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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열차 안의 낯선 자들> 퀴어하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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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긱또 댓글 0건 작성일 16-04-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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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열차 안의 낯선 자들>, VERTIGO,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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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내게 특별해지는 순간, 인생의 많은 것은 바뀌게 된다."

?- 전지적 긱또 시점의 스포일러 가득한 <열차 안의 낯선 자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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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두 사람이 열차 안에서 만난다. 외양으로 풍기는 분위기부터 확연히 다른 이 두 사람의 기묘한 만남이 시작되고부터 그들이 딛고 있던 인생이라는 정돈된, 혹은 정돈된 것처럼 보이던 소박한 옷장은 마구잡이로 뒤섞이기 시작한다.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속 두 주인공, 브루노와 가이는 열차 안에서의 그 기구한 만남에서 비롯된 인연을 통해 스스로의 심연에 숨어 있던 진실과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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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질적이고 과민한 금발 청년 브루노는 과묵하고 진지한 건축가 가이와의 첫 대면에서부터 그에게 강하게 끌리고 있음을 인지한다. 그는 기차 안의 많은 승객들 중 오직 가이에게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다가간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쉬이 듣기 힘들법한 무시무시한 제안을 해 오는데, 그것은 바로 교환살인에 관한 것이었다. 가이에게 있어 현재 골칫거리인 듯 보이는 아내 미리엄을 본인이 살해해줄테니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해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어느 연결고리도 없을 두 사람이기에 그 누구도 범인을 알아내지 못할 거라며 자신에게 제안을 해오는 브루노를 보며 가이는 그에게 견딜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혐오감을 느낀다. (브루노의 이 메스껍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제안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속 라스콜리니코프가 행했던 도끼 살인, 즉 초인에 대한 도전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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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브루노는 가이를 본 처음 그 순간부터 열렬히 그를 갈망해버린 자신의 마음을 묶어놓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에 대한 하나의 수단으로, 그는 소설 내내 그가 되고자 했던 가이의 ‘형제’가 되기 위해 오로지 공범이 될 그 두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을 범죄의 영역을 통해 함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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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는 마치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것처럼 위험한 냄새를 풍겨오는 브루노에게서 멀리 달아나기를 원했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브루노는 열차에서 이야기한 계획을 실행하려 제멋대로 살해대상자인 가이의 아내 미리엄이 사는 곳에 찾아가고 그녀의 현관문을 바라보면서도 가이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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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을 바라보자 기분 좋은 전율이 온몸에 서서히 퍼졌다. 가이가 저 계단을 꽤 자주 오르내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만으로도 다른 집과는 달라 보였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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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해버린 미리엄의 피살에 대해 무척이나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며 브루노를 경멸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절대 그를 고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동안 그것은 브루노의 끈질긴 협박에서 비롯되는 두려움과 불안 탓인 것처럼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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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브루노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소설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가 사랑하는 여성은 그의 눈에만큼은 한없이 아름다운 여자로 비춰지는 어머니가 유일하다. 그는 미리엄을 죽이고 나서 그가 만들어낸 상상 속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을 죽였다는 게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아래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작가의 입을 빌려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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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성적인 쾌락을 느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가 여자를 미워한 건 전혀 아니었다. 미움은 사랑과 유사한 감정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는 그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그는 남자를 죽였다면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할 것이다. (p.133)’ 브루노가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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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에 대한 유별난 집착과 감정 또한 브루노가 가이를 사랑했음을 의심케 한다. 브루노는 어쩌면 가이의 영혼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지 않고서 못 배기겠는 자신을 어쩌지 못하고 결국 자기 파괴의 영역에 들어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국 그들의 만남이 서로의 영혼의 밑바닥까지 들춰보도록 하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그들을 새로이 태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지 않아도 늘 함께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그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사랑하면서 그들 자아의 새로운 탄생과 죽음을 경험한다. 