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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퀴어이면서 퀴어가 아닌 세계 ― 황정은, <파씨의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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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칠월 댓글 1건 작성일 15-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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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씨의입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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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소설집 <파씨의 입문>에 관해서라면.

?작가의 말에 실려 있는 단정한 문장처럼,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아무도

?아무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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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씨의 입문>에 실린 아홉 작품들은 모두 견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번에 리뷰할 작품은 계획대로라면 수록작 <뼈 도둑>이었지만, 찬찬히 읽어나가다 보니 한 작품으로는 아쉽겠다는?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욕심을 내 세 편의 작품을 동시에 얘기하려고 한다. 이 리뷰를 통해?어쩌면 당신도 세 작품 모두를 읽고 싶어질지?모르겠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리뷰의 소제목들은 모두 작가의 말에서 빌려왔음을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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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여기 묶인 아홉 편의 이야기

?먼저 순서대로 소개한다.

?우선 <양산 펴기>(이하 <양산>). <양산>은 ‘나’의 눈에 비친 민생의 소리에 관한 이야기다. 혁명적이거나 정열적인 시선은 아니다. 그저 장어 구이를 먹거나?지구본을 사기 위해 일을 하고, 카메라에 내 모습이 찍혔을까 궁금해하고,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속으로나 한 번 퉤 뱉는 것. <양산>에는 모든?일상이?더없이 비일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다음은 <디디의 우산>(이하 <디디>)이다. <디디>는 디디와 도도, 그리고 그들의 오랜 친구들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해 말한다. 디디와 도도는 우산으로 이어져 한집 아래 사는 사이다. 디디는 경기가 어려워져 정리해고를 당할 위기에 놓이고, 도도는 방수복을 입고 공항 화물센터에서 일을 하다 만성 발진을 얻는다. 그들은 쉽게 “멈추겠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내 순진한 듯이, 하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이 가운데 어느 문제가 가장 문제라서 돈이 항상 문제가 된다는, 뭐랄까 좆같은 답이 나오는 걸까. 나 오늘 종일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디디>, 175p)

?마지막으로는 <뼈 도둑>, 죽은 연인의 뼈를 찾으러 가는 남은 연인의 이야기. 연인은 둘 다?생물학적 남성이다. <뼈 도둑>에서는 혐오가 남긴 자명한 폭력의 흉터들을 볼 수 있다. ?장의 장례식장에서 장의 가족들은 그에게 친절했으나 그만 가주길 바라는 눈치를 숨기지도 않았다.?(<뼈 도둑>,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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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의 꼴 : 읽는다, 라는 말은 칠한다, 라는 말과 분명 다르다

?<파씨의 입문>(이하 <파씨>) 수록작 중 주인공의 성별을 직접 나타낸 작품은 오로지 <뼈 도둑>뿐이다. <디디>의 경우 ‘오라비’, ‘시집’, <양산>의 경우 ‘사촌 누이’라는 호칭을 통해 간접적으로 성별을 암시한다.?바로 이것을 주의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는 소설을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성(sex)을 가늠하고 있었고, 이윽고 책을 덮었을 때에야 내가 지나치게 편협했음을 깨달았다. 바로 시스젠더-헤테로 중심적 사고 말이다.

?어째서 “화물센터 기내식을 담당”하는 도도가 “오라비”를 가진 디디와 함께 산다고 해서?당연히 남성이고 연인일 거라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걸까? 어째서 “투덜거리며 내게 파고드는” 녹두가 “사촌누이”를 가진 ‘나’와 같이 산다고 해서?여성이고?가족이겠지, 추측해버리고 마는 걸까?

?그들은 단지 인간의 꼴, 인간의 모양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껏 오해해버린 채로 독서를 끝낸다면 우리는 작가의 ‘틈’을 읽을 수 없게 된다. ‘해석의 자유’로 용인할 법한 오해들이 유달리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가가 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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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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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무도 : 무엇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그러자 곧 성(sex)이 암시된 <뼈 도둑>, <디디>, <양산> 주인공들의 성(gender)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대가 부르고 싶은 대로 나를 부르라. 그 남자, 그 기록, 그 새끼, 그 물건, 그것, 나는 즉 그다.?(<뼈 도둑>, 183p)라고 말하는 조에게서는 ‘남성형’ 외의 어떤 ‘누구’라는 단서도 찾을 수 없다.

