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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게보르크 바흐만, '고모라를 향한 한 걸음' - 퀴어니스와 자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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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긱또 댓글 2건 작성일 16-07-2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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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에 수록된 단편 '고모라를 향한 한 걸음'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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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게보르크 보흐만의 단편소설 ‘고모라를 향한 한 걸음’은 서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문제를 지적하며 처음으로 작가가 여성 서술 시각을 취한 작품이다. 이 작품 전까지 그녀는 남성 서술 시각만을 취한 작품만을 썼으며 이에 대해 자신이 대개 ‘남성적’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러한 작가의 고백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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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주인공 샤를로테는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변화를 마주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제한적 시각과 생각은 문장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샤를로테가 생각하기에 흔히 여성들의 입맞춤은 무저항이고 ‘가느다랗고’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는’것들로 표현된다. 또한 그녀에게 구애하는 여성인 마라의 언어는 샤를로테로 하여금 사내들의 그것과 달리 ‘근육이 없는 언어’, ‘보잘 것 없는 언어’로 읽혀지고 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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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테가 사는 사회는 그녀 스스로의 의지에 상관없이 그녀의 남성 연인인 프란츠에게 노래하듯 말을 건네야만 하는 사회다. 어리광을 부리듯 스스로를 축소시키고 나약한 존재로 만들고서 모종의 목적을 위해 현 사회의 기득권이자 분별 있는 강자로 묘사되는 ‘남성’을 확대시키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그런 세상. 여기서 모종의 목적이란 크게 뭉뚱그려 얘기하자면 아마 그녀 존재의 사회적 생존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을 것이다. 가부장주의와 헤테로 규범이 지배하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인형처럼 살아온 여성 샤를로테에게 있어 각성의 순간은 그녀가 생각지도 못했던 형태의 애정, 또 다른 여성인 마라의 구애와 함께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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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을 당연한 듯 배제하고 살아왔던 그녀에게 있어 마라의 사랑은 일종의 중대한 차원의 메시지 역할을 한다. 처음 샤를로테가 생각하기에 마라의 사랑은 광기 그 이상도 이하의 것도 아니었으나 마라에게서 자신을 보고 자신에게서 정해진 여성성의 한계 너머를 보며 그녀의 생각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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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71 그녀의 감정과 생각은 일상적인 궤도에서 뛰쳐나와 갈길을 잃고 허공으로 질주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자유롭게 달리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자유로웠다. 무엇이든 불가능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똑같은 실체로 구성된 존재와 함께 살아가서는 안 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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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을 발견함과 동시에 여성이 여성으로 온전히 살고자 하는 욕망을 발견하게 되는 지점은 꽤나 흥미로운데, 그녀는 자신과 똑같은 실체로 구성되어 있는 마라를 결코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마라와의 관계의 가능성을 통해 스스로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사회와 자신이 한정지었던, 그야말로 정상적이고 일상적이라고 단정 지었던 섹슈얼리티 규범의 궤도를 이탈하는 순간 퀴어니스는 솟아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깨달음의 순간은 성공적으로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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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76 남자와 여자라는 것이 효력을 잃을 때에, 이런 관계가 종말을 맞을 때에! 라고 외치며 샤를로테는 마치 ‘죽은 자를 애도하듯’ 프란츠를 생각하고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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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녀는 전혀 학습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 두려워하기도 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이제는 ‘죽어버린’ 사내들의 유령과도 같은 형상 주변을 배회하기도 한다. 이성애와 이성애 결혼생활(당시 순응과 습성으로 얼룩진)을 제외한 또 하나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정도로 깨어나기야 하지만 지금껏 선행된 사례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 마라와의 낡은 ‘동맹’이 와해될까 불안해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샤를로테는 어느 누구의 여자도 아닌 그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스스로의 욕망을 일깨우는데 성공했고 그녀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재정의하고 정체화하기 시작한다. 