소설 속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거짓과 진실, 욕망으로 얼룩진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두 사람의 경험적 탐구에 다름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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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는 끊임없이 가이에게 닿기를 원한다. 연락을 하지 말아줬으면 하고 단호히 이야기하는 가이의 편지를 읽고 그는 ‘무언가에 베인 듯한 느낌이었다. 깊은 슬픔 혹은 죽음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라고 술회한다. 그리고 그는 가이의 거절에 대한 상처로 소리 내어 엉엉 울거나 술을 마시고 그에게 편지를 쓰고 그의 이름을 취한 목소리로 내뱉는다. 이와 같은 브루노의 행동은 '브로맨스'라고 불리며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차용되곤 하는 단순히 남자들끼리의 애틋한 우정 비슷한 것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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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된 미리엄에 대한 무거워지는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심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받기 시작한 가이는 결국 원한 것이었든 원하지 않는 것이었든 간에 브루노의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데, 그는 그 일을 하기 전 자신의 집에 와 있는 브루노를 보며 익숙함뿐만 아니라 마치 형제와 같다고 느낀다. 브루노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는 가이에게 있어 끊임없이 애증의 감정으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는 브루노가 자신에게 있어 이미 중요한 애정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면서도 살인이라는 행위로 묶여버린 브루노를 자신의 반쪽 자아와 같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계속해서 부정하려 들지만 자신 안에 숨어 있던 욕망과 인간에의 진실을 끌어내어 보여준 브루노를 사건에 대한 수사가 끝날 때까지도 보호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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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을 짓눌러오는 불안감, 그리고 브루노에 대한 애증의 감정으로 뒤범벅되어 혼란스러워하던 가이는 맹목적인 모습으로밖에 다가오지 못하는 브루노에게 쏟아질듯 밀려오는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그가 브루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고,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두 가지 금기의 영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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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소설의 말미부분에 이르러 브루노는 스스로 목숨을 내던진다. 가이와 그의 연인 앤, 그리고 가이의 친구들과 함께 탄 인디아호에서 브루노는 가이를 위해 건배를 하고 가이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선물하려 하고 가이의 오랜 친구에게 자신이 ‘거의 평생 동안 가이와 아는 사이’임을 도전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가이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곧 깨닫고 나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 몸을 내던져 자살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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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가이의 이름을 목 놓아 외친다.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바다 안에서도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그의 사랑, 그의 형제, 그의 욕망이었고, 그는 그렇게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속에 잠긴다. 그가 그토록 온전히 가라앉길 원했던 심연 속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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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는 그동안 자신의 범행을 주변 사람들과 앤에게 숨기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런 그를 비난하는 양 자신과 앤의 주변을 맴도는 브루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곧 브루노가 배에서 뛰어내렸음을 알아차리고서는 자신을 말리는 친구에게 주먹을 먹이고 그를 구하기 위해 어떤 망설임도 없이 갑판에서 뛰어내린다. 브루노는 마지막까지 ‘가이!’를 울부짖었고, 가이는 브루노를 만난 이래로 그에게 가까이 닿기를 처음으로 간절히 원하지만 브루노는 결국 바다 속에 영영 잠기고 만다. ‘그의 친구, 그의 형제는 어디 있을까?(p.339)’ 가이는 그가 자신의 앞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음을, 자신의 다른 자아와 같은 존재가 죽어버렸음을 알고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모두들 그를 두고 한 사람씩 선실을 빠져나가다 그의 연인인 앤마저 뒤돌아서는 해당 장의 마지막 장면은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가이 또한 그를 사랑했음을, 그와 브루노 사이에 어느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둘만의 강렬하고 정서적인 영역이 존재했음을 명확히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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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가이는 그의 존재가 자신에게 의미하던 바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곧 자신의 범행 사실, 그리고 브루노와의 이야기를 죽은 아내 미리엄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던 남자 오언에게로 가 고백하기로 결심하고 그를 찾아간다. 그의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던 오언의 반응에 거의 분노하다시피 하며 자신과 브루노의 범행을 모두 털어놓았지만 그는 사립탐정 제러드의 함정에 꼼짝없이 걸려들게 된다. 진실을 이미 털어놓은 상황에서 제러드를 상대해야만 하는 사태에 처한 가이는 그의 앞에서 원래 그가 말하려 했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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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잡아 가요.(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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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마 자신과 자아를 나눈 그, 형제, 자신의 존재를 새로 탄생시키고 죽게도 한 유일한 사람인 바로 그 브루노에게 건네는 마지막 회한어린 애상에서 비롯된 고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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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또

못 말리는 이상주의자. 퀴어. 제멋대로 읽고 제멋대로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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