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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리뷰 : 시간과 만남, 헤어짐의 세 가지 수식 ? 최근의 국내 퀴어단편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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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배 댓글 0건 작성일 17-01-2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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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만남)÷헤어짐

= 최은영 「그 여름」

『21세기문학』 2016년 겨울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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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소설집이었건만 <쇼코의 미소> 이후 벌써 팬이 급증했다. 그의 레즈비언 소설을 읽고 나니 퀴어 독자들도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당신이, 멱살을 콱 잡는 강렬한 서사보다 나란히 누워 나누는 속삭임 같은 소설을 좋아한다면 더 그렇다. 최은영의 소설은 어딘지 상투적인 데가 있다. 나는 이것이 무례한 평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당신의 가장 상투적인 감정, 더없이 지긋지긋한 기억, 싫을 만큼 반복되는 경험을 잊지 않고 소설로 불러들인다. 인간은 상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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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서 영화 <연애담>을 떠올리기도 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도 생각났다. 이제 예상할 수 있을 터. 「그 여름」은 한 레즈비언 커플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그것뿐인 소설이다. 나는 위의 두 영화가 뜨거운 호응을 얻은 이유가 ‘잔인하게 현실적이어서’ 라는 데 동의한다. 현실의 시간은 동화의 영원히(Ever after)를 절단한다. 우리는 만나면 헤어진다. 따라서 좋은 이야기는 만남의 뽕에 취한 관객/독자들을 용서 없이 헤어짐까지 끌고 간다. 연애 초기, 빛나는 만남은 처연한 헤어짐에 이르러서야 완벽하게 직조된다. 정말로,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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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름」은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다" 로 시작한다. 손가락 끝이 저릿할 만큼 찬란한 만남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경은 사실 13년 전을 회상하고 있다. 소설 속 지금, 이경과 수이는 헤어진 채다. 나는 여기서 헤어짐의 사유를 설명할 생각이 없다. 헤어짐에 이르기까지의 ‘모호하고도 분명한’ 어긋남들이 아주 섬세하게 묘사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튼 두 사람은 헤어진다. 하지만 만남에서부터 헤어짐은 일직선이 아니다. 이경은 수이를 만나기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이 소설이 적확하게 보여주는 대로, 만남은 곱셈이다. 시간과 곱해진 만남의 이야기는 기억을 통해 복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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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루다 역시 "이것이 바로 내 송가의 모랄이다. 아름다운 것은 두 배로 아름답고 좋은 것은 갑절로 좋다"('양말에 바치는 송가')라는 곱셈의 모랄을 말했다. 하지만 최은영의 소설은 이것을 다시 나눈다. 이제 시간과 곱해진 만남이 헤어짐으로 나눠진다. 그리고 나눠진 후에 남는 부분을 우리는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경은 수이와 헤어진 후에도 수이가 알려준 새의 이름을 기억한다. 여전히 수이는 "시간과 무관한 곳에, 이경 마음의 가장 낮은 지대에 꼿꼿이" 서있다. 만남은 분명 ‘목숨을 건 도약’(가라타니 고진)이며 우리는 번번이 도약에 실패한다. 어떤 연애담은 이 도약과 실패를 정확히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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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만남-헤어짐)

= 정지향 「토요일의 특별활동」

『악스트』 2016년 11월-12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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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짐의 소설 같다. 헤어졌기에 기억할 수 있는 사람, 지났기에 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소설 말이다. 화자는 중학생 시절을, 적성연구부에서 만난 ‘정민’을 회상한다. 정민과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 책상 밑에서 몰래 손을 잡곤 했다. 정민과 함께하는 시간은 ‘나’에게 불안과 함께 “작고 뜨거운 만족감" 을 주었다. ‘나’는 정민을 따라 놀러간 시내 카페에서 본 수상한 언니들을, 그들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서로 혀를 얽던 광경을 함께 돌이켜본다. 싸이월드 클럽에서 알게 된 ‘커피 앤 씨가렛’ 닉네임의 언니를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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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마침 격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놀토’가 생긴 시기다. 수업이 없는 토요일에는 특별활동이란 것이 생겼다. 그러니까 화자가 정민을 만나고 이반 커뮤니티에 발을 들인 것은 일종의 특별활동 같은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소설의 결말부에서 ‘나’는 정민을 둘러싼 풍경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는 더 이상 적성연구부 소속이 아니며, 정민이나 커피 앤 씨가렛 언니를 만나지 않는다. 정민을 따라 뚫었던 피어싱이 그렇듯 모두 “금세 아물고 옅은 갈색의 점 같은 흉터[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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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잠깐의 이반 풍경은 사진처럼 제시된다. 사진의 본질은 찍힌 대상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시간성이며, 따라서 사진의 근본 정조는 슬픔이라는 말(롤랑 바르트)에 동의한다면, 소설 속 싸이월드나 일일찻집 등의 레즈비언 문화 역시 특정 시공간 속에 갇힌 슬픈 화석으로 읽힌다. 방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 정민의 어머니나, 주인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 배가 부른 ‘나’의 푸들처럼, 소설은 10대 화자에게 여드름처럼 돋아난(섣불리 긁지 않는다면 시간과 함께 사라져갈) 몇 가지 기억을 주워 모은다. 아련하면서 알 수 없는, 말줄임표 같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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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나는 정지향 단편을 뺄셈의 수식으로 오독해본다.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헤어짐을 빼고 남는 잔여물, 그것을 시간에서 뺀 기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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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만남∩헤어짐=?