과거의 샤를로테는 정해진 계율을 뒤흔들고 싶은 욕망에 가끔씩 시달리곤 했으나 그 통상적인 계율을 대처할 다른 묘수를 전혀 떠올리지 못했고 그저 흡수되었던 여성이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마라가 자신에게 사랑을 이야기할 때 그를 통해 또 다른 묘안을 깨닫게 된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것은 호모 섹슈얼리티, 레즈비언 관계를 통한 주체적 여성정체성의 확립이며 동시에 다른 여성과의 친밀한 유대 관계를 통한 굳건한 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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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0 그녀가 마라를 사랑한다면 모든 것은 달라질 것이다. 샤를로테는 소녀 시절을 상기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숙한 성인 여성, 어느 누군가의 부인이자 그림자가 아니었던 그 시절. 마라와의 관계를 선택함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왕국에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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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설 말미에 이르러 샤를로테는 또 한 가지의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과거의 그 자신과도 같았던 존재를 ‘소유’하기를 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처음 1차적 각성의 순간을 겪은 후 그녀는 마라와 같은 여성, 즉 사회의 많은 여성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남성을 보필하듯이 자신을 열렬히 사랑해줄 존재를 원한다. 자신에게 소리를 질러도 화를 내지 못하고, 한 번도 결정이라는 것을 내려본 적 없는, 기다란 머리칼을 가진 연약한 생명체를 말이다. 마치 자신이 프란츠에게 했던 것처럼 그와 같은 여성상을 마라에게 구하고 있는 것을 깨달은 샤를로테는 종국에는 마라와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죽어 있다고 느낀다. 샤를로테 자신의 과거를 천천히 살해함과 동시에 그녀의 사랑만을 원하며 무너지는 마라의 수동성을 살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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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 여인이 어떤 합일도 이루지 못한 채 잠드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의 결말이 샤를로테의 무력함을 묘사하는지, 혹은 어떤 일말의 희망을 암시하는지는 오롯이 독자의 판단일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샤를로테가 흘리는 눈물을 두고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기존 사회질서로 환원될 수밖에 없는 소수자 관계의 공허함을 표현한 것이라 이야기할 가능성은 충분하고 이미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이야기해왔다. 허나 사실 이 이야기의 결말에서는 그러한 비극을 뛰어넘은 훨씬 커다란, 만족스러운 희망이 가득 차 있다. 분명한 것은, 샤를로테는 어쨌거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란 사실이다. 그녀는 더 이상 ‘위대한 어머니, 위대한 창녀, 사마리아의 여인’등의 형상으로 살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하였으며 이미 이성애 중심 사고를 벗어나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도한 바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결국 그녀의 삶에 있어서 여러 가지 긍정적인 가능성을 만들었고 보다 넓은 세계를 보여주었다. 마라와의 새로운 연애 관계이든, 혹은 사회의 속박을 벗어나 진행되는 다른 남성 존재, 퀴어 존재와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관계이든, 주도적으로 임할 수 있는 자신의 일을 찾는 것이든 온전히 그 자신으로써 살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목도하고 그 가능성의 문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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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간에 ‘퀴어함’은 소설 속 시대에서도, 현대에 이르러서도 한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가장 자기답게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퀴어 존재가 지향하는 것은 결국 그런 세상이며 그것은 최종의 목표이자 우리가 도달해야 할 종착점이다. 더 주체적이고 더 능동적이고 더 대안적인 관계, 그러한 관계의 모색은 필연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맞닿게 된다. 샤를로테는 바로 그 과정을 겪었다. 그녀는 호모 로맨틱, 섹슈얼리티의 여로를 통해 자아 탐색의 과정을 거쳤으며 그것으로 더 이상 남성으로 대표되는 사회에 굴복하지 않는 자신의 여성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지점에 이른다. 앞으로 견뎌내야 하고 타개해야 할 수많은 억압의 가시덤불이 있을지라도 아마 샤를로테는 그 유해한 ‘가시’들을 정원 가위로 잘라내려는 시도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 아마 마라가 그런 샤를로테의 곁에서 정원 가위를 함께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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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또(geekster)

세상의 모든 색깔과 색깔 없음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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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보배님의 댓글

보배 작성일

잘 읽고 갑니다. 이런 양질의 리뷰라니, 바쁘신 와중에 책 읽고 꼼꼼히 써주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어요. 이번에도 긱또님 글 덕분에 많이 배우네요 :)

긱또님의 댓글

긱또 작성일

으엇 감사합니다 보배님ㅠㅠㅠㅠㅠㅠ(하트) 뭔가 댓글 읽고 굉장히 기운받아버린...! 다음주에는 제때 업로드할게요 좋은 하루 되세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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