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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장편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을 써낸 소설가 김비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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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지개책갈피 작성일 18-07-1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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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책갈피 첫 번째 작가 인터뷰

-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의 소설가 김비와의 인터뷰

 

 

모두에게 힘들었던 가을이 끝나갈 무렵,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내 등단 작가로서는 유일한 커밍아웃 트랜스젠더 작가로서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신 소설가 김비님의 신간이 나왔다는 것이지요. 전작 <빠쓰정류장> 이후 3년 만의 장편소설이라 더 반가웠습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알 듯 말 듯 하면서도 감각적인 제목입니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더불어 닫힌 문을 가로막은 붉은 띠가 인상적인 책 표지는, 끝없이 펼쳐진 계단과 함께 벽면에 그려진 ‘다시’라는 글자가 호기심을 자극하는데요. 설레는 맘으로 책을 완독한 후에 그 의미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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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지니, 2015

 

 

이번 작품은 신축된 고층 타워 안, 비상계단에 갇힌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택배기사 일을 하며 생계 벌이에 급급했던 ‘남수’는 끝내 삶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하고, 무기력증에 빠진 아내 ‘지애’와 뇌 손상 장애를 가진 6 살배기 아들 ‘달환’과 함께 동반자살을 결심합니다. 죽기 전 마지막 만찬을 가지려 백화점에 들렀는데, 그대로 비상계단에 갇히고 맙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붉은 등만 켜 있고, 도무지 출구는 보이지 않고, 올라가도 내려가도 계단만 끝없이 이어집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 공간에서 남수네 가족은 비정규직 20대 여성, FTM 트랜스젠더, 명예퇴직을 앞둔 가장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납니다.

 

김비님 전작들을 모두 읽어본 독자에게도 놀라움이 가득한, 그래서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펼쳐진 상징의 바다 속에서, 작가로서의 김비님에 대한 새로운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책에 대한 감상을 전하는 겸 양산에 머물고 있는 김비님께 서면으로 인터뷰를 부탁드렸고,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쪼록 무지개책갈피의 서툰 (첫 번째!) 인터뷰를 통해, 김비님 책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에게 작가님의 육성이 그대로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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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 책,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오랜만의 장편소설입니다. 소설의 배경과 소재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먼저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고층 타워는 주위 지반을 약하게 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세워 올렸다는 점에서 제 2 롯데 타워를 연상시키더군요. 자본주의 과욕의 상징으로 느껴졌는데요.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나 모티프가 무엇인지요. 고층 타워, 특히 비상계단이라는 특별한 장소를 설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소설은 부산의 한 유명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그 영감의 뿌리였어요. 그곳은 부산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번화가 한 가운데 위치해 있는데, 마트가 1층에 위치해 있어서 자동차를 마트 주차장에 대놓고 영화관으로 올라가는 구조였지요. 그런데 그럴 경우 다른 건물은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있게 마련인데, 그곳은 비상계단을 통해서 여러 층을 걸어 올라가, 다시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 납득하기 힘든 접근 방식이었어요. 비상계단을 이용하지 않으려면 마트를 통해서 1층으로 올라가야하고요. 그 비상계단이 바로 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비상계단은 낡은 건물 때문인지, 유독 허름한데다가 좁고 가팔라서, 여느 다른 곳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어요. 겨우 지하 3층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낡은 계단에 층수마저 적혀있지 않아, 계단을 따라 중간 쯤 올라가다보면 갑자기 차원의 문이라도 건너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내가 지금 몇 층을 올라왔을까, 그 사실을 알 수 없으니, 겨우 3층 정도의 짧은 거리였는데도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오싹 소름이 돋는 건 물론이고요. 그저 앞 사람을 따라 걸음을 걷는데, 그 짧은 순간에 우리들의 일상이 떠올랐어요.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화려한 수사와 희망의 말들은 우리를 이끌기에 충분히 믿음직스러울까, 그렇다면 이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감금이라도 된 것처럼 그 짧은 계단을 오르며, 이 시대의 맹목이 소름끼치도록 정확히 느껴졌어요. 말 그대로 우리를 짓누르는 이 시대의 겁박 말이지요.

 

 

기법적으로는 전체적으로 상징물이 아주 많아서 상징 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붉은 등이나 문도 그렇고, ‘다시’라는 글자, 계단, 물고기, 벌레 등등. 혹시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나 상징은 무엇인가요?

