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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대한 가장 퀴어한 질문, 엘렌 위트링거 <이름이 무슨 상관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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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배 댓글 0건 작성일 15-07-0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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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무슨 상관이람>

엘렌 위트링거, 정소연 역, 궁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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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미국에서 초판 발간, 국내엔 2013년에야 번역 출간된 엘렌 위트링거의 <이름이 무슨 상관이람>은 퀴어문학과 청소년문학에 대한 편견을 동시에 뛰어넘는 수작이다. 이 책은 미국의 한 바닷가 마을 스크럽 하버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열 명의 청소년이 각자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명의 화자를 내세우지 않은 것은 ‘전형(stereotype)’을 넘어 ‘사람’을 볼 수 있도록 작가가 선택한 기법이다. 결국 ‘이름’이란 키워드를 통해, 이름에 부착되는 필연적인 정형을 탐구하고, 이름 이전에 존재하거나 이름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을 꽤나 치열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게이가 등장하기 때문에’ 퀴어문학이라는 단순한 정의를 넘어서서 정체성 자체를 질문하게 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퀴어문학으로 볼 수 있겠다. 소설의 모든 인물은 이름, 즉 정체성을 탐구한다. 따라서 모두가 퀴어하며, 이 소설 역시 더없이 퀴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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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엔 10명의 화자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사는 마을의 이름도 일종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결국 이름이란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고 묶어주는 빵끈^_^같은 역할을 한다. 마을, 국가, 성별, 인종에 대한 이름은 당연히 그렇지만, 각각의 사람에게 부여되는 이름, 고유명사도 마치 그 한 개인을 완전히 설명해주는 듯한 또다른 대(표)명사와 같다. 내가 부여받거나 선택하거나 반복적으로 ‘숨쉬는’ 이름 혹은 정체성(보배, 여성, 레즈비언, 한국인 등등)은 엄밀히 따지면 내게 매 순간 부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와 상황에 따라 전면화된다. 그렇기에 “모두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오닐’의 말에 “그건 정체성이 아니야. 정형일 뿐이지”라고 답한 크리스틴의 말은, 정체성의 신화를 재고하게 한다.(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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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너라는 사람이기에, 나는 나”이다.(112쪽) 모든 이름과 정체성은 상대적일 때에만 유의미하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이름과 정체성은 결국 우리가 그토록 욕하는 정형성에 적극적으로/필연적으로 기대어 있다. 내가 이성애자가 아니라 동성애자임을 깨닫거나, 획득하거나 선언할 때, 그때의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는 극히 정형적이다. 이러한 정형성을 극복하고자 ‘퀴어’란 쿨한 이름이 생겼지만, 그 역시도 퀴어 아님에 대한 정형적 반대항이다. (또한 퀴어는 지나친(?) 다양성을 표방하는 탓에 집단을 하나로 묶어주는 빵끈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욕을 먹어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세상에 ‘맞거나’ ‘옳은’ 이름이란 존재하지 않고, 모두 필요에 의해 이리 붙였다 저리 붙인 결과처럼 보인다. 이름의 상대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오닐’-‘퀸시’의 에피소드이다. 남동생 ‘오닐’의 커밍아웃 이후 ‘퀸시’가 선 자리는 급격히 출렁이고, “동생이 자기가(이 강조표시는 중요하다) 누구인지를 선언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234-235쪽) 이름은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름은 나와, 내가 속한 모든 집단을 묶는 빵끈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름이 갖는 지위와 우리가 이름에 갖는 태도는 더욱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름이 절대적이고 완전하다는 신화는 (익히 아는대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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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작가는 이미 여러 곳에서(146, 152, 160, 174쪽 등) 이름의 신화에 무감각해져 저지르는 실수, 편견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이 소설 전체는 이름으로부터 한 발짝 멀어지도록 돕고 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름은 쓰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고까지 여겨진다. 이름이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도 물론 아니다. 지긋지긋한 이름에 염증이 느껴져 극단적인 해체론에 가까운 지향을 갖고 있을 때에도, 인간을 성별/인종/국가 등의 이름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었다. 급진성을 오해했던 시절에 상상했던 ‘이름 없음’의 천국 역시 또 다른 신화에 불과할지 모른다. 다양한 퀴어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점점 이름이 늘어나고 있는 것(LGBTQIAQP…)도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순간들 속에서 이름은 때로 5G 이상의 무게로 압박을 주고, 때로는 무중력에 가까운 가벼움으로 흩어진다. 대부분의 경우 이름과 정체성은 양자택일이라 선택의 폭이 매우 좁은데, 체감하는 무게는 스스로 구성해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야 스크럽파와 폴리파라는 다소 유치한 싸움의 형국에 수동적으로 휘말리는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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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 @blueriox

퀴어문학 마니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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