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뮤지컬 <해적>(2024)] 그리고 그곳에 해적들이 있었다: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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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뷰 댓글 0건 작성일 2025-11-25 21:18본문
뮤지컬 <해적: THE LAST VOYAGE>(2024), 이희준, 박정아, 노재환
#해적 #바다 #퀴어공간 #레즈비언 #여자해적 #보아라이것이여자들의칼싸움이다 #목격자 #앨라이
○ 회차 정보
관람일: 2024. 11. 10.
캐스팅: 임찬민(루이스, 앤 역)/랑연(잭, 메리 역)
작가: 이희준
작곡가: 박정아
총괄프로듀서: 노재환
그곳에
사람은 공간을 차지한다. 살아가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있을 곳이 없다. 그들은 공간에서 쫓겨나거나, 공간에 머무르기 위해서 자신의 일부를 숨기라는 요구를 받는다. 퀴어들에게 이것은 낯설지 않은 일상이다. 그런 일상 속에서 퀴어 공간에 대한 필요가 생겨난다. 숨통이 트이는 곳,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곳.
육지와 바다와 하늘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하늘은 육지와 수직 방향으로 맞닿아 있고 바다는 육지와 수평 방향으로 맞닿아 있다. 육지는 우리가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다. 나는 하늘을 생각하면 두 가지가 떠오르는데, 하나는 천국이고 하나는 저승이다. 천국은 지옥과 대비되는 곳이다. 퀴어의 삶은 종종 지옥이 되고 또 가끔은 그러다 지옥 간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저승은 죽으면 가는 곳이다. 현실 퀴어는 자꾸 죽고 퀴어 캐릭터도 자꾸 죽는다.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하늘로 올라가거나, 아무튼 퀴어 비극에서는 퀴어들이 수직이동을 한다.
뮤지컬 <해적>은 바다로 눈을 돌린다. 그래서 육지에서 쫓겨난 퀴어한 존재들이 수평이동을 한다. 육지의 질서 속에 살 수 없는 이들은 바다로 나아간다. 육지가 아니지만 죽지 않아도 되는 공간. 훨씬 불안정하지만 새로운 공간. 기존의 법과 질서가 통하지 않는 대안 공간. 육지와는 다른 신이 지배하는 공간. 바다 위에서 그들은 힘을 되찾고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바다는 퀴어한 공간이 되고, 각자의 방식으로 퀴어한 이들이 바다로 모인다.
이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듯 <해적>의 주된 스토리라인 중 하나는 바다로 떠난 여성 캐릭터 두 명의 로맨스다. 내용 외적인 요소도 영향을 주는데, <해적>에서는 젠더프리캐스팅을 통해 배우 한 명이 여성 캐릭터 한 명과 남성 캐릭터 한 명을 연기한다(1인2역). 무대 위에 우리가 인식하는 연기자의 성별과 등장인물의 성별이 충돌하는 장면이 반드시 펼쳐지는 것이다. 이는 <해적>의 무대 자체를 퀴어한 공간으로 만들어 극의 주된 배경이 되는 바다가 퀴어한 공간임을 인식하게 한다.

<해적>은 인물들의 육지-바다-육지 공간이동이 핵심적인 사건을 구성하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극 <해적>에서 퀴어한 존재들이 모여 퀴어 공간을 구성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서사를 읽어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실패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남겨지고 이어지는지,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볼 것이다.
해적들이
<해적>은 해적 잭이 동료 해적이었던 케일럽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공교롭게도 케일럽은 마지막 항해에서 돌아온 뒤, 이틀 전에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케일럽 대신 아들 루이스가 잭을 맞이한다. 잭은 케일럽이 남긴 유품이 없는지 묻고, 루이스가 건넨 종이가 보물섬 로즈 아일랜드의 지도임을 알아본다. 둘은 잠시 실랑이를 벌이지만 함께 로즈 아일랜드로 항해를 떠나기로 한다.
