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6회 무지개책갈피 퀴어문학상 수상작 심사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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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1-09 21:44본문
2022 제6회 무지개책갈피 퀴어문학상 수상작은 김멜라 작가님의 『제 꿈 꾸세요』입니다.
이하는 심사평 전문입니다.
<심사평 전문>
김멜라의 두 번째 소설집 『제 꿈 꾸세요』에서 꿈은 서로를 서로에게 이어주는 가교(架橋)와 같은 꿈, 언제나 ‘가는 중’인 꿈이다. 새로운 생명이 찾아오는 것을 예감하는 꿈인 태몽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죽음 이후 ‘길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꿈을 향해 떠나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세간에서 꿈은 헛되고 황당하며, 현실의 생활세계와는 유리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김멜라의 소설 속에서 꿈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연결되는 꿈(「링고링」)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안녕을 말하고 기쁨을 전하기 위한 꿈(「제 꿈 꾸세요」)이며, 이러한 꿈의 공간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좋은 만큼 무서운 마음이 들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좋아.”(46쪽)
첫 번째 소설인 「링고링」은 화자인 ‘나’와 영주와의 관계, 그리고 ‘나’의 엄마가 아닌 엄마의 친구인 ‘링고 이모’가 대신 꿔준 태몽인 “링고가 꾼 링고 꿈(23쪽)”이라는 기묘한 연결 고리로 엮여 있는 이야기이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와 ‘링고 이모’와 함께 엄마의 고향인 영주에 방문했다가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시간을 목격한 후,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면서 ‘나’는 엄마와 ‘링고 이모’를 더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타인과 안전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나는 엄마의 고향인 ‘영주’와 같은 이름을 가진 영주라는 동급생과 친구가 된다. 영주와 함께 다시 한번 엄마의 고향인 영주로 찾아갔을 때, 엄마와 링고 이모의 모습이 떠오르고 친구인 영주가 좋을 때면 찾아왔던 두렵고 무서웠던 마음은 그보다 더 크게 좋은 마음으로, 그렇게 좋은 마음을 스스로 인정할 용기로 바뀐다.
과거의 시간이 현재에서 되살아나는 이야기의 여정은 서로 몇 년 동안이나 연락하지 않았던 대학 동아리 후배 ‘앙헬’이 선배 ‘체’로부터 할머니를 만나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에 응하기 위해 체와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여정인 「나뭇잎이 마르고」에서도 이어진다. 후배인 앙헬에게 고백하는 체의 마음은 거절되고 앙헬이 체에게서 다른 ‘주름’을 읽어낼 수 있었던 가능성은 결렬되지만, 재회를 통해 이러한 결렬과 만남, 호의를 다시 마주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은 과거의 시간이 영혼에 남긴 다른 ‘주름’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식 인준받지 않아 학생회관 옥상을 거점 삼는 이 동아리에서 체 게바라 담배를 피우는 한나는 ‘체’가 되고 ‘나’는 체로부터 천사라는 의미의 남성명사 ‘앙헬’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며, 장애인인 체의 “불완전한 발음”(74쪽)은 그저 계속 듣다 보면 익숙해지는 체의 고유한 말투로 통하게 된다. ‘마음씨’는 산에 올라 씨를 뿌리는 동아리이기도 하지만,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고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며,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장애인도 마음껏 운전하고 바다에서 서핑할 수 있을 거라고”(73쪽) 말하며 미래에 대한 상상의 씨를 뿌릴 수 있는 퀴어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퀴어한 상상력이 지배적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전복의 힘은, 레즈비언 커플 먹점과 눈점이 동거하는 집에서 위태로워지는 페니스를 본뜬 흡입형 섹스토이 ‘모모’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 「저녁놀」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표제작인 「제 꿈 꾸세요」는 예기치 않게 사망해 “혼자 사는 삼십 대 무직 여성”(268쪽)의 ‘고독사’의 모습을 연출하게 된 ‘나’에게 가이드 ‘챔바’가 나타나 다른 사람의 꿈으로 향하게 되는 ‘길손’으로서의 여정에 함께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죽음은 자살 방법으로 시도한 약물 과용 때문이 아니라, 깨어나서 베어 문 크랜베리초코바에 기도가 막혀서 죽게 된 우연한 것으로 가볍고 유쾌하게 묘사되지만,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누구의 꿈에 방문하면 좋은지에 대한 질문은 각기 다른 이유로 곤란한 답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모든 곤란한 이유를 되짚어가며 살아생전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기억 속을 맴도는 동안, ‘나’는 사람들이 죽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대신 자신과 이어져 있는 사람들의 꿈속에 찾아가 그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제 꿈 꾸세요」에 따르면 ‘길손’이 가게 되는 삶과 죽음 사이를 연결하는 꿈은 “세 방향으로 뻗은 마음의 면들”로 이루어진 “커피우유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 커피우유의 밑면을 떠받치는 것은 “어둡고 빛나는 슬픔”(293쪽)이다. ‘나’는 자신이 찾아갈 사람으로 커피우유 비닐팩에 멋지게 빨대를 꽂을 줄 아는 사람이자 이미 한 차례 자살미수로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적 있는 엄마를 선택한다.
이처럼 김멜라의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의 각기 다른 사연을 '빈 괄호'처럼 껴안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해도, 때로 이별이 서로를 갈라놓아도 우리의 삶에서 기쁨과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이후에도 이 모든 구구한 사랑했던 기억이 남아 우리의 영혼에 ‘주름’을 남긴다. 이러한 ‘괄호’의 열어놓음과 ‘주름’의 껴안음이 곧 김멜라가 제안하는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애도의 방식이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살아 있을 때 뭐가 중요한지, 삶과 죽음, 우리가 단절되어 있다고 믿는 그 사이에 어떤 힘이 있어 우리를 서로에게 연결해주는지, 어떤 논리도 너에게서 기적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할 거야.”(204쪽, 「논리」 중에서)
아직은 직접 가본 적 없어서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러한 기적적인 꿈의 공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상상력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꿈의 공간 또한 꼭삼각뿔 모양의 비닐팩에 담긴 커피우유만큼 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