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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무너진 세계의 우리는』 출간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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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11-13 17:16

본문

일시: 2019년 7월 7일

장소: 청년교류공간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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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계의 우리는』은

2017년 퀴어 에로티카 소설집 『퀴어로티카Queerotica』에 이어

무지개책갈피에서 진행한 두 번째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2018년 8월, 퀴어 아포칼립스 소설 창작모임이 결성되었고,

반 년 동안 정기적으로 합평 모임을 가졌습니다.

9편의 이야기가 완성되었습니다.

관련된 지식을 가지고 계신 활동가 분들의 노동이 더해져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쓴다"는 강력한 동인이 한 권의 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전부 기록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2019년 7월 7일, 작가님들을 모시고 출간기념회를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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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진1, 현장 사진2] 책과 굿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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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진3] 스티커, 작가님의 낭독문, 앙케이트를 배포하였습니다. 



순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무지개책갈피 소개 - 프로젝트 소개 - 키워드 토크 - 낭독 - Q&A - 공지

보배 님이 작성해주신 책의 여는 글 부분, 각 작품 별 키워드와 낭독문의 내용을 공유합니다.

보배, 「무너진 세계의 우리는」

​"우리는 상실과 사랑의 공동체에 함께 서있습니다.

……

다만 우리는 특별한 침공 없이도 살아남는 삶을 이해합니다."

키워드

진영, 「긴과 진」

"고작 한 획"

조연, 「명명」

"명명"

단은, 「머러미쿠」

"질병"

보라, 「바닷가의 모리유」

"저항의 방식-전투 혹은 생활"

정이담, 「신인류 바이러스」

"젠더권력"

아람, 「사랑하니까 반대하는」

"도망치는 이들에게 보내는"

영이, 「낙엽」

"타인"

카프, 「나의 존재는 하얀 거짓말」

"죽음"

낭독문

진영, 「긴과 진」 (pp.34-35 참조)
   밤에도 긴은 불을 켜지 않았다. 저녁을 먹을 때만 초를 켰는데 긴도 나도 소화가 힘들어 흰 쌀을 말갛게 끓여 먹었다. 나는 밥알이 푹퍼진 흰 죽을 젓다가 긴을 바라보았다. 어제보다 더 흐려져 있었다. 흔들리는 불꽃 때문인지 긴의 얼굴이 일그러져 웃고 있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겨우 식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긴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무력하게 다가와 마음이 아팠다. 이 식탁 위에 한때는 간이 된 음식이, 잘 자라는 식물이, 환하지 않아도 서로의 표정과 진심을 알 수 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무엇하나 분명한 게 없다. 나는 손가락으로 심지를 비벼 촛불을 끄고 사방이 캄캄한 것을 보았다. 긴과 나를 삼켜버린 어둠은 막막하기보다 아늑했다. 어둠 속에서 흐려진 긴과 흐려지지 않은 나는 다르지 않았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이 검고 검은 어둠속으로 기어들어가 나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연, 「명명」 (pp.45-46 참조)
   아침이 오는데도 겨울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던 현은 창문을 응시하며 빛을 기다렸다. 현은 하늘, 태양, 구름, 나무, 꽃, 풀잎, 별이 지닌 색을 그리워했다. 현이 입고 있는 옷, 잠드는 침대, 밥을 먹는 식탁, 공부하는 책상, 살고 있는 집, 거리, 그 위에 널어선 건물, 마주치는 사람. 모든 것이 검은색이었다. 이 세계에서 가질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채도 없는 색들과 번호.
   현은 228-179로 태어났다.
   사람들은 여섯 자리 숫자와 함께 태어나고 살아갔다. 어떤 이는 이마에, 어떤 이는 팔에, 어떤 이는 가슴에 숫자가 새겨졌다. 번호의 앞자리는 자신을, 뒷자리는 운명으로 연결된 상대를 의미했다. 주어진 숫자는 예견된 삶의 모습을 품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를 운명이라 말했다. 사람들은 1답게 혹은 2답게 각자의 삶을 살다가 때가 되면 서로의 번호가 새겨진 상대를 만났다. 적당한 시점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의 삶이 정해진 각본을 충실하게 연기하면 되는 안정된 삶이라고 했다. 1과 2에게는 입을 수 있는 옷부터 가질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일, 되고 싶은 꿈에 대해 다른 선택지들이 주어졌다. 모두가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단은, 「머러미쿠」 (pp.69-70 참조)
   살과 내장이 썩는 고약한 냄새가 탄내와 뒤섞여 주변을 부유했다. 비슷하게 생긴 초가집들이 불에 타고 있었다. 시뻘건 불기둥이 집들을 집어삼켰고 머지않아 나도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뒷걸음치는 발에 무언가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팔이었다. 그 옆에도 팔이 있었다. 다른 피부색과 두께의 차이는 그것들이 한 몸에서 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살짝 고개를 들자 뭉텅뭉텅 썰린 신체 부위가 널려 있었다. 그레텔이 빵 조각을 떨어뜨린 것처럼 내 등 뒤로 이어진 참담한 행렬. 그 끝엔 시체가 성처럼 쌓여 있다. 어둠 속에서 굴러온 건 눈을 미처 감지 못한 남자의 머리였다. 죽을 때의 고통이 생생히 드러난 표정에 소름이 끼쳤다.

