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 - 이토록 섬세한 균열 > 전지적 퀴어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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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 - 이토록 섬세한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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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긱또 댓글 0건 작성일 16-05-1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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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지극히 내성적인>, 창비, 2016

*해당 리뷰는 <지극히 내성적인>에 수록된 단편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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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면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파도와 같다. 언뜻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벽에 조금의 균열이 생기고 결국 전체가 무너지는 것처럼, 우리의 자아와 관계 또한 별다를 것 없어 보이던 하나의 가는 금으로 인해 폭삭 주저앉을 수 있음을 우리는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정화 작가의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는 바로 그 일상 속 미세한 균열을 포착하여 한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출렁임을 이다지도 섬세하게 잡아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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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속 주인공 ‘나’는 기민한 사람으로, 주인공과 정반대되는 성향의 독자라면 그 예민함에 '이건 조금 지나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토록 병적인 예민함이 야기하는 아름다움은 사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거나 혹은 한번쯤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소소한 일상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나’의 입을 빌려 말해지는데 이를 통해 읽는 이들은 주인공의 의식 흐름에 자연스레 동참하고 동화된다. 이것은 ‘지극히 내성적인’이야기인 동시에 ‘지극히 섬뜩한’이야기이며 그 섬뜩함의 이유는 전부 독자의 온전한 공감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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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떨어진 시골에서 말동무라고는 ‘경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갑내기 여자친구뿐이던 주인공의 집에 어느 날 한 여성 소설가가 와 함께 지내게 된다.? 거의 혼자 생활하는 시골에서의 삶, 그리고 소설 전반부에 나오는 유일한 친구 경선과의 관계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시피 주인공은 누군가와의 친밀하고도 보다 가까운 관계를 필요로 하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러던 와중 주인공의 가장 가까이에서 일상을 함께할 사람이 나타나고 그녀는 그 선생님의 존재를 기꺼이 ‘특별함’이라는 범주의 관계에 넣기를 소망한다. 주인공이 선생님, 이라고 부르는 오난영이라는 소설가와 주인공 간의 관계 변화와 그에 따른 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이 소설의 큰 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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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수가 적고 늘 정돈된 생활을 추구하며 좀처럼 가까워지기가 힘들었던 선생님이 주인공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처럼 보이자 주인공 '나'는 매우 기뻐한다. 선생님과의 산책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선생님과 팔짱을 끼고서 ‘어쩌면 처음 선생님을 봤을 때부터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 마음 속 독백을 하기도 하며, 선생님을 이미 특별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자신의 서술을 통해 여과없이 드러낸다. 이어 선생님과 주인공의 관계는 선생님의 소설을 주인공이 읽고 감상평을 말해주기 시작하면서 더 깊어지고 동시에 아리송해진다. 주인공은 자신의 말에 선생님이 보이는 크나큰 반응의 변화에 묘하게 좋아지는 기분을 느끼는데, 한 사람의 반응이 어떤 한 사람을 심하게 일렁이도록 만든다는 것은 곧 특별취급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주인공은 바로 그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해지는 관계의 쾌감을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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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느낌, 그 느낌은 주인공에게 있어 원고를 쥐고 있는 순간만큼은 ‘관계의 주도권’을 쥐도록 해주었지만 결국 타인의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을 눌러버리는 바람에?이윽고 선생님과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봤을때 어쩌면 선생님은 주인공에게 크게 마음이 상한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마음이 상했었으나 시간이 지나서 아무렇지 않은 기분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더 이상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본인과 자신의 글 자체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보다 적확한 이유는 선생님 본인이 아니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인공과 함께 가슴을 졸이고 관계에 대해 고심하고 안타까워하고 손톱 끝을 물어뜯을 뿐이다. 왜냐면 이것은 ‘지극히 내성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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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얻고 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하는 것의 과정을 주인공과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독자는 모두 엿볼 수 있다. 호기심, 그리고 마음을 열게 되는 사건, 과정, 서로의 반응과 관계에서의 권력을 탐색 후 조그마한 균열로 인해 생겨난 오해와 멀어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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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는 사실 어느 정도 자기중심적이기 마련이다. 주인공은 선생님의 모든 것을 자신과 연결 지어 생각한다. 표면의 소통이 닫혔을지라도 자신의 가슴 속에 뭉쳐있는 실타래들을 벌건 눈으로 하나하나 풀어내며 본인의 마음과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특별한’ 관계가 어색하게 끝이 나고야 말면 이런 헤엄을 반복한다. 누군가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경우 자신 또한 특별한 그 누군가에게 더없이 특별한 사람이고픈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대부분 자기중심적이듯 자신이 만들어낸 관계의 허상은 애석하게도 거짓일 가능성이 있는 법이다. 주인공에게 선생님은 이미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선생님에게 있어 주인공은 자신의 책을 헌정한 찬란한 여름의 추억을 만들어준 ‘그 여성’이 아니었을 수 있다. 이런 오해와 거짓은 항상 수많은 관계를 무너뜨리거나 생채기를 내곤 하나?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혹 누군가와 사랑하고 싶다면 당연하게 알아야 하고 겪어야 할 진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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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가고 깨어져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유리 조각의 반짝이는 단면을 섬세하게 포착한 관계의 시. 나는 이 이야기를 충분히 있을법한 레즈비언 서사로 읽었다. 이토록 자의식 과잉의 예민한 인물들과 여리디 여린 독백가운데 숨겨진 소름끼치는 섬뜩함이라면, 나는 언제까지고 최정화 작가의 다음 소설집을 기다릴 용의가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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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또

모두가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퀴어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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