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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눈나비들에게 봄은 왔는가―윤이형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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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숭아 댓글 0건 작성일 16-11-0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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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눈나비들에게 봄은 왔는가―윤이형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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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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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혜안'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인 '수진'을 떠나면서 남긴 편지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수진'은 '혜안'을 추억하며 '나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고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를 절규하는 여자가 되게 해준 건 오직 그녀뿐이었다. 혜안은 나를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p.135)'라는 말을 남긴다. '혜안'은 어떤 인물이길래 이토록 절절한 평을 남기게 만드는 걸까? 이 리뷰는 '혜안'이라는 인물이 '수진'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수진'과 '혜안'은 ''절규'라는 간단한 이름으로 열어놓은 인터넷 카페 하나를 공동으로 운영하(p.139)'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바로 사람들의 ''절규를 대신해(p.139)'주는 것이다. '수진'은 그 일을 두고 '사람들이 결코 토해내지 못한 것들을 대신 토해주고 돈을 벌었다(p.135)'고 말하고 있으며, '절규하는 여자는 나였지만 기묘하게도 혜안이 없으면 그 일은 불가능(p.135)'했다고 고백한다. '수진'은 '내가 영문 모르고 굿판에 불려와 사지를 덜덜 떨며 신내림을 받아내는 초짜배기 강신무였다면, 혜안은 매번 내게 잔인하고도 끔찍한 신병을 내려주는 베테랑 샤먼이었다(p.142)'고 표현한다. 즉 둘은 최고의 파트너였고,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행할 수 없던 일로 돈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작중 내내, 주인공인 '수진'이 가진 절규하는 능력은 스스로의 입을 통해 설명되고 있지만 '혜안'이 가진 기묘한 능력은 설명되지 않고 있다. 대신 우리는 다른 곳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수진'은 '혜안'은 처음 만난 날 그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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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그녀는 내가 취하는 것을 돕기 위해 다른 차원에서 떨어진 비현실의 스트레이트잔 같았으므로.1)

(…) 그녀는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예뻤다. 나는 처음 보는 그녀에게 일종의 매혹을 느꼈으나, 그 매혹은 어딘가 지독하게 답답한 것이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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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이 느낀 이 '지독하게 답답함(p.149)'은 바로 '혜안'의 성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녀는 레즈비언이었다. '혜안'의 집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으며,?그녀는 '28년 동안 한 번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p.151~152)'던 사람이었다.?하지만?'혜안'은 하필?'여자를 사랑해본 적이 없는 사촌 동생을 사랑(p.151)'하게 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혜안'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여러 번 숨을 들이마(p.151)'쉬거나 '둘이서 손을 꼭 붙잡은 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시간이 멈추기만 기다(p.152)'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두 사람의 비밀스런 연애가 발각되면서 두 집안은 난리가 난다. 그때를 회상하며 '혜안'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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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아주 짧은 순간이었어.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 목으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존재 자체로. 이십몇 년 동안 한 번도 말해보지 못한 내 진짜 이름을 크게 써서 엄마 아빠 눈앞에 흔들어 보이고 싶었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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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은 며칠 뒤 감시를 피해 함께 근신 중이던 사촌 동생에게 몰래 전화를 걸었고, 둘은 도망을 약속한다. 하지만 '약속한 날 새벽, 사촌 동생은 나오지 않았(p.153)'고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사촌 동생이 선을 보았으며 다음 달에 결혼까지 한다는 소식을 듣고야 만다. 그 얘기를 듣던 '수진'은 '혜안' 대신 소리를 질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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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 바보야, 멍청아! 네가 거길 왜 가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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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수진'의 서술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그녀는 나의 첫 의뢰인인 셈이었다(p.155)'고. 이 사건이?일어난 뒤 곧바로 둘은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절규를 대신하는 일을 시작했다.?'혜안'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사람과 닮은 사람인 '수진'을 통해 성 소수자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답답함을 해소시키려 했다. 자신의 절규하고픈 마음을 의뢰인들에게 투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혜안'과 만남을 가진 뒤에도 '구십구 퍼센트 스트레이트였(p.153)'던 사촌동생처럼, '수진' 역시 남자인 의뢰인과 사귀게 되었다. '수진'은 '꼭 그 남자 때문은 아니었다(p.175)'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결국 서로 목적이 뚜렷하면서도 진정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없었던 '혜안'과 '수진'의 관계는 끝날 수밖에 없었으나, '혜안'은 '수진'이 그 의뢰인과 사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이런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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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귓불에 매달린 피어싱을 쑥스럽다는 듯 만지작거리면서, 야, 근데 솔직히 얼굴은 좀 아니더라, 너 취향 좀 이상해, 하고 쿡쿡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한차의 침묵 끝에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애가 돌아왔어. 그러니까 나도 돌아갈게, 갈 때 되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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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진'은 혜안의 자깁에서 자신과?'퍽 닮았지만 아무런 흠집도 없는(p.176)' 그리고 '결코 혜안에게 돌아오거나 할 얼굴(p.176)'이 아닌 사촌 동생의 사진을 발견하면서 '혜안'이 자신과 함께 있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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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은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던 자신의 사촌 동생이 울고 소리치고 온몸을 떨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너도 사실은 아팠겠지, 하는 남모를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일까. 혜안과 나는 서로를 이상한 청동 거울처럼 이용하는 사악한 흑마법사들에 불과했을까. 붙들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한 번도 우리에게 귀기울여주지 않았던 이들을 거울 위에 불러내, 목소리로 혹은 온몸으로 그 얼굴 위에 날비린내 나는 것들을 퍼붓는.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결코 치유 따위의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시큼하고도 유쾌한 위안이었고 먹기 싫은 쓴 약을 삼키는 가장 달콤한 방식이었다고. 하지만 입을 벌리고 있어도 그런 말은 결코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소리치는 건 그렇게도 쉬웠는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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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컬하게도 '수진' 또한 그런 '혜안'에게 위안을 얻고 있었다. '수진'에게 있어서 '혜안'은 '가장 끔찍한 것들이 조금씩 배설되는 것을 눈 돌리지 않고 지켜보아준 유일한 사람(p.156)'이었으며 '수진'을 욕망했지만 '수진'에게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너를 원하지도 않을 거고. 우리 서로 촌스럽게 굴지는 말자. 나도 그러지 않을 테니까(p.159)'라는 약속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수진'은 '혜안'이 잠든 모습에서 그녀의 본모습을 본다. '혜안'은 '(……) 파충류의 잔인하고 공허한 눈동자가 아니라, 험악한 세계를 견디기 위해 순한 나비가 제 날개에 새겨 넣은 커다란 가짜 눈동자(p.178)'를 가진 뱀눈나비였다. '수진'은 '혜안'이 떠난 뒤 그녀와 함께 개설했던 '절규' 카페를 폐쇄하며 '이제 곧, 나비들이 있는 곳에도 봄이 오겠지(p.179)'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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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2006년에 쓰여진 작품이다. 이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혜안'은 소리 없는 절규를 멈출 수 있었을까? 과연 나비들이 있는 곳에도 봄이 왔을까.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런 질문에 떳떳하지 못하다. 여전히 추운 겨울이고, 그들은 우리 주변에서 소리 없는 절규를 지르고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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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윤이형, 「절규」, 『셋을 위한 왈츠』, 문학과지성사, 2008, p.148.

2) 위의 책, p.148~149.

3) 위의 책, p.152~153.

4) 위의 책, p.154~155.

5) 위의 책, p.175.

6) 위의 책, p.17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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