선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총잡이 앤이 합류한다. 앤은 사생아로 태어나 출생이 기록되지 않았다. 그래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게 싫어서 앤은 계약 결혼을 한다. 사생아는 혼인서약을 해야만 공식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앤은 한동안 자유로운 삶을 살았지만, 앤의 남편이 가출신고를 하면서 재판을 받게 된다. 앤은 재판에서 자신의 결혼이 형식적인 것이었을 뿐이고 이는 남편과도 합의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도리어 ‘신성한 결혼의 의미를 모욕했다’, ‘아내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채찍형을 선고받는다.
평등한 관계에서 맺어진 계약이지만 가부장적 혼인관계로 들어온 이상 남편의 지배를 받게 된다. 육지의 질서 안에서 운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 본 앤은 이제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좌우되는 상황이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돈을 내고 앤을 데려가겠다는 잭의 제안에 법정이 남편의 동의 하에 허락하겠다고 하자 앤은 폭발하고, “당신들의 교회에서 내 이름을 지우”고 “나의 법과 질서 안에 내 이름을 새기”리라 말한다. 그리고 바다로 향하는 것을 “이 땅에서 만나지 못한 나의 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표현하면서 지배 규범과 정상성을 거부하고 주체성을 되찾는다.

결국 앤이 판결을 불복하고 바다로 뛰어내리는 것을 본 법정은 앤의 죽음을 선언하고 공소권 없음으로 재판을 종료한다.
항해를 하다가 만난 다른 해적선에는 메리가 있었다. 메리는 바다 위에서 신처럼 군림하는 검투사로, 처음으로 메리를 마주친 다른 등장인물들은 메리가 “포세이돈이 아닐 리 없다”고 평한다.
앤과 메리는 전투를 하다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서로를 보자마자 끌림을 느끼고 지금까지 상대를 만나기 위해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상대가 내 삶의 이유가 될 것임을 깨닫는 그런 사랑이다. 해적선에 탈 때 앤은 앤소니라는 이름을, 메리는 마르코라는 이름을 썼는데 사랑에 빠진 둘은 서로 앞에서 진짜 이름을 밝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메리는 앤에게 자신의 사연을 말해주는데, 메리의 오빠 마르코가 죽었을 때 어머니가 집안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메리에게 남장을 시키고 마르코인 척 위장해서 키웠다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는 마르코가 아니라 메리가 죽었고, “죽은 오빠의 낡은 옷이 너무나 익숙해진” 메리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었다. 그렇게 메리는 바다로 떠났다.
앤과 메리 둘 다 실제로는 살아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이미 죽은 목숨,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상황은 의미심장하다. 존재하지만 존재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지에서 한 순간이라도 진정으로 살아 있던 적이 있을까?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사회의 환대, 성원권의 부여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을 지적한다. 육지에서 앤과 메리의 성원권은 특정 조건 아래에서만 부여되고,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람됨은 언제나 위태롭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누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다. 법을 지키는 시민으로서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해적선에는 해적선의 규칙이 있다. 앤과 메리는 각각 총잡이와 칼잡이로서 살아간다. 사람을 해치는 불법적인 일이지만 해적에게는 전력이 되고 그래서 받아들여진다. 사실 이미 죽은 사람이기에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사회 바깥으로 쫓겨난 존재는 더 이상 해당 사회의 규범에 구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앤과 메리는 여성을 배제하는 해적선의 규칙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앤소니와 마르코로 살아가고 있었다. 대안적 공간/퀴어 공간 안에서도 나름의 정상성이 생기면서 누군가 배제되는 상황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바다 위에서도 여전히 불편하고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나마 서로를 만나고 다시 앤과 메리라는 이름으로 있을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수 있고 그것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관계를 처음으로 형성하면서, 둘은 적어도 서로 앞에서는 한 사람으로 서게 된다. 앤과 메리의 사랑은 둘을 “마침내 살고 싶게” 만들었고, 실질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다.