   [무엇을 두려워하니?]

   다정하게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른 살과 뼈를 짓밟는 소리가 다가온다. 앞에는 불이 뒤에는 시체들이. 어디로 도망쳐야 할 줄 몰라 우두커니 서서 귀를 막고 울기만 했다.

보라, 「바닷가의 모리유」(pp.119-121 참조)
   정말 모르겠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나는 로봇이 되어 가는 걸지도 모른다. 늘 로봇과 함께하고 있고, 로봇과 셀신을 맞추는데 목숨을 걸고 있으니까. 그랬다. 나는 정말 그 일에 ‘목숨 걸 듯’ 몰두하고 있었다. 계속 로봇에 타고, 셀신을 맞추고, 전투를 하고, 피를 보고, 거기에 익숙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렇게 5년이 흘렀다. 그리고 내 곁에는 진과 안느, 그리고 몇몇의 케이코 사람이 전부다. 그들도 사람들을 지킨다는 사명으로 여기에 있었지만 자신이 사람으로 인지되는지 궁금했다. 사람답게 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사람인 걸까?​
   (중략)​
   해안은 말을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해안의 옆얼굴을 보았을 때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슬리퍼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시선 끝에 담긴 것보다 마음속에 굴러다니는 말이 중요했다.​
   - 나는 길에서 살 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데, 여기 와서 뭐가 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좋았어요. 훈련소 애들이 질투하기도 했지만 그거야 당연한 거고 그냥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것도 좋고. 그게 내가 인간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게다가 언니들도 있고.​
잠시 말을 쉬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 여기, 수주 언니도 있고. 난 언니처럼 되고 싶었는데.​
   이런 말을 참 아무렇지 않게 한다. 나는 마음이 쿵 떨어지고 말았다. 샤워실에서 해안이가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 봤다. 저는 그냥 좋아요. 좋아하는 거 열심히 좋아하다 죽어도 억울하잖아요. 언제 어디서 누가 갑자기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잖아요. 좋아하는 것에, 열심히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기도 바빠요.​

정이담, 「신인류 바이러스」 (p.175 참조)
   내가 가진 유일한 건…. 손가락을 움직이자 날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손에 끼운 플라스틱 손잡이를 짤각였다. 바지를 내렸다. 변기 안에 핏물이 번졌다. 정확히 한 달 만이었다. 내 몸은 한 달을 주기로 피를 흘렸다. 신인류들은 그걸 신성한 상태로 여겼다. 임신을 준비하는 경이로운 상흔이고, 영광의 기간이라고. 그러나…. 내겐 아직 음경이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유물이…. 나에게는 아직도 달려있다. 손놀림이 빨라졌다. 피는 내 아래에서 길게 늘어져, 물속에 회오리 모양의 흔적을 만들었다. 나는…. 몸을 씻고 싶었다. 샤워실에 들어가고, 몸을 드러내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갈 때 신경을 쓰지 않고, 목숨을 보전하고 싶었다…. 나는 뻑뻑한 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게 없는 한, 아니, 이게 있는 한…. 누군가는 나를 ‘-라고’ 부르겠지. ‘없는 년’이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단지 이것 때문에.​

아람, 「사랑하니까 반대하는」
낭독문 「도망친 이들에게 보내는」 (p.2.)

   이 이야기는 제가 경험한 연애가 그렇듯, 서로를 구원으로 이끌어 낼 것 같은 환상에 두 주인공을 젖게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후반부에 가서 수아의 마음은 의심과 환멸, 불안으로 지옥이 되죠. 하지만 어쨌든 수아와 현수는 여느 연인과 같이 반목하다가, 화해하다가, 서로에게 존재가, 때로는 부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어느 시기를 지나치면 헤어지기도 하고, 다른 길을 걷게 될지도 몰라요.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입니다. 어느 한 시기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떤 존재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지만, 얼떨결에 최선을 다해 한 시기를 통과해내는 것. 먼 시간이 지나 비로소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난 후에야,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어느 순간에 자신을 지탱했음을 깨닫게 되는 그것이 제가 경험한 청소년기였고, 사랑이었다고.

