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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그 기록의 뼈 - 황정은, 「뼈 도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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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난 댓글 0건 작성일 18-11-0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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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뼈도둑」, 『파씨의 입문』, 창비, 2012





1. 겨울


 노스럽 프라이는 그의 저서 『비평의 해부』에서 자연의 순환 주기인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이야기 문학의 범주인 로맨스, 비극, 희극, 아이러니(또는 풍자)를 연결시키면서 “로맨스는 희극적일 수도 있고 비극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비극적인 것은 상위 로맨스에서부터 씁쓸한 그리고 아이러니를 품고 있는 리얼리즘으로 확대된다.?”?1)?고 말한다.

우리는 「뼈 도둑」에서 비극적인 움직임과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비극적인 움직임은 연인 중 한 명이 죽고, 다른 한 명은 그의 뼈라도 가지기 위해 눈길을 걸어가다 눈에 갇힌다는 것이고, 아이러니를 품고 있는 사실이란 그 생과 사의 경계에서 타인이 그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끝없이 계속되는 겨울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2. 얼굴을 잊고 잃은 조, 나, 그


 작품의 초반부 서술자는 ‘그대’에게 그대가 부르고 싶은 대로 자신을 호명하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그 남자’ - ‘그 기록’ - ‘그 새끼’ - ‘그 물건’ - ‘그것’이라는 단어들 사이에 위치시키고, 자신을 ‘그’라고 정의한다.


그대가 부르고 싶은 대로 나를 부르라. 그 남자, 그 기록, 그 새끼, 그 물건, 그것, 나는 즉 그다. ?2)


 이 문장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이 해체된 상황을 의미하면서 ‘그’와 ‘그가 아닌 다른 것들’과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본고에서 주목한 점은 서술자가 자신을 지칭할 때 ‘그 남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성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그 남자’를 ‘그 기록’, ‘그 물건’, ‘그것’ 사이에 위치시켜 그 정체성의 구별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는 정체성이라는 개념의 복잡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그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때는 장과 그가 사랑할 때와,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갈등 속에서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분리되지 않고 공존하고 있다.

 장은 그의 이름(조)을 부르며 그를 그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구별한다. 또한 함께 살아가며 기억을 만들고, 이러한 기억들은 ‘그 기록’인 그의 정체성을 구조화시킨다. 그러나 ‘그 기록’은 장과의 기억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의 기억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교회 사람들에게 동성연애를 한다는 이유로 이전까지 잘만 나가던 교회에서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와 장이 죽고 장의 누이가 집에서 ‘나’를 쫓아냈을 때 우리는 ‘나’의 성적정체성이 그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는 점-그의 삶을 해체하고 다시 구조화시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고로 장과 함께 만든 사랑의 기억과 사회가 그에게 저지른 폭력의 기억이 함께 ‘그’ - ‘그 기록’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랑’과 ‘혐오’ 두 가지 모순된 기억들의 공존이다.

 이러한 논리는 서술자의 정체성이 해체되는 것과도 연결된다. 서술자는 장이 죽고 난 뒤 고립의 공간으로 이주한다. 그는 그 집에 당도하기 전의 상황을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그는 이미 많은 얼굴을 잃어버린 뒤 그 집에 당도했다. 많은 얼굴을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고 그 자신의 얼굴 역시 그런 얼굴들 속에 있었다. 겨울이었다. (183쪽)


 여기서 그는 ‘그 남자’ ? ‘그 기록’ ? ‘그 새끼’ ? ‘그 물건’ ? 그것’을 병치시키는 데서 나타난 논리를 자신의 얼굴이 ‘잊어버린 ’, ‘잃어버린’ 얼굴들 사이에 있다는 문장으로 이어나간다. 이러한 잊음, 잃음의 과정은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지속된다.


그는 차를 내버려두고 집 안으로 돌아갔고 그뒤로 사람들 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93쪽)


 소설 곳곳에서 나타난 ‘그’의 정체성은 유동적으로 구성되며 그것이 허구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허구적인 정체들 속에서 분명한 것은 ‘그 기록’이 ‘독자’인 ‘그대’를 호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 그대


1과 2에서 도출한 사실은 소설의 수미상관 구성을 통해 분명해진다. 소설의 처음 부분과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처음 부분]

그대는 이 기록을 눈 속에서 발견할 것이다.

나는 눈 속에 갇혔다. (183쪽)


[마지막 부분]

그에 관한 꿈으로 완전에 가까워지고 있었으므로 그는 갈 수 있었고, 살 수 있었다.

하.

후.

하.


*


그대는 이 기록을 눈 속에서 발견할 것이다. (205쪽)


 그는 첫 부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온갖 아이러니가 난무하는 ‘겨울’ 속에 갇히고 말았다. 그곳에서 그는 위태롭게 살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기록을 읽고 있는 한 그것은 소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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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스럽 프라이 저, 임철규 역, 『비평의 해부』, 한길사, 2016(2000), 322쪽.

2) 황정은, 「뼈 도둑」, 『파씨의 입문』, 창비, 2018(2012), 183쪽. 이하 본문을 이용할 경우 인용구 옆에 페이지만 표시한다. 예시: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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