메리가 합류한 후 전투는 승리를 거듭한다. 선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로즈 아일랜드를 발견한다. 엄청난 보물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던 선원들의 마음은 곧 실망으로 바뀌게 된다. 로즈 아일랜드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해골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동화 같은, 낭만적인 항해 이야기는 이 시점에서 끝난다. <해적>은 1막과 2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쾌하고 희망찬 1막과 달리 2막의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해적>은 “해적이 몰락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적들은 곧 해적 헌터에 의해 체포되어 육지로 끌려온다. 육지는 해적들이 다시 힘을 잃는 공간이다. 바다 위에서 감히 대적할 자 없던 검투사 메리는 감옥에 갇히고 해적선장 잭은 포승줄에 묶여 사형대로 올라간다(모욕적인 ‘밧줄 춤’을 춘다).
잭이 항해에 나서는 이유, 보물을 찾는 이유는 “해적들의 지상낙원”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바닷가에서 해적들을 보고 자랐다. 계속해서 해적들을 마주쳤고 그들과 교류하고 그 자신도 해적으로 살았다. 잭은 여자와 아이는 해적선에 태우지 않고, 전투에서 도망치는 해적은 무인도에 버리고 간다는 해적의 규칙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잭은 “뭔가 모자란 해적”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것 같다. 그는 규칙을 어기면서 여성인 앤과 메리, 열일곱 살 소년 루이스와 항해를 함께하기로 결정하는데다 그 자신은 전투에서 도망치는 해적이다. ‘졸리로저’는 잭이 무서운 해적선 깃발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넘버인데 그 이유는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다.
잭의 아름다운 시도는 처음부터 실패를 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해적의 규칙을 어기면 해적으로서 승리할 수 없다. 게다가 바다에서만 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가끔씩은 육지에 들러 술집에 가고 선원을 모집해야 하니까. 육지와 관계를 맺으면 육지의 규칙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육지에서도 쫓겨나고 바다에서도 길을 잃은 슬픈 해적” 잭은 결국 다른 해적들처럼 끝을 맞이한다.

있었다
하지만 이 실패는 단지 실패로 남지는 않는다. 목격자 루이스가 살아남았고 이 모든 이야기를 기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해적들이 체포되었을 때, 루이스는 모두와 운명을 같이하고 싶어했다. 잭이 재판을 받으며 루이스를 구해주려고 그는 해적이 아니라 심부름꾼으로 쓰려고 납치한 아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루이스가 “나도 해적이야!”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상황에서 빠져나가 생존을 도모할 수 있음에도 해적들과 적극적으로 연루되고자 하는 루이스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 루이스를 잭은 이렇게 설득한다.
“항해일지를 완성해야지. 전설과 악담과 소문이 아닌, 진짜 목격자의 기록.”
루이스는 어떻게 해적들과 계속 함께할 수 있을까? 그의 역할은 읽고 쓰는 것이다. <해적>은 쓰기와 읽기를 통해 어떻게 ‘전설과 악담과 소문’을 넘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진짜 목격자의 기록’을 남기고 전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해적선이 로즈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 사라진 보물과 해골더미를 보고 잭은 바로 이전 항해에서 돌아온 사람이 루이스의 아버지 케일럽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케일럽이 다른 선원들을 살해하고 보물을 빼돌렸을 거라는 결론을 낸다. 현장 상황과 앞뒤 정황을 따져보면 가장 먼저 도출할 수 있지만, 루이스의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는 결론이다.
혼란과 절망에 빠진 루이스를 구해주는 것은 로즈 아일랜드에 남겨진 케일럽의 항해일지다. 항해일지는 이러한 진실을 전달한다: 배가 로즈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 엄청난 양의 로즈 사파이어가 있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보물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전투를 벌였는데, 케일럽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난장판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해적이 공격하려 다가왔고 케일럽은 반격에 성공한다. 케일럽은 로즈 사파이어를 모두 바다에 버리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간다.
