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과 ‘그리고’가 공존하는 세계 ―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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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혜 댓글 0건 작성일 16-08-15 20:13본문
‘또는’과 ‘그리고’가 공존하는 세계 ―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Orlando』
*페이지 표기는 『올랜도』(솔출판사, 2010)에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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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로 시작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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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신은 최초의 인간으로 남성 아담을 창조하고 그의 갈비뼈를 가지고 여성 이브를 창조했다고 한다. 아담과 이브는 남성과 여성이었는데,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신뿐이었다고 한다. 사악한 뱀의 유혹으로 먼저 선악과를 먹은 이브는 연인인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권했고, 선악과를 먹고 아담과 이브가 눈이 밝아져 그들이 벗고 있는 것을 알고 나뭇잎에 몸을 숨기자, 신은 그들이 약속을 어겼다며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고 노동하여 살도록, 출산의 고통을 갖도록 에덴 동산에서 추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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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야기가 있지만, 성별은 신이 창조해서 정해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섹스는 젠더만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올랜도의 이야기만큼이나 픽션이다. 즉 사람의 아이는 남성과 여성 중 하나로 태어나, 태어났을 때 그대로의 성별로 평생을 살아간다거나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사실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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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의 일생, 왜 혹은 어떻게는 존재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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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사촌동생이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한 아이는 남성임을 확인받고 올랜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이야기는 올랜도라는 인물의 전기로서, 올랜도의 서술자는 스스로 '우리' '전기작가'라고 말한다. 복수의 서술자가 대화함으로써 중심을 벗어나는 듯한 서술, 버지니아 울프 특유의 단정적이지 않고 불분명한 진술[1]은 일반적인 전기작가에게서 발견된다면 결함에 가까울 특징이겠지만, 우리의 주인공 올랜도의 전기를 쓰는 작가에게는 필연적이어야 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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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변하는 세태, 그에 따른 몇몇 가치의 변화를 이 서술자는 인지하고 있고, 또한 올랜도와 그가 사랑하게 된 여인 사샤에 대해서도 아직은 성별이 분명한 남성과 여성의 성별이 겉으로 모호해 보임을 가장 진실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다. 왜, 혹은 어떻게 올랜도의 일생이 앞으로와 같이 진행되었는지는 말하지 않는 이 전기작가들은 단지 어느 순간에 튀어나와 독자를 대신해 놀라움을 표하거나 올랜도가 맞이한 사회의 단면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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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는 매력적인 남성으로,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의 결혼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러시아 대사의 가족으로 왕궁을 방문한 여인 사샤를 만난 때이다. 올랜도는 사샤와 함께 야반도주할 계획을 세우지만 약속한 시각에 사샤는 나타나지 않고 그녀는 러시아 대공의 애인이었다고 암시된다. 자괴감에 빠진 올랜도는 때마침 발생한 물난리에 휩쓸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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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한 이후 홍수에 휩쓸리고 7일만에 깨어난 올랜도는 이전과 같지 않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빠져, 닉 그린이라는 시인을 초대하여 여러 문인의 이야기를 듣는 데까지 이른다. 그러나 닉은 올랜도의 시를 폄하하는가 하면, 그의 호의를 풍자하는 시를 쓰고, 이 출판물이 성공하여 올랜도의 귀에까지 들어가 올랜도는 이제 문학에 대한 열정도 접는다. 그리고 조상들이 집을 돌보았듯 그 자신은 가구를 들여 집을 꾸미고 주위 귀족들을 초대하여 연일 파티를 연다. 이렇게 가세가 기울고 주위의 평판은 좋아졌을 무렵, 올랜도 앞에 한 대공부인이 나타난다. 올랜도는 그녀를 통해 잊고 있던 사랑, 아니 사실은 탐욕에 가까운 것에 붙들리지만 스스로 이를 벗어나기 위해 왕에게 콘스탄티노플 특사를 자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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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로서 공을 인정받아 공작 작위를 수여받은 날 밤 이후로 올랜도는 오래도록 깨어나지 못한다. 그가 잠든 동안 터키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올랜도가 죽은 듯이 누운 것을 보고 반란군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7일째에 깨어난 올랜도는 여자였다고 밝혀지지만(164) 이 사실과 무관하게, 그는 자신에게 집시의 피가 섞였다는 생각에 집시들이 사는 구역으로 가서 함께 살고자 시도한다. 그러나?자신에게 중요한 가치인 자연숭배나 가문의 사유재산 같은 것이 집시들에게는 이질적이고 한편으로는 경멸스러우며 두렵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들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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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 돌아온 올랜도는 이전에 대공부인으로 만났던 사람에게 실제로는 여장한 대공이었으며 올랜도를 사랑한다고 고백받지만 구혼에 답하지 않고 여성으로서 사교계에 적응하는 길을 택한다. 