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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쓰기, 나를 짓기 ㅡ 이진송 <승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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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르 댓글 0건 작성일 16-03-0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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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 <승강이>

글빛,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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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수업 시간을 떠올려 본다. 그때?나는 낯선 언어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다. 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습득하기도?전에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익숙했다. 그 전에도?내 존재를 묘사할?언어가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나를 떠올리거나 설명하려고 하면 뿌연 안개가 내린 것처럼?답답했다. 가깝다고 생각하는?이름을 붙여주자 그제야?안개가 조금?가셨다. <승강이>는 메타소설 형식을 취하며?이러한?막막함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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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정인은?스스로 불어불문과 공식 지진아라고 자조한다. 낯선 불어가 두려워지자 과연?자신을 표현할 언어란 것이 있을까 고민한다.?정인은?소설 창작 스터디 '승강이'를 지켜보며 소설 쓰기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소설의 제목이자 모임의 이름인?'승강이'는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을 뜻한다.?모임의 구성원은 고집이 세고 예민한 성정의 인욱과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지호뿐이다. 이 두 사람과 이후에 모임에 가입하는 '강'은 정작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몰라 헤매는 정인에게 다양한 삶의 내력과 글쓰기 방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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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는 '세 아버지', '화냥년', '바이섹슈얼'?같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인물이다. 누군가는 불편하다 말하지만, 정인에게 지호는 '성별과 나이에 따른 호칭을 완전히 제거하고, 오롯이 자기 이름만을 내민 사람(26p)'이 된다. 독특한 삶이 글쓰기 소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가족 트라우마는 쓰지 않는다. 대신?체중을 일부러 늘리거나 머리를 짧게 자르는 등 외형의 조건을 바꾸며 글을 쓴다.?이것이 지호만이 쓸 수 있는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강 역시 남다른 내력을 글로 풀어낸다. 한국에서 곧잘 선망의 대상이 되는?강은?한국 바깥에서 쉽게 그 사회적 위치가 전복된다. 강이 아시아 남성과 미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강은?어려운 한국어를 떠듬거리며 글을 쓴다. 모두가 무시한?부모님의 사랑 이야기를 누구보다 절실하게?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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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는 강처럼?이미 끝난 사유를 마무리하며 자신을 갈무리하는 작업이다.?어떤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인 혼란을?억지로 매듭지으며 마련되기도 한다.?정인은 인욱이 가장 가까운 인연이었던 연인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그리고 글 바깥에서, 여전히 사랑과 혼란의 언저리에 선?둘을 목격한다.?'어떻게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 세상에 붙들려는 노력(143p)'이 넘실거리는 소설, 그리고?조금 다른 현실의 두 사람은 정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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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욱은 오랫동안 쓰지 못하는 정인에게?"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지어보라 조언해준다.?하지만 그 어떤 조언도 정인에게 와?닿지 않는다. 마치 승강이와 다름없는 합평 시간에 인욱과 지호가 하듯 말이다. 이들은 "합평에서 들은 말들 중 채 절반도, 소설을 수정하는 데 반영하는 법이 없었고 어떤 말을 들어도 상처 받거나 휘둘리지 않(52p)"는다. 결국, 정인이 무언가를?쓰기 위해선?쓰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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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이야기'?쓰기란 존재와 직결되므로?다른 어떤 글쓰기보다 어렵다. 정인의 경우 가까운 이야기란 주변 사람들과의 소소한 일상인데, 그들에게 상처가 될까?쓰기도 전부터?겁을 먹는다. 하지만 사실 정인의 두려움은 '이야기 없음'이 드러날까?겁나는 것에 가깝다. 정인은 무탈한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이 원망이 무색하게도 정인은 '지하철 자뻑녀' 사건으로 단번에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언어가 진실에 닿기를, 내 존재를 설명해주기를 바라는 믿음이?거짓말과 진실의 뒤범벅인 마녀사냥으로 빠르게 바래버린다.?다행히 정인의 주변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찍겠다고 자유롭게 나라?밖을 걷는 고모가 있었고, 유쾌하게 위로할 줄 아는 승강이 구성원이 있었다. 정인은 그제야 자신에게 효용이 있는 언어를 발견한다. 물론 정인의 발견은 언어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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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부모님의 사랑 이야기만 쓰려고 하는 강의 글을 첨삭하다 문득 인욱은 "외부의 모든 요인을 제거했을 때, 과연 그 사랑이 얼마나 오롯한 형태로 남을 수 있을까?(144p)" 하고 묻는다.?사랑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아닌 것을 묘사해야 하며?나를 서술하기 위해선 내가 아닌 것과 나의 관계를 써야 한다. 누군가에겐?가장 가까운 이야기가 없을 수도 있다.?나와 부딪히며 '이야기'를 만들어낼 사람이, 사건이 없다면 그럴 만하다.?혹은 정인처럼?써야 할 이야기 자체가?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인욱은 오랫동안 쓰지?못한 정인에게 "소설을 쓰려면, 하다못해 자기와 가까운 이야기를 쓰려면 지금까지 있던 자리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탈주가 필요(200p)"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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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에겐?물리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이상의 정신적 탈주가?필요했다.?정인은 결코 자신이 이야기가 없다는 것에 상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미 정인은 긴 시간?멤버들의 글쓰기를 보아왔다.?제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나마?경험한?셈이다. 지호는 정인에게 너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다독여준다.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자신만의 이야기가 없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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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욱은?같이 쓰는 것이야말로 거대한 판타지라고 말한다. 여럿이 벌써 그 '판타지'가 쉽지 않음을 증명하며 승강이를 거쳐?갔다. 그런데도 인욱이 '함께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계속' 나를 짓기' 위해서일 것이다.?공들여 타인의 글을 읽고 말을 보태며 함께 쓰다?보면 어느새?자신의 문장에 가까워진다. 인욱과 지호와 강이 그랬고, 마침내 정인까지 첫 소설을 완성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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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는 새벽녘, 정인은 지호에게 전화를 걸어?소설을 완성했다고 말한다.?흐릿한 새벽에도 오히려 머리는 상쾌하고 몸은 열에 들뜬다.?그 열에 들뜨는 시간이 모여 거대한 판타지를 현실로 견인한다. '승강이'는?함께 쓰다 나를 지을 수 있게 돕는다. 비록 애매하게 갈무리해 혼란스럽기만 한 글을 내놓아도 '승강이'에선?너의 글쓰기라며 격려받는다. 이렇게?홀로 서고?나면?함께 내는 빛에 힘이 실리고, 이를 갈망하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초대하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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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미간에 주름이 잡힌 인욱과, 오늘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애매모호한 모습의 지호가 더럭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둘은 그 단어가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뜻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한 그 말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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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

제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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