 

원래 이야기를 구상하며 상징을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그래서 종종 우화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가장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면서 가장 거대한 세계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사이를 관통할 수 있는 다양한 상징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가장 중요한 상징은 '계단'과 '문'이겠지요. 겨우 한 뼘의 공간 밖에 허락하지 않는 계단, 눕는 것도 쓰러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끊임없이 움직이라고 채근하는 듯한 계단. 당연히 그것은 이 자본주의 시대가 만들어놓은,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지요. 어떻게든 위로 올라야하고, 누군가와 반대 방향으로 가기라도 하면 큰일 날 것 같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끝없는 반복, 또 반복. 불안으로 채근하고 위태로움으로 위협하는 끝없는 계단, 바로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매일 매일의 일상이지요. 문이 있지만 그 곳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어요.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에게 그 문은, 붉은 띠로 막혀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출구 없는 비상계단에 갇혔다는 점에서 소설은 일종의 재난 서사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헐리우드식 재난 서사에서는 긍정적인 영웅 주인공이 고난을 헤쳐가지만, 주인공 ‘남수’는 소설에서 가장 시니컬한 인물이라 흥미로웠습니다. 이 소설은 결국 순진한 희망을 설득시키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재난보다 더 척박한 현실에서, 소설 밖의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재난 서사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소설의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재난 서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재난은 사고이거나 사건이고, 그 일시적 어긋남은 누군가의 (혹은 인간 전체의) 잘못이나 어리석음이 개입되어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든) 일깨우는데, 어차피 제가 만든 건 '재난'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였어요. 제가 말하고자하는 건, 밀폐된 공간 속에서 똑같이 재현되는 우리들의 현실이며, 끝내 어떤 곳으로도 도망치지 못하는 우리들의 도피였지요. 그러니 영웅 같은 건 존재할 수가 없어요. 어차피 인간은 이 세계를 구원하지 못해요. 그저 파괴할 뿐이지요. 어떤 인간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겠어요?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희망들이 겹쳐져 겨우 지금 우리들의 현실이 된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희망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담론이 아니지요.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어요. 이 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다른 거요. 뒤집히고 전복된 다른 거요. 끝이라고 믿어버린, 어떤 시작 말이지요. 그것만이 궁지에 몰린 우리들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어차피 똑같이 희망을 말하는 것 아니냐 물으시겠지만, 제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만든 이유는 모든 걸 초월한 근원을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을 뒤흔드는 균열 말이지요. 진정한 생존을 위해 기꺼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두려움의 탈피 말이지요. 제 생각에 그건, '재난'이 아니라 '빅뱅'아닐까요?

 

 

소설 곳곳에 숨어 있는 종교 모티프가 인상적입니다. 특히 출구를 헤매던 사람들이 마침내 공중 통로를 발견했다며 찾아간 곳에,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구원받을 것이라 외치는 남자가 있고,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고 무작정 통로로 몸을 던져 떨어지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밖에도 ‘믿음과 현실은 다르다’는 남수의 말에서처럼 ‘믿음’에 대한 부분이 보였는데요. 꼭 종교적인 맥락이 아니더라도, 현대 사회에서의 믿음에 대해 작가님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으셨는지요?

 

어쩌면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개인적일 수 밖에 없는데, 그 기원을 굳이말하자면 아마도 제 정체성에서 기인한 것이겠지요. 세상의 믿음을 부수어냈기에, 저는 지금 생존해 있거든요. 남자 혹은 여자라는 가장 근원적인 믿음을 뚫고 일어섰기에, 저의 생존이 가능했던 것이거든요. 그래서 세상의 모든 믿음들은 제게는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 듯해요. 그런 저를 두고'위험하다' '위태롭다'말하지만 저는 사실 그렇게 위태롭지 않거든요. 오히려 세상이 정해준 믿음에 기대어 있을 때보다 더 안정적이에요. 수술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저는 제가 과연 여자일까 남자일까 저 스스로를 어디에도내려놓지 않은 채고, 그런데도 지금만큼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거든요. 이상한 역설이지요? 저는 그러한 믿음의 균열이 오히려 또 다른 생존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아닐까 생각해요. 미래의 믿음이야말로 저는 좀 자유로워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 잘 모르지만, 믿음은 집착이아니라, 깨우침인 것 같아요. 자기 안의 신을 깨우치는 것처럼 자기 바깥의세계를 깨우치는 거요. 그거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축복이 아닐까요?

