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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력 마주하기 ― 한강 <여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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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악어새 댓글 0건 작성일 16-01-1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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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여수의 사랑』, 문학과 지성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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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여수

 

 한참 여수밤바다라는 노래가 소위 흥했던 시절이 있었다. 봄철이었던가, 바람이 좀 꿉꿉해지는 여름이었던것 같기도하다. 캠퍼스를 걸으면 여기저기서 기타소리와 함께 좀 우울하기도하고 또 다정하기도 한것 같은 노래 소리가 들렸고 편의점이나 카페에가면 그 노래만 주구장창 나오곤했다. 그 노래가 유행했던 이유는 그 노래가 왠지모를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들했다. 무슨 향수? 그리워할 고향이 우리에게 있던가? 동아리방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친구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곧, 그것이 이를테면 관용적인 표현 같은 것이라며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즈음 동아리 방에 모인 얼굴들은 모두 쓸쓸하고 버거워 보였다. 다들 과제며 취업준비에 바빠 얼굴에 옅은 피곤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우리는 인사치레로 항상 말했다. "과로하시는군요(24p)" 우리는 향수를 느낄만큼 오래 고여있는 기억을 가지지 못했지만 모두 향수를 느꼈다. 괜스레 쓸쓸해지고 외로워지고, 몸 부대낄 곳이 필요해지는 기분이 들면 이유없이 핸드폰 연락처를 주루룩 훑었다. 그러다가 괜찮은 이름을 하나 발견하면 잠시 고민하다가 연락을 보내곤 했다. [뭐해. 같이 저녁 먹을래?] 그렇게 성사된 모임은 잠시 피곤을 뒤집어쓴 얼굴을 가리고 히히덕 대다가 헤어졌고, 그러면 우리는 곧 또하나의 우울을 뒤집어 쓰곤했다. 우리는 모두 외롭다고 말했다.

 

 만성적인 우울함과 객지에 있는 것만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현대인이라는 증거와 같은 일이라고들 말한다. 한강의 소설은 우리의 외로움을 더더욱 자극한다. 여기에는 멋드러진 파트너를 만나 외로움이 극복되는 것같은 디즈니적 해피엔딩은 없고 주인공들은 잠깐 만나서 서로 볶닥대다가 서로 헤어져버리고 만다. 나는 이 소설이 영 뒷맛이 깔끔하지 않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 소설을 읽는가?    

 

 

 

 

 1. 결벽증과 수조 속 물고기


여기에는 두 여자가 있다. 여수에 대한 두 가지 내력을 간직한 여자이다. 하나는 정선. 그녀는 강박증을 앓고 있으며 주기적인 위경련에 시달린다. 결벽증은 그녀로 하여금 모든일을 참기 힘든 일로 만든다. 그녀는 어린 시절은 여수에서 살았고 7살쯤에 여수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여수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또 한 여자, 자흔은 태평하고 무심한 성격으로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가 서울까지 올라왔고, 타이밍 좋게 정선의 룸메이트가 되어, 정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여자이다. 그녀는 오랜 떠돌이의 내력이 있지만 여수가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그 곳으로 언젠간 돌아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녀의 무심한 성격 탓에 그녀는 온 몸에 상처가 많고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당하는 등의 우여 곡절을 겪는다.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내력 때문에 그녀들은 어떤 증상들을 안고 지낸다. 그 증상들은 그들 스스로를 힘들게 하기도하고 또 서로에게 불편함과 짜증을 유발한다. 자흔은 서울은 삭막하다며 어느날 갑자기 물고기가 든 수조를 들고 들어오고, 결벽증이 있는 정선은 그것이 불편하다. 또 위경련과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정선은 자흔에게 더러우니 자신을 보며 이야기하지 말라고 말하며 자흔을 밀어내고 자흔은 그것에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꾸역꾸역 그 둘은 여름을 넘긴다. 그동안 관계는 더욱 악화되어 결국 자흔은 정선을 떠나고, 정선은 자흔의 뜻을 대신 이루기라도 할 듯, 여수로 향한다.

 

 

 

 

 2. 사랑은 누군가를 어디론가 보내고

 

 우리도 나름대로의 내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내력으로 인해 어떤 삶의 방식들을 선택하게 되고, 또 그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주고 서로를 불편해 하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와의 관계는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디즈니적인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그렇다. 자흔이 한 도시의 서점에서 일하면서 서점에 드나드는 대학생을 사랑하게 되고, 그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처럼, 자흔은 정선을 움직였다. 정선에게 자흔은 특별했다. 자흔의 독특한 생활방식은 정선의 삶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자극했다.


"그 때, 어째서 나는 못볼것을 본 사람처럼 자흔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던가. 무엇이 내 몸속에서 잠들어있던 혈관 하나하나를 끄집어내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던가." ( 42p)

 

 자흔은 헛구역질을 하는 정선을 말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는 결국 정선이 자신의 머리속 한 구석으로 몰아넣어둔 '여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뿐만아니라 자흔이 정선을 떠나고자했을 때, 정선은 자기를 떠났던 수많은 룸메이트들에게 하지 않았던 말을 처음으로 꺼낸다. "가지 말아요(56p)" 정선은 처음으로 함께 살 붙이고 지내는 룸메이트로서 자흔을 인정했고, 자신이 그토록 외로워왔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한쪽만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듯이, 다음 날 새벽 자흔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정선의 집을 떠난다. 정선은 자흔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자신이 자흔과 함께 있는 동안 강박에 가까운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여수로 갈 다짐을 한다.

 

 

 

 

  3. 매듭을 지어야 할 것

 

 여수에 가기위한 기차를 타고서도 정선은 여전히 토악질을 멈추지 못한다. 하지만 여수로가는 기차 안에서 정선은 책 전반에서 이야기하지 않았던 자신의 내력을 되짚으며 그 고통스런 기억안으로 기꺼이 걸어들어간다. 정선이 여수에 발을 들였다고해서, 그것이 온전한 치료이거나 회복은 아닐 수 밖에 없다. 사랑이 마지막 해결책이 되어 해피 엔딩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주 폭력적이다. 외로움이 완전히 극복되어 왕자님을 만나는 디즈니적 해피엔딩은 사실은 그 이후의 삶을 숨기는 하나의 폭력이다. 우리는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점이 되어 세상을 헤메는 지극히 개인적인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느 지점에서 서로 맞 부딪쳤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 놓는다.

 

 퀴어에 대해 생각해보자. 개인의 내력속에 퀴어를 품고 있는 사람들은 그 내력으로 인해 어떤 증상들을 가지게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투쟁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숨기기 위해 분전할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고통받을 수도 있고, 커밍아웃을 통해 주위사람들이 불편해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하는가. 외로움 속에 오래 오래 홀로 머물러야 하는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그 본질적인 내력 속을 마주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사랑은 존재의 내력을 바꾸는 아주 큰 사건이기 때문에.   

  

 끝맛이 깔끔한 소설이 아닌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모두 어떤 향수를 가지고 있다. 외로움과 객지에서 떠도는 것 같은 부유감. 그러나 우리가 누구와 관계를 맺더라도 그것은 평생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 만나는 이유는 뭘까를 생각해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그들에게 내 내력을 외치거나 혹은 숨기는 이유 말이다. 그건 아마 돌아가기 위해서. 정선이 결국 여수를 찾는 것처럼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각자의 아주 불편하고 색다른 내력을 가진채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내력을 온전히 '이해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내력을 들여다보고 헤집고 그래서 또 다시 그렇게도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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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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