?조라는 인간은 누구인가? 단지 홀로 남은 게이인가? 젠더퀴어일 가능성은 없을까? …… 많은 상념을 거치면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조는 --이다. ‘그 남자, 그 기록, 그 새끼, 그 물건,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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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디디>의 경우, ?디디와 도도는 그런 밤이 싫지 않아서 세상이 끝난다, 우리가 마지막이다, 농담을 하며 덤벼드는 것처럼 몸을 섞었다.?(<디디>, 166p) 그들에겐?‘연인’이라는 증거가?없다.

?연인의 증거란 무엇인가? 몸을 섞거나 마음을 섞거나 제도로 섞이거나,?많은 길이 있겠지만―흔히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하듯―?단순히 정의하자면 연인이란 그들이 연인임을 실재하는 단어로 말할?때 가장 오차 없이 성립한다. 그러므로?그들을 연인이라 말할 확신은 불분명하다.

?디디와 도도는 디디와 도도. 빌린 우산을 잃어버린 디디와 잃어질 우산을 빌려준 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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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풋내기 인간으로서는 분발하고 있다 : 냉소 혹은 해소

?<양산>의 주인공 ‘나’는 바자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집회가 열리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들은 금세 하나의 소리로 겹쳐든다. ?로베르따 디 까메르노 웬 말이냐 자외선 차단 노점상 됩니다 안 되는 생존 양산 쓰시면 물러나라 기미 생겨요 구청장 한번 들어보세요 나와라 나와라 가볍고 콤팩트합니다 방수 완벽하고요.?(<양산>, 144p)?‘먹고 사는’ 이야기인 것은 똑같은데도 어쩐지 각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또 서로가 애써 부대끼는 외면들이 공존한다. 사고 팔아 먹고 사는 사람들과 사고 팔아 먹고 살기 위해 길거리로 나온 사람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행사 멘트를 중얼거리는 ‘나’에게 녹두는 시(詩)냐고 묻는다. 그러자 ‘나’는 노래, 라고 대답한다.

?시를 쓰는 필자는 고민했다. 시와 노래의 차이란 무엇일까. 요약해보자면, 시에 음정을 붙여 더욱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노래, 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흥(興)이 더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게 되지 않나. ‘나’에게 그 목소리들은 어째서 노래가 되었을까. 현 사회를 해학적으로 말하기 위한 표현이었다는 해석이 정석이겠지만, 이렇게 볼 수도 있다. ‘나’는 하루짜리 일터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집회에서도 어쩐지 붕 떠 있다. 그건 ‘나’가 문자 그대로 퀴어한 존재여서, 라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든 외부는 ‘나’에게 어정쩡하기만 하다. 어디에도 마땅한 내 자리는 없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외부의 상황은 하나같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처럼. 나는 그저 여기에 붙박이고 싶을 뿐이다. 때문에 ‘나’는 일종의 퀴어함을 상정하는 인물이면서도, 지극히 공감할 만한, 평범한 인물이다. 자기 스스로와, 자기의 영역-녹두를 그저 말짱히 지키는 데에 신경이 곤두서는. 그래서, 그날의 일을 써서 남기지 않고 흥얼거리며 흘려보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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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도둑>의 경우 ?개를 훔쳐볼까. 개를 먹어볼까.?(<뼈 도둑>, 199p) 여기에서 하나의 안타까운 분발이 발견된다. 조는 결코 폭력적인 인간이 아니다. 담담하게 서술하는 어조와 모든 것을 선선히 체념하는 태도가 그렇다. 오히려 그는 폭력에 허물어진 인간이었다. ?장이 잔인한 말을 동원해 그걸 지적하자 그 노인은 허를 찔린 것처럼 웃다가 산 개구리를 씹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씨발 장처럼 말해보고 싶다고 그는 생각했다.?(<뼈 도둑>, 186p)