그리고 실제로 이 이야기 속에 '진짜 신'은 숨겨져 있어요. 우리들의 믿음이 누구를 해하고 공격하는 믿음이 아니라, 이 위태로운 세계를 조용히 함께 가는 이름없는 존재로서의 순수한 신을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 이야기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구멍 밖으로 뛰어내리라고 명령하는 신이 아니라, 그렇게 우리와 함께 갇히고 함께 넘어지고 또 다시 함께 올라가는 존재가 신이 아닐까 생각해요. 쓰러진 우리 앞에서, 우리들을 다시 일으키며 조용히 인도하는 존재가 진정한 '신'이 아닐까 감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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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건형

 

퀴어, 문학, 그리고 글쓰기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김비님의 글쓰기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시는지,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더불어 모든 작가는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인 바, 글 읽기에도 혹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일이겠지요. 제 정체성은 가장 근원의 문제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만큼 작품의 정체성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겠지요. 얼마나 어떻게...? 우리가 집을 짓는다고 생각해보지요. 모든 건물을 지으려면 쌓기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파기부터 하잖아요? 보이는 건 건물 윗부분이지만, 실제로 바닥에 깊은 구덩이가 있죠. 보이지는 않지만, 그 구덩이가 나의 경우엔 좀 다른 거겠죠.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팬 모양이 다르거나 깊이가 다르거나, 어쨌든 다른 건 분명하겠지요. 그걸 부인하고 싶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물론 작가로서도, 독자로서도 마찬가지이겠고요.

 

 

김비님 데뷔 초기엔 성소수자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이 많았다면, 이제 다른 소수자들과 함께 나란히 병렬시키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성소수자가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저는 사실 이 변화를 오히려 더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성소수자 소재/인물에 대한 비중을 어떻게 정하시는지요. 이를테면 비중이 적어도 꼭 넣으려 한다거나, 혹은 일부러 줄인다거나 하는 식의 의도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제 작품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은 그 차이를 인식하실텐데... 네, 사실입니다. 요즘은 성소수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그 속에서 의식적으로 더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건 주연 조연의 문제라기보다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저 개인적인 시각이 확장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시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더라도, 예전과는 분명 다르겠지요. 이야기 속에 성소수자를 꼭 넣으려고 하기는 해요.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것이 인간의 이야기라면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그렇다면, 성소수자라는, 세상의 규범을 뛰어넘은 인물을 통하게 되면 분명히 이야기가 확장될 수밖에 없거든요. 우리나라는 '소수자'라는 존재를 홀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상적 규범 안에 머물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은, 결국 '소수자'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들이 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그걸 스스로의 존재를 확장시키는 깨우침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위협으로 받아들여서 문제이지만, 분명한 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로 한 사회의 의식이 오롯이 드러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거듭 말하지만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에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존중의 문제이고 평등의 문제인 거지요. 그것만큼 인간 사회를 유지하고 평가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게 어디 있겠어요?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작가로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불편함은 무엇인지요. 얼마 전 무지개책갈피가 진행한 퀴어문청파티에서 작가 지망생들&독자들과 이야기 나눠본 결과, 자신의 작품이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되어서만 해석될까봐 우려된다(그래서 커밍아웃하지 않겠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더불어 마케팅 과정에서 자극적으로 소비되거나, 보수적인 문단에서 차별을 받는 등의 문제를 경험하셨는지요.

 

커밍아웃한 것이나 트랜스젠더로서 불편함보다는 지금은 작가로서 불편한 점이 더 많다고 말씀드려야할 것 같네요. ^^ `얼마 전에 소득수준으로 보니까 소설가가 최악의 직업 3위이던데...ㅋㅋ 글쎄, 제 생각에는 이젠 '커밍아웃'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날이 가까워왔다고 생각해요. 이제 더 이상 감출 필요도 없고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그런 시대의 도래를 우리도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그 누구보다 제일 먼저 다른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상상의 땅 위에 발을 내딛으려면, 더더욱 그것에 붙들릴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물론 암암리에 차별을 받기는 하겠지요. 인터뷰 기사가 보수적인 데스크에서 잘린다거나, 내 작품이 아니라 '트랜스젠더'로서 먼저 소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는 하죠. 뭐 이제는 이골이 나서... 저는 그래서 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만들어가면서 생활을 하는 편이에요. 그 사람들을 더 챙기죠. 그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요. 고약한 말들 억지로 듣지 않으려하는 편이에요.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정? 성공? 허허... 그런 거 내려놓은 지 꽤 된 것 같은데. 무명작가로 사는 일은 그렇게 가벼워져야하는 일인 것 같아요.