박상영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이후 「농담」)

『현대문학』 2016년 12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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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연 돋보이는 제목을 어떻게 줄여야 할지 고민했다. 「제제」일까 「농담」일까. 일단은 ‘제제’ 와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가 맞다. 제제는,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합창을 할 때 한 음 낮게 혹은 한음 높게 노래를 부르는"(넬리 작스 ‘증오의 검은 대답’) 사람이다. 제제는 ‘나’의 동거인이며, 술과 명품, 남자를 좋아하고, 자신이 일하는 게이 마사지샵에서 만난 손님이 마음에 들면 노콘 섹스를 한다. ‘나’에 따르면 제제는 뻔뻔한 사람, 제제는 사랑을 많이 하는 사람, 제제는 소비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제제는 ‘나’에게 매일 한 가지씩 웃긴 얘기를 해주는데,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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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두 명이 실종되는 걸 뭐라고 하게.

깜깜무소식.

반성문을 영어로 하면.

글로벌.

모두가 널 떠날 것이다,를 네 글자로 하면.

올리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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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자는 건지 싸우자는 건지, 울라는 건지 한심해하라는 건지 모르겠는, 이것이 박상영 소설의 정조다. 그래서 참으로 "웃기고 이상[한]" 이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다짐해야 한다. 농담에 정색하지 말자. 이를테면 ‘나’가 사랑하는 사람과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것, 섹스 없이는 불면에 시달린다는 것, 콘돔 없이 모르는 남자들과 섹스를 한다는 것을 읽고, ‘게이들의 웃음 뒤에 숨겨진 슬픔의 페르소나’ 따위를 읊어대지 말자. 그거야말로 나쁜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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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소설은 ‘나’와 제제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다양한 남자들의 사연으로 휴먼 드라마를 쓸 법하다. 미국 퀴어 드라마를 본 후 뒤늦게 성적 지향을 깨닫고 성형수술을 한 ‘양악남'?이야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학창시절에 왕따 당했던 ‘공대생 4’ 이야기 등 드라마틱하게 달려들 만한 소재는 풍부하다. 다만 박상영 소설에서는 아니다. 에이즈를 걱정하면서도 노콘 섹스를 계속하는 '나'에게 정색할 바에는, 콘돔을 끼운 후에도 쌩쌩하도록 제제처럼 중국산 비아그라라도 선물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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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하자면 “허무한 농담”과 같은 이 소설에서, 제제는 ‘나’에게 선명한 낭만이나 위안의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두 사람은 평행선처럼 서 있다가 이따금 농담처럼 스친다. 그러니까 만남이라기보다 마주침에 가까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 이 소설을 「제제」보다는 「농담」으로 축약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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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고이지 않는 소변에 대해 얘기해보자. 소설 상 가장 극적이어야 할 장면, 클라이막스다. 좋아하던 사람과도 쫑나고, 직장에서도 잘리고, 노래방 술집에서 원하는 노래도 부르지 못한 제제가 엉엉 울고 있는 옆에서 ‘나’는 “따라 울어볼까 싶기도 했는데 눈물은 안 나오고 대신” 오줌을 싼다. 오줌은 바닥에 스며들지 않고 노란색 점자 보도블록 위를 겉돈다. ‘나'는 그것이 그저 이상하고 웃긴데, 제제는 그냥 사라진다. 이쯤 되면 웃다가도 말게 되는 제제의 말장난으로 시작해서, 서다가도 픽 식어버리는 콘돔 속 성기로 이어지다가, 끓어오르는 열기조차 푸스스 꺼뜨리는 소변으로 완성되는 농담의 카타르시스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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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삶은 흉한가? 삶에는 목적과 목표와 의지가 넘친다. 삶의 모든 길은 우리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끈다.(페르난두 페소아) 이런 흉함에 맞서는 방법으로 농담-적 소설을 읽는 것이 있겠다. 「농담」에서 시간은 만남과 헤어짐 안으로 스미지 못한 채 맴돈다. ‘나’와 제제의 만남, 헤어짐, 시간은 교집합 없이 미끄러지는 서로소처럼 보인다. 각 집합들 사이에는 농담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겹치는 지점이 없을까. ‘나’는 과연 제제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 것이 없을까. 이쯤에서 나쁜 우스갯말처럼 덧붙이는 최종 공식: 문학의 수식은 독자 수만큼 무한히 증식한다. 스스로의 오류를 확신하면서 나는 다른 수식들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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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

시간+만남+헤어짐: 단순명료한 덧셈형 인간, 퀴어문학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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