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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 와서 죽었니? 라고 묻는다면 - 이응준 <이교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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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악어새 댓글 0건 작성일 15-11-11 23:44

본문

131-이교도의 풍경.jpg

수록 단편 <이교도의 풍경>

이응준, 문학동네, 1999

 

 

 

 


해안가 모래사장에서 고래들이 말라죽어가고 있다. 무슨말인고 하니, 겉보기엔 멀쩡한 고래들이, 대책 없이 육지로 밀고 올라오는 거야. 매년 전 세계적으로 5건 정도가 보고되곤 하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대. 고래 귀에 기생하는 회충이 방향감각을 파괴한다는 병리학적 이론에서부터, 고래의 자살을 믿는 신비주의적 입장까지 다양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 여러가지 추측들 중 상당히 흥미로운 가설이 하나 있어. 종적 기억에 입력된 제 조상들의 항로를 따라, 5천만 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육지로 고래들이 돌진한다는 거야. 그 얘기를 들은 나는 가슴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 우스갯소리밖에는 안되겠지만, 그걸 내 식으로 한번 바꿔 말해볼까? 아마도 고래는 낙타를 사랑하고 있었떤 걸 거야. 사막에 사는 낙타 말이야. 왜, 알다시피 고래도 포유류잖아. 유전자적으로 끝까지 올라가보면 낙타에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무튼 바다에 사는 온갖 고래 중에 몇 마리가 낙타를 그리워한 거라구. 그래서 백사장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거야. 물 한방울 없는, 먼지투성이의 사막을 향해 더이상은 다가가지 못한 채, 사람들은 비웃고 조롱하겠지. 불가능한 사랑이라고 치부하면서. 기껏 인심을 쓰더다도, 안타까워하는 정도일 뿐이야. 고래가 낙타를 그토록 사랑하는지 모르고, 까끌한 모래알을 씹어삼키며 기다리고 있는 낙타의 어두운 고독은 상상도 못하면서. (39-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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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왜 여기와서 죽었니?

 

 

 '백사장에 고래가 죽어있었다.'로 시작하는 시를 본적이 있었다. 아마 교보문고 어느 구석에서 신춘 문예 시집을 뒤적이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스트랜딩 증후군'이라고 한다고 그 시는 친절하게도 작은 별을 붙여주었지만, 그것의 이름보다는 상상되는 그 풍경에 나는 압도당했다. 백사장 위에 배를 드러내고 죽어있는 커다랗고 매끈한 몸뚱이의 고래들, 고래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그 기이한 풍경. 내가 만약 그것을 직접 발견했다면 나는 그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죽음의 풍경에 압도 되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스트랜딩 증후군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은 더 '무시무시'한 광경이 되었다.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낯선 풍경. 어쩌면 그 고래들의 곁에 다가가 그 매끄러운 꼬리에 귀를 대고 물어보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얘, 고래야. 왜 여기까지 거슬러와서 죽었니? 


 그들의 죽음이 미지에 쌓여있기 때문에, 우리의 몫으로 남은 것은 '사인을 더듬 거리는' 것 뿐이다. 우리는 상상하고 재구성한다. 거기에는 아마 고래가 들었다면 비웃어 마지 않았을 온갖 낭설들이 함께 일지도 모를일이다. 아, 그런데 어쩌면 이건 '퀴어'의 일과 좀 비슷하다. 커밍아웃 이후에 재구성되는 퀴어의 삶과 이야기들 말이다. 그래서 걔는 왜 게이래? 아버지 유약하고 어머니가 기가 쎘대? 어릴때 성폭행을 당하거나, 근친 상간적 망상에 시달렸대? 아하, '프로이트'와 '동성애'라고 N모 포탈에 검색하니 이런 기사도 나왔다. "동성애 사조, 신마르크스주의 때문(1)" (!)


