’ 의 정체성 연구: <여고괴담> 시리즈를 중심으로」, 『반영과 재현』 3(2), 영상문화지평연구소, 2023, 76쪽.
3) 백문임, 『월하의 여곡성: 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史』, 책세상, 2008, 28쪽.
4) 박차민정, 『조선의 퀴어: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 현실문화, 2022, 232쪽.
5) 유운기, 「백합물의 퀴어-친화적 확장성-주디스 버틀러와 무성애 논의를 중심으로-」, 『만화애니메이션연구』 74,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24, 528-529쪽.
6) 신현아, 「한일 ‘백합물’ 서사 속 소녀 표상의 시차」, 『차세대 인문사회연구』 18, 동서대학교 일본연구센터, 2022, 182쪽.
7) 모니크 위티그,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허윤 역, 행성비, 2020, 95쪽.
8) 이상용, 「폭력의 기억, 사물의 글쓰기」,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엮음, 『학교엔 귀신이 산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이가서, 2004, 113쪽.
9) 최은경, 「근대일본 소녀소설에서 보는 ‘소녀’ 표상‒요시야 노부코(吉屋信子) 『꽃 이야기(花物語)』를 중심으로‒」. 『일본근대학연구』 42, 한국일본근대학회, 2013, 190쪽.
10) 유운기, 앞의 논문, 542쪽.
11) 백문임, 「상실의 흔적, 생산하는 부재」, 앞의 책, 13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