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보면 알 수 있는 것 ― 앤드루 포터 <코네티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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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림 댓글 0건 작성일 16-08-25 16:38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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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포터, 김이선 옮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코네티컷」 (21세기 북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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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오랜 시간 애써 모른 척해왔던 것을 인정하게 되는, 인정해야만 하는 그런 순간. 보지 않으려 할수록, 이해의 기회를 놓쳐버릴수록, 기억은 짙어지고 잃어버린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삶의 시야를 확보할 수 없으니까.
? 앤드루 포터 단편 <코네티컷>은 그 갑작스러운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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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세 살 소년 ‘스티븐’은 코네티컷 동부 외곽에서 그의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코네티컷 연안의 한 섬에서 홀로 요양 중이며, 세 가족은 가끔 그를 만나기 위해 페리를 타고 섬으로 향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스티븐은 자신의 삶에 아버지가 부재하는 것에 익숙해가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에 생겨난 병은 왠지 계속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어쩌면 아버지에게 헌신적인 어머니가 가장 먼저 그에 대한 희망을 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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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틀리 씨 부부는 아버지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막역한 사이였는데, 그 후 이웃에 사는 다른 가족들처럼 우리를 모른 체하지는 않았어도, 지난해에는 우리 집에 발길을 뚝 끊다시피 했다. 특히 벤틀리 부인은 서서히 어머니의 삶에서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부인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부인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태도에서 우정 이상의 내밀한 친밀감이 느껴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 둘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다년 생 식물들이 자라는 정원을 행복하게 거닐었고, (...) ―두 명의 젊은 연인처럼― 우리 집 뒤쪽 테라스 언저리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_ p.25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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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삶의 구멍을 제 나름대로 메워가던 스티븐은 어느 날 자신이 모르던 엄마를 훔쳐보게 된다. 소년이었던 아버지가 소녀였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어느 무도회에서 커플들이 서로를 안고 있던 것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어깨와 허리에 서슴없이 손을 올리는 자신의 엄마와 이웃 벤틀리 부인. 스티븐은 ‘소름끼치고 타락한’, ‘눈살이 찌푸려지는’ 두 사람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동안 자신이 보았던 벤틀리 부인이,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계속 생각해본다. 스티븐의 머릿속은 많은 추측과 억측으로 뒤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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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 뒤쪽 테라스에서 어머니와 벤틀리 부인이 나눈 포옹―여러 차례에 걸친 열정적인 포옹―이 위로의 마음에서 비롯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상실을 경함한 사람을 위로하는 따뜻한 포옹이 아니었다. (...) 그것은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포옹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포옹이었다. _ p.26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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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스티븐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로 압축된다.
? 어머니와 벤틀리 부인은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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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은 자신이 목격한 장면의 의미를 오해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누구에게나 약해지는 때가 있’다고. ‘어쩌면 어머니를 유혹한 것은 벤틀리 부인이었을 수도 있’다고. ‘어쩌면 둘은 레드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던 것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은 어머니의 일거수일수족을 좇으며 그녀가 벤틀리 부인과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의 증거를 수집해 나간다.
? 스티븐은 누나인 켈리에게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털어놓으려고도 해보지만, 그녀는 이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음을 그는 알고 있다. 이야기 안에서 누나 켈리는 대외적으로 성적도 좋고 동네 신문에 매번 이름이 오를 만큼 운동도 잘하는 우등생이지만, 스티븐은 정제되지 않은 행동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언제나 지적을 받는 괴짜로 그려진다.
? 어떤 주류에서 ‘비정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아들이 자신의 엄마와 벤틀리 부인의 ‘비정상적 행위’가 결국엔 ‘사랑’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나는 이 이야기의 화자가 스티븐으로 설정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 알아볼 수 있는 이만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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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분 뒤 나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고, 그리고 잠시 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부엌에서 나갔다. 어머니는 벽에 기대어?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 어머니는 울고 있었고, 내 앞에서도 자신을 추스르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 “올라가렴, 스티븐.” 어머니는 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 (...) “괜찮아요.”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 이해는 못하겠지만 어머니가 그 부인을 사랑하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저 내가 자리를 피해주기만을 바랐다.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가, 스티븐.” _ p.28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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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벤틀리 부인이 남편과의 이혼으로 인해 (그녀가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는 ‘추문’으로 휩싸인) 코네티컷을 떠나기 직전, 스티븐은 자신의 어머니와 벤틀리 부인의 이별을 목격한다. 어머니의 회유에도, 벤틀리 부인은 끝내 떠난다. 자신 앞에서도 슬픔을 제어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스티븐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놓으려고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 스티븐” 한 마디 뿐이다. 그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스티븐이 자신과, 자신의 사랑과, 지금 당장 자신이 느끼고 있는 거대한 슬픔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앞으로 살아갈 삶에서 지금 이 순간이 자신과 저 작은 소년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거대한 영향으로 작용하리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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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로 말하자면, 늦은 저녁 시간에는 스크래블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아침마다 산책을 나가고 아버지의 건강상태를 살피면서 아버지와의 새로운 삶에 순조롭게 적응해갔다. (...) 그렇지만 나는 그 저녁,?벤틀리 부인이 떠난 그 저녁이 자꾸만 떠오른다. 나는 어머니가 이윽고 자신을 추스르던 모습,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던 모습, 방에서 내려온 누나에게 미소를 짓던 모습, 그리고 그 후 개수대 앞에 서서 마치 누군가가 자기에게 와주리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마치 저 멀리 있는 그림자가 뜰 가장자리에서 걸어 나와 자기를 되찾아갈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_ p.28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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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스티븐은 더 이상 어머니가 벤틀리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믿게 된다.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았기 때문이다.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뒷모습과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그리고 그는 열세 살 어느 날의 저녁에 배웠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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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했지만, 자신의 어머니와 벤틀리 부인이 함께할 수 없었던 것처럼.
? 이제 사랑하지 않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병든 아버지의 곁에서 조금은 외롭게 늙어가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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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보면서 깨닫고 배웠을 것이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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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 (o00itismine@gmail.com)
시스젠더 팬섹슈얼.
어찌할 수 없는데도 슬픈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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