어쩌면 그것은 일상 자체가 재난인, 일상과 아포칼립스가 구분되지 않는 소수자의 삶을 조금 더 영위하는 꽤 나쁘지 않은 편법이라고. 도망 끝에 낙원은 없지만, 우리는 필히 도망치게 될 것이며,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맞잡은 손이 되어야 한다고. 그것이 제가 재난에서 살아남은 방법이라고.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의 키워드를 ‘도망치는 이들에게 보내는’이라고 정했습니다. 도망치는 이들에게 보내는, 그 뒤에 단어는 일부러 붙이지 않았어요. <델마와 루이스>가 그랬듯,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그랬듯, 물론 앞선 두 개의 훌륭한 작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 소설이 그랬듯, 도망침 뒤에 무엇이 올지 몰라 미처 미완성인 이야기처럼, 이 문장 또한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도망친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기록, 찬사. 또는 미완성된 어떤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은 어떤 단어를 붙이고 싶으신가요. 그 뒤의 이야기, 그 뒤의 문장이 무엇이 될지는 이제부터 같이 상상해봅시다. 새로운 세계,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일이 또 소설의 역할이자, 아포칼립스의 매력 아니겠어요. 사는 일이 재난인 소수자의 삶, 이제 있는 힘껏 여기서 도망쳐봅시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수아와 현수를 만나면 우리가 가만히 손을 잡아주면 좋겠어요. 서로의 운명을 아는 이들의 어쩔 수 없는 서늘한 체온으로, 슬픈 눈길로.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서로의 용기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저는 썼습니다.

   2019년 7월 7일,
   비로소 소설을 마치며, 무수한 당신들의 안부를 걱정하며. 고맙습니다.

영이, 「낙엽」 (pp.220-222 참조)
   나는 그의 몸에 달라붙은 채 크기가 늘어 가는 낙엽들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 가면서 낙엽이 붙지 않은 부분만 골라서 발로 찼다. 그는 제발 살려 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의 말을 내가 따를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는 낙엽에 먹혀 들어가면서도 완고하게 문과 문틀을 붙잡고 버텼다. 자신의 몸이 먹혀 들어가는 이가 이렇게 힘이 강해지는 것이 이상한 것일까, 아니면 당연한 것일까?​
   그거야말로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데스크 위의 라이터 연료를 한 움큼 집어 그의 머리에 던졌다. 몇 개는 깨지지 않은 채 튕겨 나왔지만, 확실히 부서진 몇 개의 라이터 연료가 나의 행동이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나는 담배 한 갑을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그의 머리에 집어 던졌다. 불은 한꺼번에 솟구쳤고, 내 눈앞까지 순간의 불기둥이 다가왔다가 다시 돌아갔다. 그는 더 이상 살려 달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의미를 지닌 듯한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를 몇번 더 발로 찼다. 이번에는 낙엽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불길도 피해야 했으므로 내가 발로 찰 수 있는 곳들이 줄어들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완고함을 보여줄 수 없었는지 뒤로 굴러떨어졌다. 역시 자신의 몸이 먹혀 들어가는 이가 힘이 강해지는 것은 이상한 것이었다. 그것을 불의 섭식으로 덮어씌우니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그가 낙엽, 그리고 불로 만들어진 옷을 조금 더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정상으로 돌아갔으니 그가 겪는 것도 이전보다는 합리화가 되었을 것이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알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편의점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위의 자물쇠와 아래의 자물쇠를 모두 잠갔다. 이제 내가 나가기 전까지는 이 문이 열릴 이유가 없었다.​

​카프, 「나의 존재는 하얀 거짓말」 (pp.253-254 참조)
   아야는 나뭇잎으로 뒤덮인 모래 위에 누웠다. 우리는 아야를 원으로 둘러싸고 다 함께 노래했다. “사막의 그늘을 찾는 이여 우리가 너의 그늘 되기 원했건만 네가 숨기에 충분하지 않았구나. 이제는 태양을 뒤로한 채 너의 그늘 위로 눕거라.” 아야가 우리의 노래에 답했다. “사막에 그늘을 주는 이들이여 그대가 나의 그늘 되었지만 나 더 이상 숨기를 원치 않아. 이제는 태양을 마주 보며 나의 그늘 위에 눕노라.” 우리는 다 함께 노래했다. “사막의 그늘을 거둘 이여 하늘의 태양이 지기 전에 안식의 밤을 향해 가는구나. 나 다시없을 그대의 그늘과 모래 위 그림자에 인사하리.” 노래가 끝나자 칸은 아야에게 콘릴리 줄기를 으깨어 낸 즙을 먹였다. 즙을 먹고 난 아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평소처럼 평안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자다 눈을 뜰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부를 것 같았다. “마아.”하고. 그럼 나는 대답하겠지. “아야.”하고. 이제 우리는 영원의 세계에서 다시 만나리라. 고통도 거짓도 없는 그곳에서.​


창작모임과 출판 프로젝트는 힘이 닿는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본 책은 경북 포항시 달팽이책방, 전북 전주시 에이커북스토어, 제주 제주시 책방무사, 카페 두잉 에서 구입하실 수 있으며, 추후 더 많은 장소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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