 한번도 퀴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퀴어문제와 맞닥드릴때, 어쩌면 그들은 이 사안을 모래사장 위에 자의로 올라와 죽은 고래만큼이나 기이한 것으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이런 심정말이다. 너희는 바다 생물이잖아? 그런데 왜 자꾸 여기에 와서 죽는거야? 그냥, 바다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면 안되겠니? 글쎄, 그런데 흔히 사인을 왜 더듬더라? 용의자를 밝히기 위해서.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그, 왜. 수사물을 보면 흔히들 이런 표현을 쓰지 않던가? "사건의 마지막 한 조각을 맞추기 위해서 입니다" 이런 바리에이션도 있을 수 있겠다. "마지막 조각이 맞아 떨어졌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

 

 <이교도의 풍경>은 주인공이 육개월전 자살한 친구인 문화비평가 구문모의 유언에 따라 자신의 유품을 '주선욱'이라는 남자에게 전해 주기 위해 옥해로 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구문모는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인 '나'에게, 너만큼은 나를 온전하게 이해해주면 좋겠다며 자신의 어떤 공백에 대해 채우기 위해 옥해로 가달라고 말한다. 그 한조각에 대해 구문모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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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는 내 어떤 부분-그냥 한 조각이 아니라, 그 한 조각의 부재로 인해 나머지 모두가 소용없게 될지도 모르는-에 대해 명백히 모르고 있어. 나는 나의 공백을, 나의 가장 따듯한 벗인 너에게만은 채워주고 싶어. 하여 완성된 그림으로, 온전히 '그것'까지를 포함해서 날 이해하고 회상해주기를 바라는 거야.(34p)

 
 미리 스포일러를 하자면, 구문모의 한 조각은 (예상했다시피) 그가 게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자유롭게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숨겨야 한다는 그 근원적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사실 함부로 차치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퀴어함'이 단순한 한조각이 아니라는 점은 아주 중요하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한 조각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혹은 누군가의 퀴어의 문제 앞에 서게 되는 것은 예컨대 이렇다. '종적 기억에 입력된 제 조상들의 항로를 따라(40p)' 발생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02. "스스로 고아가 되어 이교도를 완성하려는 그 불온한 향기에 코끝이 시리다"(37p)

 


 옥해에 도착한 주인공은 주선욱을 만날 수 있기는 커녕 주선욱의 여동생으로부터 냉대를 당한다. 당사자인 주선욱은 이미 집을 비운 상태인데다가 주인공을 만날 생각도 없고 문모의 유품을 받을 의향도 없다는 것이다. '돌아가세요'. 하지만 주인공은 막무가내로 주선욱의 집에 하루만 머물겠다며 청한다. 그리고 그날밤, 주선욱의 여동생을 통해 문모가 게이였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말을 잃어버린다. 구문모라는 인물에 대한 마지막 조각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그 한조각으로 인해 주인공의 세상은 완전히 낯설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퀴어의 커밍아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건 사적 영역의 문제 아니니? 나는 그것을 알고 싶지 않았어. 대체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거야? 그렇게 말하면 네가 좀 더 편해지니? 네가 편해지려고 남을 고통스럽게 해야겠니? 그러나 실은,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을 퀴어로 정체화하는 것이 자신이 퀴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반 퀴어적인 문화에서 그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서 떨어져나오는 일이다. 바다에서 살고 있던 고래가 모래사장의 길을 선택하는 것 만큼,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공동체를 빠져나오는 일이며, 자신을 이교도로 정체화하는 일이다. 그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불온한 일'이며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이교도의 조각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더 낯선 세계를 접하게 된다. 종교개혁자이자 개신교 출발점이 된 루터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으리라. 루터는 자신속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수 많은 고행을 했으나 답을 얻지 못했고, 결국 95개조 반박문을 써 붙임으로 인해 가톨릭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길 요청했다. 그로 인해 카톨릭에서는 불합리한 전승들이 수정되었고, 개신교라는 새로운 방향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옥해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모가 주인공에게 맡긴, 원래는 주선욱에게 갔었어야 할 문모의 유품을 뜯어본다. 거기에는 고래가 그려져있는 판화 원판이 들어있다. 문모는 편지를 통해 "하나의 진실로 하여 다시금 여러장의 진실을 양산할 수 있는 방식(56p)"이기 때문에 판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주인공은 판화에 그려져 있는 고래를 통해 문모가 주선욱을 정말로 사랑했음을 깨닫고는 "이제 이 엄연한 사랑을 나는 무어라 부를까(58p)" 하고 말한다. 문모가 퀴어라는 사실은 문모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이자, 여러장의 진실을 양산할 수 있는 방식이 된다. 퀴어가 우리 곁에 실존한다는 것, 사회에서 고독한 경험을 한다는 것, 야망을 위해 사랑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또 하나의 장을 연다. 주인공은 기차 안에서 이렇게 생각한다. "앞으로는 누구를 만나든,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으리라" 문모의 조각을 맞추는 순간, 주인공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03. 당사자 되기

