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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는 강하지만 퍽 무른’ 테이블처럼 ― 황정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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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악어새 댓글 0건 작성일 18-10-07 18:00

본문

황정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전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munhak3.com/section.php?thread=22r09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 대해서 쓸 때는 늘 부담감을 느낀다. 아무리 짤막한 리뷰라도, 심지어 140자짜리 트위터 멘션하나에도 괜히 힘이 들어간다. 겨우 이것밖에 읽지 못한 독자라서 죄책감이 들고, 또 이것마저 틀렸을까봐 혹은 이것마저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봐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작가, 황정은의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 대해서. 그러니까 미리 예고하건대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모아둔 쓰다만 팬레터가 될 것이다. 



먼저 이 소설의 형식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이 소설은 [문학3]의 웹 플랫폼인 문학웹 3X100에서 연재된 소설이다. 리뷰를 작성하는 지금 (18.10.7) 기준으로는 아직 종이책으로 출판되지 않았기에, 퀴어문학리스트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한다(1화)’는 소설의 고백처럼, 웹 연재를 기획하고 만들어졌을 그리고 아마도 키보드로 작성되었을 이 글은 마치 말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워드 파일에 쓰는 일기처럼 화자의 내밀한 감정, 생각의 이동과 멈춤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써야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소설이 무엇을 말할것인가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면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일기 같은 소설은 의미심장하다. 고백되어야하는 것과 고백하지 않아도 되는 것, 거기에는 우리들의 퀴어함과 죄책감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어느 늦은 아침, 화자 ‘나’가 화자의 동생q, q의 아들인 소고, 그리고 ‘나’의 연인인 k를 깨워야 한다고 말하며 시작된다. 이 조용한 낮의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내력을 잠깐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킴스클럽 계산대 직원으로 취직하고, 옮겨간 백화점에서 유통업자와 만나 결혼한 q(화자의 동생)는 핑크를 좋아하고 앉아서 소변을 보고 그것으로 놀림 당하는 소고를 키우고 있다. ‘나’의 연인인 k는 일하고 있는 재활센터에서 ‘상식적’으로 혼기가 지난 여자 나이라며 결혼을 강요당한다. 동생은 가지 못한 대학에 진학한 일, 어린시절 함께 쓰던 방의 벽지와 구조를 결정할 권한이 동생에게 없었다는 것 등을 생각하는 ‘나’는 동생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종종 ‘나’와 k의 집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소고에 대해 의논한다. 이들의 고민은 ‘물기에는 강한 듯 하지만 퍽 무른’ 탁자에서 이야기된다. 


우리가 이런 고민과 대화를 나눈 장소는 대부분 아침저녁으로 모이곤 하는 이 집, 이 식탁 앞에서였다. 이런 문제가 이렇게 사적인 테이블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누구의 고민을 우리가 대신하고 있는 것일까. (7화)


  


화자의 고민은 단순히 개인적 삶에 그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1996년 연세대 고립, 2014 세월호, 2016 박근혜 탄핵의 역사를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빈번히 자료가 인용되는데) 서술하고 있다. 그간의 기록들, 그러니까 학교나 동아리방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무용담이나, 역사책에서, 어쩌면 신문에서 보아왔던 기록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이것이 여성화자의 입에서 발화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k와 q는 각각의 자리에서 이 사건들을 경험한다. 소설 속에서는 개입했다는 죄책감과 개입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개입했을 때 생기는 탈력감과 그렇지 않았을 때 생기는 탈력감들이 서로 교차한다. 때로 그것은 서로를 공격하고 두렵게한다. 


너는 무섭냐고 내가 말했다.

결국 네가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 죽음을 말하는 동안 네가 상처받고 네가 아플것.

그것이 무서운 것 아니냐고.