루이스가 어렸을 때부터 케일럽은 끊임없이 항해를 했다. 루이스에게 있어서 바다는 아버지의 공간이자 미지의 공간이었다. 루이스는 “일 년에 한 번 집에 오”고, “떠나갈 때마다 거짓말을” 하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케일럽이 이미 죽었으니 진실을 전해줄 사람도 없다.
그러나 기록이 남았다. 루이스는 로즈 아일랜드에서 케일럽의 항해일지를 찾아 읽고 나서 아버지가 동료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도, 전투를 못 하는 해적이었던 것도, 그만큼 평화로울 때 열심히 일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루이스는 이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해적 케일럽’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루이스의 항해일지도 누군가 읽을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가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 방식으로 루이스의 항해일지를 읽는 사람도 해적들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루이스의 “내 눈으로 목격한, 내 손으로 기록한, 내 온몸에 각인된, 내 영혼에 사무친” 이야기 앞에서는 해적들에 대한 어떠한 전설과 악담과 소문도 힘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루이스가 읽는 것은 아버지 케일럽의 항해일지이고, 쓰는 것은 “캡틴과 총잡이와 검투사”의 이야기다. 부모-자식이라는 혈연을 통해 윗세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정상가족의 세계에서와 달리 정상가족을 이룰 수 없는 퀴어의 계보는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가? 공동체에 의해 이어진다. “같은 배를 탔던 선원들의 뜨거운 우정”에 의해 이어진다. 루이스는 목격자 되기를 통해 앤과 메리의 앨라이가 된다.
특히 퀴어 연애에서 목격자의 부재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친구들과 일상을 나눌 때 연인과 데이트를 한 얘기는 한 마디도 못 했다거나, 이별을 했는데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죽여 울었다거나 하는 이야기에 퀴어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어떤 경우 사랑이 둘만의 세계에서 시작되고 끝나 버리기에, 연인과 헤어지면 그곳에 속한 자신의 기억을 나눌 사람이 없어져 삶의 한 부분을 통째로 잃어버린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퀴어들은 종종 외롭다.
연애는 때로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으로만 취급된다. 퀴어문화축제나 동성혼 법제화처럼 퀴어 연애가 공적 공간으로 드러날 때 자주 나오는 반응 중 하나는 “본인들끼리 사랑하는 건 상관없지만 그것을 내가 왜 보아야 하나”다. 이는 목격자 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퀴어를 고립 상태에 머무르게 한다. 친밀한 관계맺기는 정말로 사적이기만 한가? 증인 없는 결혼식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식에도 증인이 있었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므로 관계에 있어 제삼자의 존재는 중요하다.
<해적>의 스페셜 넘버 ‘해적 결혼식’에서 앤과 메리도 결혼식을 올린다. 둘만의 결혼식이라면 관객이 목격자가 되겠지만 작품 내적으로는 그 사건이 잊혀지리라고 예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루이스가 초대되었고, 그는 앤과 메리가 나누는 사랑의 대화를 듣고 기록하고 영원히 남긴다. 이를 통해 관객은 <해적>의 세계에서도 앤과 메리의 이야기가 이어지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앤과 메리가 ‘해적 결혼식’에서 “세상이 우리를 증오할 수 있을지라도 너희가 우리를 지울 수는 없으리라”, “역사가 거꾸로 흐를 수는 있을지라도 바다는 우리의 목소리를 기억하리라”고 선언함으로써 이 확신은 더욱 단단해진다.
엔딩에서 모든 일을 겪고 집에 돌아온 루이스는 무지개색 졸리로저를 굴뚝 옆에 걸었다. 육지에서 해적 깃발을 올린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해적이 있다. 그리고 육지 위에서도 사실은 하루하루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몇몇이 바다로 나아간다고 육지의 해적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지상낙원은 어디에나 있어야 한다. 루이스는 이 사실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고, 모두의 이야기 그리고 해적프렌들리(?)한 공간, 해적들의 지상낙원이라는 잭의 꿈은 이렇게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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