 

 

다소 어려운 질문만 늘어놓아 죄송합니다. 규칙적으로 글을 쓰신다고 들었는데, 하루 일과를 보통 어떻게 보내시나요? 그리고 개인 시간엔 취미로 무얼 즐기시는지요. 살짝 밝혀주시면 독자 팬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네, 저는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씁니다. 물론 구상을 하는 일은 갑작스레 떠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때에는 재빨리 휴대폰에 저장을 해놓고 본 원고를 집필하는 시간만큼은 정해놓고 써요. 장편소설을 쓰는 일은 이야기와의 싸움뿐만 아니라, 자기 몸과의 싸움이라는 걸 꽤 오래 전에 깨우쳤거든요. 그래서 한 시간 반씩, 하루 네 번에 나누어 글을 써요. 가령 12시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합쳐서 7시까지 쓰지요. 11시에 쓰기 시작하면 6시에 끝내고요. 1시에 시작하면 8시에 끝내려고 하고요. 새벽이나 밤에는 쓰지 않아요. 건강에 얼마나 안 좋은 일인지 잘 알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에 누운 채로 휴대폰 위에 충분히 그 날 쓸 내용이나 분량을 머릿속에 굴리며 적어놓고, 일어나서 잠깐 운동하고 밥 먹고 씻고 그리고 책상에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지요. 그리고 한 시간 반 정도 쓰다가 십 분에서 이십 분 쉬고, 다시 한 시간 반 쓰고, 간단하게 늦은 점심 먹고 다시 한 시간 반, 쉬는 시간, 한 시간 반, 이렇게 쓰는 편이지요. 물론 규칙적으로 글이 나오지 않을 때도 많지요. 그럴 때에도 의식적으로 그 시간에는 앉아 있으려고 해요. 그래야 몸이 기억하거든요. 그 이외의 시간은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본다거나, 사진을 찍으러 간다거나, 요즘은 짝지 덕에 부산스케처라는 모임에서 그림도 그리러 다녀요. 재미난 일들을 자꾸 만들어가요. 누가 가져다주는 거 아니거든요. 내가 나서서 찾고 만나고 해야 하는 게, 여가 시간의 즐거움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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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이 막 출간된 참이지만,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계신지, 혹은 기타 활동 예정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비님 작품을 읽는 독자 분들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열심히 쓰는 것만이 제가 해야할 공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쉬지 않고 많이 쓰려고 하는 편이에요. 이미 '붉.닫.출(우리끼린 이렇게 불러요.^^)'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난 후에, 바로 다음 작품의 구상은 시작했고요. 한동안 취재를 하러 다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작년에 번역 원고를 하나 맡아 진행했는데, 그 교정지를 얼마 전에 넘겨서 번역 책도 곧 나올 것 같아요. 올해 부산에서는 예술인 복지 재단에서 진행한 사업에 참여한 덕분에 여성인권단체와 인연이 닿았는데, 그곳에서 성매매 당사자들과 사진 작업을 함께 했고요, 간단하게나마 작은 전시회를 부산에서 끝냈어요. 동아대학교 연구모임 '아프꼼'에 '부산의 바깥'이라는 사진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는데, 한 동안 그 작업을 계속하기도 할 것 같네요.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굉장히 많은 일들을 하는 것 같은데, 절대 무리되는 일은 하지 않는 답니다.^^)

독자 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야, 재미있게 읽어 주십사 하는 것뿐이지요. 그리고 짧게나마 리뷰도 써주시면 무명작가에게 많은 힘이 된다는 것도 알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름을 떨치는 문학가가 아니라, 그저 이야기 할머니가 되는 것이 목표인 만큼 열심히 쓰고 떠들 테니 항상 관심 가져주셔 달라 부탁도 드리고 싶고요. 독자 분들이 자꾸 말해주시고 이야기해주시고 적어주시면, 제 글이 쑥쑥 자라는 것 같아 '글엄마'로서 행복해진답니다. 그러니 무슨 이야기든 자꾸 말해주셔요. 그것으로 저 뿐만 아니라 독자 여러 분들께도 소소하나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위안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겠고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www.wordswithoutborders.org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를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 데 함께했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산지니, 2015) 책날개 발췌

 

 

작성 보배

무지개책갈피 활동가. 퀴어문학 마니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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