 


 우리는 어떤 현상에 대한 수많은 '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종종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맞닥드렸을 때, 너 대체 왜 여기에 있니? 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막장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던 모 드라마의 ost도 그렇게 시작하지 않는가.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만해~" 그러나 세계는 수많은 존재들이 함께 있는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우리가 난해하다고 생각되는 현상들과 존재들과 맞닥드릴수밖에 없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침묵속에 죽어가지 않도록 그들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는 것 말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기분을 예로 들어 누군가의 목소리를 쉽게 무시한다. 퀴어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어떤 우연 때문이라고 믿어버리거나, 개인의 의견을 고집하면서 퀴어를 자신의 의식 범위 바깥으로 밀어내는 경우가 이런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눈돌림은 단지 그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느 존재의 혹은 어느 사태의 가장 중요한 어느 조각을 누락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고작 아는 체하지 않는 게 아냐. 자신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온당한 기회를 박탈하는 편견들이지.(56p)"

 

 퀴어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퀴어인 당사자가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적다. 당사자가 퀴어임을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기도하고, 당사자의 퀴어성이 마케팅이 되어 단순히 한순간의 '아, 그랬구나'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랑의 한 당사자로서 위치되기 보다는 '퀴어' 자체가 어떤 코드로 소비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야기 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한국 문단의 거의 유일한 커밍아웃 당사자 작가인 김비 씨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우리 같은 것들의 이 작은 이야기들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슨짓이든 해야겠지. (..) 가짜가 아닌 진짜를 보게 할 수있다면(2)" 하고 말한다. 퀴어퍼레이드는 매해 열리고, 규모가 커져간다. 그래, 이를테면 육지의 단단한 측면으로 자꾸만 몸을 가져다 부딪치는 고래들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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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 집중 좀 하자. 그런 고래들이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너는 왜 존재하니? 라는 물음보다 먼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도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굳이 그런 이야기를 왜 해? 라는 물음뒤에, 굳이 그런 이야기를 왜 해? (나 불편하게) 같은 괄호가 붙어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반성해보는 건 어떨지? 그들에게 자꾸 낭설을 가져다 붙이는 대신에 그들의 존재를 그냥 인정하고 그 조각이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비출 수 있는지를 한번 보는 건 또 어떨지. 어쩌면 그 속에서 사막에 길을 내고 모래를 헤험치는 고래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지는 않을지? 

 

"세상의 모든 사랑엔, 틀림없는 당사자들이 있다. 그것이 고래와 낙타의 사랑일지라도 그러하다." (58p)

 

 

 

 


덧붙임.
이 소설의 작가인 이응준씨는 원래 시를 먼저 쓰셨다고 한다. 그래서 스토리는 어떻게 보면 조금 평면적일 수 있다. 오히려 아름다운 표현과 비유들을 읽는 재미가 있었던 책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악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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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천투데이 2015. 06. 02자 기사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83597
(2) <나나누나나>(2006)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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