?조는 폭력을?감내하려 애썼고, 고통을 끌어안고 물러나려 했다. 그렇지만 방파제와도 같던 연인이 죽은 후로는 그마저도 설상가상일 따름이다. 이제 아픔은 모두 조의 몫이다. 그의 억압된 감정이 벌컥 솟아나오는 장면이 바로 위의 것이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감정들은 깊이 가라앉아 가장 열악한 고요로 고여든다. 그것은 작은 계기만으로도 순식간에 폭발해 버린다. 조에게 연인과 손을 잡고 걷던 날을 회상하는 행위는 일종의 기폭제인 셈이었다. 무력해진 스스로와 자신을 무력하게 몰아넣는 세계에 대한 증오를 더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는 개를 죽이지 못했다. 다행스럽지만 슬픈 결과다. ?저걸 먹는다고 생각하자 그는 토기를 느꼈다. 개를 먹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는데 막상 저걸 먹는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뼈 도둑>, 200p) 작가는 비극이 비극을 부르는 고리를 끊어냄으로써 비통을 부각시키면서도 그를 지켜낸다. 조는 마침 나타난 개의 주인과 몸싸움을 벌이는데, 개의 주인은 도망친 조를 더 해코지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다 사라져버린다. 그가 기어코 개를 죽였다면 또 어떤 참극으로 번져나갔을지 모른다.

?충동을 무너뜨림과 함께 조는 무언가 놓쳐버린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어떤 것도 되돌려줄 수 없고 해소할 수도 없다, 는 기분. 그런 ‘깜깜함’ 속에 그는 연인의 뼈를 찾으러 간다. ‘흰 눈’을 꾹꾹 밟으며. 홀로 남은 그에게 연인의 뼈 한 조각, 뼛가루 한 움큼은 그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결의의 표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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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닌

?어차피 모두 한낱 ‘풋내기’ 인간에 불과한데, 이토록 분발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하나하나의 삶,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삶인 것에 대해 건조하게, 묵묵히 말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저 각자마다 분발하는 인간일 따름인데?그들의 이야기는 왠지 비현실적이고 낯설다.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듣다 보니 아무래도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이 사람들도?이상한 것 같다. 그들은 ‘퀴어’일까? 독자는 혼란스러워진다. 바로 그 모순적인 느낌이 오히려 이야기의 ‘퀴어함’을 상쇄하며, 퀴어함을 잃은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익명성을 강화한다. 어느덧 인물과 사건은 마치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지척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파씨> 수록작들은 대부분 네 단계를 따른다. 첫 번째, 인간의 이야기. 두 번째, 이상하지 않은 인간의 이상한 이야기. 세 번째, 이상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상하다―‘이상한’ 인간은 아무리 이상한 것을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그러므로 어떤 이야기도?이상하지 않게 된다. 네 번째, 그 모든 것이 섞여 이제는 아무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만들어진다.

?즉, ‘퀴어하다’는 말이 더는 ‘기괴함’을 뜻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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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그것은 ‘아무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단지 그렇게 보이도록, 그렇게 느끼도록 서술되었을 뿐이다. 나는 황정은의 이런 점에 주목해 글을 썼다.

?사전적 의미로서의 퀴어, 나는 그 단어가 제법 위험한 구분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기묘한, 괴상한이라는 말로 과연 타인을 쉽게 수식해 버려도 괜찮은가 하는 것이었다.* 황정은은 그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한다. 그들을 ‘아무도’라고 표현하면서. 그러나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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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퀴어라는 단어의 본질에 대해 여러 방면에 있어 중요한 책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이다지도 돌이켜볼 틈을 남겨주고?황정은은 소설집을 끝맺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아무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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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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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월

시인

한 죽음의?끝에 다른 죽음

그들이?날?데려가지 못하게

그들, 내가 사랑한?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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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자가 자신을 지칭하는 데에 역설적으로?사용함을 이르지 않으며, 여기에서는 타인을 재단하고 처분하는?용례를?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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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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