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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月經)으로부터의 월경(越境) ? 천운영의 「월경」 속 여성의 신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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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브 댓글 0건 작성일 16-08-0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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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월경」, 『바늘』, 창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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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月經)으로부터의 월경(越境) ? 천운영의 「월경」 속 여성의 신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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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단편소설 「월경」은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서술과 작가 특유의 건조한 문체가 돋보이는 글이다. ‘은하수’라는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은 다른 남자와의 성관계 장면을 들킨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에 피살되는 장면을 목격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작중 ‘계집’이라고 불리는 은하수 종업원은 공사장 인부들과 관계를 나누는 성 노동자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인 서술자와 ‘은하수 계집’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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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는 여성성이 거세된 인물로 묘사된다. 풍요로움과 섹슈얼함을 상징하는 은행나무가 잘려나가는 것과 동시에 ‘나’의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자라기를 멈추”어, “젖가슴은 열세살 몽우리로 남아 있고 키도 150센티미터가 안”되며, “열두살에 시작한 생리도 이젠 하지 않게 되었다”고 묘사된다(62).[1] ‘나’의 몸은 “노인의 거죽처럼 처지고 볼품없어 보이”며, “듬성듬성 제멋대로 뻗은 털들 사이로 보이는 누렇게 질린 두덩과 밋밋하게 뻗은 얇은 틈”(74)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소거된 혹은 여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몸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여성성이 제거된 나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풀이 우거지고 녹이 슨 철로의 황폐한(barren)[2] 이미지와 닮아있다. 이와 같은 서술들은 ‘나’를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 인물로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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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잃어버린 여성성을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은하수 계집’의 몸을 탐닉한다. ‘나’는 “문틈에 눈을 대고 숨을 죽인 채” 목욕을 하는 “계집의 엉덩이를 훔쳐보”며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쑥 넣거나 체벌을 하듯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는 상상을” 한다(70). “내가 좋아하는 건 은하수 손님들이 하는 것처럼 계집의 엉덩이를 만지기도 하고 가슴을 주무르기도 하면서 자는 것이다”(71). ‘계집’의 몸은 ‘나’의 것과는 달리 “비옥한 대지”(74)라고 묘사된다. “봉곳하게 솟은 계집에 무덤”에서는 “향긋한 풀냄새”가 나고, “두덩에서 안쪽으로 결을 고른 풀들은 윤기가 흐르고 진한 색을 띠고 있다”(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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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시선을 따라 ‘계집’의 풍요로운 신체를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지정 성별이 여성이라면, 그 신체는 반드시 여성으로서의 ‘생식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그것이 결여된 ‘나’의 신체는 부족하고, 결핍되고, 모자라고, 고장 난 신체일까?

주인공 ‘나’는 철로에 의해 외부와 단절 되어있다. ‘나’는 “철로를 가로지를 수는 없”으며, “철로는 이 집을 지키고 있는 안전선,” 혹은 “방어벽” 역할을 한다(65). 심지어는 “철로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강한 전류가 느껴”지며, “철로는 강력한 힘으로 나를 밀쳐내”기도 한다(76). 철로에 가로막혀 있는 ‘나’의 모습은 마치 여성이라는 이름에 주어지는 경계선에 가로막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철로를 넘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다. “철로를 아직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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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정사를 나누었던 공간이자 은하수 계집이 푸른 모자를 쓴 사내와 정사를 나누는 공간인 방은, ‘남녀의 결합’이 현현하는 곳으로 아주 분명한 이성애 중심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에 피살당하는 장면을 보아야 했던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신체를 박탈당함으로써 헤테로섹슈얼리티를 실천할 수 없는 ‘나’는 그 방으로부터 계속해서 배척되어왔다. 그 방은 “내가 넘지 말아야 할 문지방” 너머의 곳이었고, ‘나’가 “머릿속으로 방문에 대못을 박은 다음 […] 지워버”린 장소였다(79). 말하자면 글자 그대로 “못 쓰는 방”(78)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계는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가 한 가운데 앉아 정사를 나누고 있는 계집과 사내를 향해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83). 사내와 몸을 나누며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고 있는 듯”한 계집의 몸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83), “질투를 느끼”게 하는 푸른 모자의 사내에게 또 팔을 휘두른다(74). 그 순간 경계는 무너지고, 주인공에게 강요되던 정형적 여성성도 함께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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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화된 개념에서 벗어날 때, ‘나’는 글의 제목처럼 월경(越境),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철로를 넘어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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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에 발끝을 대본다. 맨발에 차가운 쇠의 느낌이 전해져온다. 나는 감전되지 않는다. 은행잎 하나가 날아와 발부리에 닿았다가 철로 사이에 몸을 누인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철길을 넘어선다. 그리고 그가 걸었던 길을 조심조심 밟아 걷는다. 발을 디딜 때마다 잠든 곤충들의 낮은 숨소리가 들린다.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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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 여성성, 그리고 풍요로움의 상징인 보름달빛이 ‘황폐한’ ‘나’의 몸 위로 찬란하게 쏟아진다. “더이상 차오를 수 없는 보름달은 스스로 몸을 허물어 경계를 지”운다(83). ‘나’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했을 때, 그녀의 몸 위로 흩어지던 초승달 모양의 칼자국과는 달리, 경계를 허무는 보름달 빛을 받으며 ‘나’는 비로소 몸의 구속에서 벗어난다. 월경(月經)이 끊어진 ‘나’는 이제 스스로 월경(越境)하는 사람이 되어, ‘몸’과 ‘여성’이라는 단어를 마구잡이로 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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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운영, 「월경」, 『바늘』, 창비, 2001. 이후로는 페이지 수만 표기.

[2]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을 의미하기도 하는 ‘황폐한(barren)’이라는 수식어는 ‘나’와 철로,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외딴 지역의 분위기를 모두 어우르는 단어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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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브(zcyclamen@hotmail.com)

바이로멘틱 그레이-에이섹슈얼, 문학도, 애견인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조금 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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