이후 그녀는 시인 알렉산더 포프를 비롯한 지성들과의 만남에서 그들에게 감탄하면서도 지성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경멸한다. 이를 눈치채서 모욕을 느낀 포프에게 "대부분의 여자는 성격이 없다"는 글을 받은(256) 올랜도는 그녀가 아직 남성이었던 시절의 옷을 입고 몰래 밖으로 나간다. 그 옷을 입으니 그녀는 여전히 귀공자처럼 보인다.(257) 그녀는 이 시기에 남성인 사촌의 이름으로 글을 쓰는가 하면 여성의 모습으로 거리의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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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가 시작되면 올랜도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당연한 듯 끼고 있는 결혼 반지이다. 올랜도는 결혼이라는 풍습에 의문을 가지는 동시에 ‘시대정신’에 경의를 표하여 그 즈음에 절묘하게 등장한 쉘머딘이라는 남자와 만난다. 둘의 인연이 사랑이었는지는 몰라도, 쉘머딘과 올랜도는 “여자가 남자처럼 관대하고 솔직할 수 있으며, 또한 남자가 여자처럼 신비스럽고 섬세할 수 있다는”(307) 사실에 놀라고 쉘머딘이 길을 떠나기 전 결혼식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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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반지를 지님으로써 이제 시대정신에 따르게 된 올랜도는 거리에서 옛날의 시인 닉 그린과 조우하고,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시인은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시를 높이 평가하고 출판을 권한다. 시집의 출판과 아이의 출산을 기점으로, 20세기로 변한 시대에 올랜도는 옛날 자신을 배신한 러시아 여인 사샤와 재회한다. 사샤는 이전 모습을 간직하고는 있지만 뚱뚱해진 모습이다. 올랜도는 자신이 지나온 시대와 자아, 마주친 사람들과 공간들을 되새기고, 자정이 가까운 때?배를 타고 떠났던 쉘머딘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땅 위로 내린다. 1928년 10월 11일 목요일, 자정을 울리는 12번째 종소리가 울리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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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or’과 ‘그리고and’가 공존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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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올랜도는 버지니아 울프가 동시대 여성 작가 비타 색빌웨스트를 모델로 삼아 쓴 것이라고 한다. 실존인물을 모델로 삼았다고는 하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와 이 전기의 작가들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분명히 전달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 그렇다면 위에 저렇게 길게 쓴 올랜도의 일생은 뭐란 말인가? 자, 그러니까, 올랜도의 일생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다. 어쩌면 올랜도라는 제목의 이 소설에서, 올랜도의 삶 말고는 직접적으로 다루는 소재가 없는 이 소설에서, 올랜도의 일생이 중요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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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올랜도가 남성으로서, 여성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간으로서, 사색하는 순간, 전기 작가의 목소리를 빌어 활자화된 번뜩이는 재치, 절묘한 풍자, 지시대상이 불분명하지만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통쾌한 비판 속에 있다. 전기 작가는 남성 올랜도가 문학에 빠져있을 때 이보다도 심한 병은 없다고 비통해 하며, 여성 올랜도가 글을 쓸 때에는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차라리 창 밖의 곤충들이나 보자고 하는 둥, 여성의 삶에 남성이 없고 사랑이 없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분명하고, 일련의 유명한 남성 작가들이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는 둥, 그 사람들의 말이 틀렸다면 대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냐는 둥, 능청스럽게 말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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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는 어떻게, 는 설명하지 않는 이 전기 작가들이 전달하는 올랜도의 이야기는 모든 가능성에 열려 있는 듯 보인다. 역자는 ‘일부 페미니즘 계열의 비평가들’이 or와 and가 모두 들어간 올랜도라는 이름이 or라는 2분법 대신 and가 바람직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옮겼다. 나는 이를 발전시켜 이 이야기가 ‘또는’과 ‘그리고’의 공존을 전제로 전개되고 있으며, 독자에게도 그러한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단지 성별에 대한 것뿐 아니라, 올랜도와 다른 인물들이 어떻게 인간의 수명보다 많은 시간을 살아냈는지, 우리가 이해할 단서는 없다. 그러나 올랜도의 성전환과 여성되기가 이 소설에서 단지 소재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불가능해 보인다. 역자가 말하듯 이를 ‘기상천외의 실험’ 혹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른 간이역’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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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3기니>나 <자기만의 방>에서도 여성성과 남성성의 공존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이것이 여성성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던 20세기 페미니스트로서의 한계라고 평했다. 그러나?한편으로, 울프의 주장에는 그녀 개인의 성별위화감이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한다.?올랜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된 사건,?소설 내내?올랜도가 사색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2]가 어째서 그/그녀의 성전환이었을까??나는 이것이 지정성별로 한정되는 여성 혹은 남성을 넘어 남성이면서 여성인 존재, 사회적 기준에 따라 여성으로 분류되지만 자신이 단지 여성이지 않음을 경험으로 아는 존재를 주인공으로 삼아야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젠더를 이야기하면서도, 여성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많은 논의가 성별이분법적으로 진행될 때 놓치게 되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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