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가 반드시 갈라선대도 ― 한강, <에우로파> > 전지적 퀴어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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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가 반드시 갈라선대도 ― 한강, <에우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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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칠월 댓글 2건 작성일 15-11-2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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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느 여름 이런 일기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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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물밑이고, 나는 숨쉬는 것도 아파 죽겠고 그렇다. 도무지 잠이 안 와서 자는 걸 포기했다. 내 곁에 누워 있던 그가 생각나고, 얇은 옷 너머로 등에 와닿던 그의 숨결이 생각난다. 그때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가 깰까 봐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가만히 숨소리만 듣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잠든다는 건 안심일까 방심일까. 기댈 등을 내어주는 건 안심일까 방심일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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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많이 아파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도 다가가지 못했고, 안으려고 손을 가져다 대다가 싸늘하게 얼어붙곤 했다. 그의 잘못도 아니고 나의 잘못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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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에우로파>는 소설보다는 일기 같다.

?작품의 주인공은 트랜스젠더이고, 그녀의 친구인 인아는 ‘여러 차례에 거쳐 자신의 몸을 바꾼’ 인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크게 색깔과 형태를 바꾸지 않고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몸을 바꾼다. 지난 십 년 동안 내가 만나온 인아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이젠 알 것 같다.’ (89p)

?필자는?트랜스젠더, 퀴어적 요소 자체를 기준으로 작품을 읽지 못했다. 제목인 <에우로파>가 서술자인 ‘나’가 아닌 인아를 가리키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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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아는 6년간의 결혼 생활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작품 내에서 그 내용이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 즉 내가 인아의 표면 아래를 결코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 바로 작품의 일기적 특징이다. 반대로 인아는 나의 표면 아래를 알며, 그것을 돕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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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는 가볼 수 있는 데까지 다 가봤어. 밖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어. 그걸 깨달은 순간 장례식이 끝났다는 걸 알았어. 더 이상 장례식을 치르듯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어. 물론 난 여전히 사람을 믿지 않고 이 세계를 믿지 않아. 하지만 나 자신을 믿지 않는 것에 비하면, 그런 환멸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중략)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말한 건 네가 방금 물었던, 왜 그런 델 다니면서 노래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진짜 대답이 아니야. 그 대답은 너에게 하고 싶지 않아.?(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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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로파는 목성의 위성이다. 두터운 얼음층 표면을 가졌으며, 내부는 깊이 100km 이상으로 추정되는 바다라고 알려져 있다. 막연히 얼음층이 갈라지면 금세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에우로파는 그리 쉽게 갈라지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다. 인아는 그런 캐릭터다. 마치 인아 본인이 부른 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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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암석 대신 얼음으로 덮인 달//

지구의 달처럼 하얗지만/ 지구의 달처럼/ 흉터가 패지 않은 달//

아무리 커다란 운석이 부딪친 자리도/ 얼음이 녹으며 차올라/ 거짓말처럼 다시 둥글어지는,/ 거대한 유리알같이 매끄러워지는//

에우로파,/ 얼어붙은 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내 삶을 끝까지 살아낸다 해도/ 결국 만질 수 없을 차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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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인아는 ‘결국 만질 수 없을 차가움’이다.

?하지만 어쩌면 나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이야말로 인아를 더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아는 나의 고백을 기점으로(너 같은 목소리를 갖고 싶고, 너 같은 몸을 갖고 싶어. 어떤 밤에는, 그 갈망 때문에 미칠 것 같을 때도 있어. 77p)?분명한 전환을 경험한다.

?때문에 나는 인아가 싫어하지 않을 만큼만 다가가 인아가 내미는 손길에 담담하게 반응하고, 어쩔 수 없음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그들을 유지시키는-목성과 에우로파를 묶는?조석력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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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고통을 주는 데가 있는 인아의 웃음을 보며 생각한다. 언젠가 그녀가 나를, 내가 그녀를 깊게 상처 입히리란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산책이 영원하지 않으리란 것을 안다.

?인아의 방을 나서기 전에 나는 묻는다.

?그대로 잘 거야? 불 꺼줄까?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복종하듯 나는 스위치를 내린다. 인아의 단단하고 창백한 얼굴이 순식간에 어둠에 잠긴다. 다시 스위치를 올려 날카로운 불빛을 불러들이거나, 저 불분명한 어둠을 향해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나는 침착하게 억누른다.?(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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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나와 누군가를 묶는 힘이 견디지 못할 만큼 나를 슬프게 만들지만?나는 그들을 좋아한다. 내가 스며들지 못한 그 표면 아래에 그들의 바다도 여전히 깊다.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 우리를 아직 엮어두고 있다. 간혹 어떤 관계는 어찌할 수 없음이라는 속성을 가진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고 어찌 말할 수도 없다. 그저 우리에게는 ‘스며들지 못했다는 사실’만이 분명할 뿐이다. <에우로파>는 그?어쩌지 못할 것에 대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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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그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곁에 남아 있는지?서로에게 애써 서술하지 않는다.

?가을날 나는 썼다. “그가 누구이든 정말 좋아한다. 좋아하기 때문에 슬프지만 이런 슬픔이라면 견딜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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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월

시인

마저 쓰라 더 쓰라 아직 쓸 수 있다

어르고 달래서 나를 글자 앞에 앉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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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오늘도님의 댓글

오늘도 작성일

잘 보고가요

김칠월님의 댓글

김칠월 작성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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