그날 q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목까지 창백해진 그 옆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 왜 이렇게 비열하게, 사람을 몰아붙이고 강력하게 오해하며 오히려 그녀를 비열하다고 여기면서 누군가를 혹은 뭔가를 향해 비열하다, 그 말을 하고 싶어 안달하고 있는지, 이런 말을 하고 이렇게 구는 것보다는 차라리 우는 게 낫지 않은지, 얼굴을 찌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우는 게 낫지 않은지를 생각하면서 아마도 q가 내일은 오지 않을거라고, 내가 사는 집을 다시 당분간 방문하지 않을거라고 추측했지만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q는 왔다. 그런 일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번 혹은 네번...... 가볍게 대화하다가도 우리는 서로를 향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침묵으로 다투곤 했고 그러면서도 매일 아침이나 저녁에 고집스럽게 모여 서로의 안부와 일상을 물었다. 서로가 존재하며 무사하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확인했다. (12화)




각 자리에서 마주하는 혐오와 폭력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어떤 혐오들은 혐오가 있으리가 기대되지 않는 장소에서 (사실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좀 더 강력히 믿게되는 장소에서)조차 기능한다. ‘나’와 k가 탄핵집회에서 목도한 ‘악녀 OUT’ 같은 글귀들이 그렇다. 어떤 것은 배제의 형태로 우리가 모르는 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그것들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거나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우리는 폭력의 주체이며, ‘정상’이라는 안온한 체계의 수혜자이기도하다.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면서, ‘나’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알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몰랐던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또 ‘나’는 세월호에 대해 무엇이라도 말할 것을 독촉하며 ‘침묵으로 다투는’ 사람이기도하다. 


동학농민운동, 만민공동회 운동, 4.19 혁명과 87년 6월항쟁까지....... 한번도 제대로 이겨본 적 없는 우리가 이기는 것이다. 이 나라 근현대사에서 우리는 최초로 승리를 경험한 세대가 될 것이다. 탄핵을 바라며 거리로 나선 사람 모두에게 그 경험은 귀중하고 빛나며 벅찬 역사적 경험일 것이고 그리고......... 그렇다. 내게도 몹시 그러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들을 받는 것........저 문장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지난 계절 내내 새로운 문장을 써왔고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제 그 문장은 완성되었다. 혁명이 이루어진 날..... 그래서 오늘은 그날일까? (마지막화)





이런 세계에서 말한다는 것, 글쓴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난 9월 인천퀴어문화축제 이후로 모든 글을 인천퀴어문화축제와 연관해 생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모든 글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처럼 인천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 쓰는 버릇이 생겼다. ‘집에가’라는, 우리의 눈 앞에서 사라져서 영영 무지의 굴레로 들어가라는 혐오세력의 외침속에서 외쳤던 말을 기억한다. 우리는 여기있다. 그것을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 어떤 경험이었는지를 다시 떠올린다. 그러나 강력한 구호만큼 나를 구원했던 것은 퀴어퍼레이드가 끝난 후에 오간 카톡들, 이를 테면 ‘오늘은 집에 돌아가서 잘 먹고 잘 자고, 부디 아프지 말자’고 하던 약속들이기도했다.



혁명이 도래했다는 오늘은 나는 이렇게 기록한다. 


우리가 여기 모였다고.  

간밤에 잠을 설친 사람들이 세수만 하고 이 자리에 모여 늦은 아침을 만들어 먹었다고. q가 소고에게 줄 간식으로 하루밤 달걀물에 담근 식빵을 가져왔고 그 양이 넉넉해서 우리가 거기에 버터를 더해 토스트를 해 먹었다고. 오렌지도 잘라먹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깔깔 웃으며 서둘러 식사를 준비하고 다 같이 먹고 올리브잎 차도 한잔씩 마셨다고. (마지막화)





두서없이 써내려갔지만, 내가 이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겪는 부채감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는 퀴어로서 커밍아웃 하거나 하지 않을 때 (심지어 양쪽 모두의 경우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어떤 것은 너무도 사회의 문제 같고 또 어떤 것은 너무도 나의 문제 같이 느껴진다. 나는 약한 사람들에게 너무 강하고 강한 사람들에게 너무 약한 사람같다.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모두 어디쯤에서 부채감을 떠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거나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래도 이 글을 읽으면 내가 먹고, 웃고, 차도 한잔해도 될 것 같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다가 어쩌면 한번쯤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를 테면 ‘물에는 강하지만 퍽 무른’ 테이블처럼. 





악어새

그리고 황정은 작가님 사랑해요 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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