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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안나를 소유하고 싶어 해―백수린의 「자전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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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숭아 댓글 0건 작성일 17-03-0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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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안나를 소유하고 싶어 해―백수린의 「자전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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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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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제이, 아무도 모르는 밴드의 보컬 안나, 그리고 무명의 웹툰 작가인 나(p.35)'?이렇게 세 명의 여성이 동거하고 있다. 그 집에서?비슷해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이 셋을 '하나로 묶어주는 규칙'은 바로 '공동 분배(p.3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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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부터 미끄러진다는 느낌을 더이상 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뿌리를 내렸다. 어둠을 움켜쥐고 자라는 음지식물처럼. '우리'라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안전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었고 모든 것은 공유되었다. 가족보다도 가깝고 서로를 분신처럼 아꼈던 우리. 우리의 공동생활은 삼년 팔 개월 동안 아무 탈 없이 지속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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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동안 큰 소음 없이 지속되던 이 '공동생활'은 '안나'의 자전거로 인해 깨지게 된다. '나'는 이 자전거를 두고 작품 첫머리에서 '모든 것은 자전거 때문이었다. 집에 자전거가 생긴 이래로 되는 일이 도통 없었다(p.33)'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모든 것을 공평하게 소유하던 '안나'는 자전거를 선물해준 남자 'P'를 만나고, '나'의 눈에 이 'P'라는 남자는 너무나 완벽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시선은 자꾸만 '안나'를 향한다. 'P'가 선물해준 자전거는 'P'가 아닌 '안나'와 일체화된 것처럼 표현되고,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살아오면서 본 중 가장 작은 눈(p.44)'을 가졌다고 표현되던 '안나'는 점점 더 예뻐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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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양을 받은 자전거가 유난히 빛났다. 안나도 자전거 모델처럼 빛이 났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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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랑에 빠진 안나는 초라한 우리집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예뻐 보였다. 요즘 들어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다니는 안나의 입술이 관능적으로 보였다. 단 한 번도 주목해본 일이 없던 안나의 입술은 도톰하고 끝이 살짝 올라가 있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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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제 안나는 예전의 안나가 아니었다. 요염한 안나의 입술, 자전거에 올라타면 두드러지는 안나의 잘록한 허리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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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고 푸른 조명 속에 서 있는 안나. 푸른색 아이라인을 짙게 그린 안나가 헤드뱅을 할 때마다 머리가 횃불처럼 휘날렸다. 푸른 스모키 화장 때문이었을까. 안나의 눈매는 전에 없이 매력적이었다. 말랐지만 육감적인 안나의 몸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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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 작품의 묘한 구석이 생긴다. 작가는 '나'의 소유욕이 'P'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혹은 'P'를 함께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묘사하려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 '나'의 성애는 완연히 '안나'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나'가 말없이 'P'를 데리고 온 일에 대해 제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그러니까 너는 고고한 척 안나의 변절에 쿨할 수 있는 거야(p.45)라고 '나'는 생각하며, 정작 '안나'처럼 'P'와 섹스하는 꿈을 꾼 날에는 '왠지 허망한 기분(p.45)'이 들고, 자전거를 탄 '안나가'?어디론가 떠날 것처럼 보일 때 '나'는 따라가지 못해서 안타깝고 아쉬운 정서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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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그후로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간다.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페달을 밟는 안나의 매끄러운 종아리가 눈부시다. 나는 현관에 서서 안나가 자전거에 올라타는 모습을 훔쳐본다. 아침공기를 가로지르며, 빛살 한가운데로 전진, 전진. 아아, 안나. 이 모든 것은 다 저 자전거 때문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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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연습 갔다 올게.

안나가 나간다. 안나는 또다시 자전거에 올라탄다. 안나의 미끈한 종아리에 근육이 옅게 도드라진다. 나는 현관에 서서 안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쉼없이 페달을 밟는 안나의 건강한 다리. 오직, 안나의 노동에 의해 앞으로 굴러가는 자전거의 바퀴. 자전거를 따라 바람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텅 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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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가 자전거 위로 미끄러지듯 올라탄다.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다리로 자전거를 감싼다. 자전거와 안나는 애초에 한몸이었던 것처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안나가 페달을 밟는 대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간다. 비틀거림도 망설임도 없다. 페달을 밟으며 안나는 신이 난 듯 환호성을 지른다. 자전거는 자꾸만 빛 속으로, 빛 속으로, 표백된 햇살 속으로 안나를 이끌고 간다. 너무 눈이 부셔서 나는 그곳을 쳐다볼 수조차 없는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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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안나' 몰래 그녀의 방을 드나들던 '나'는 '안나'의 방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내 것을 빼앗기기라도 한 사람처럼 견딜 수 없이 괴로(p.50)'워한다. '모든 것을 공유했었(p.50)'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정서 역시 종잇장처럼 느껴지는?'P'보다는 훨씬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인물인?'안나'를 향해 있다.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P'가 아닌 '안나'를 공유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작품의 말미에서 '나'는 마침내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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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안나. 너는 왜 이렇게 빛나는 것일까. 나는 너를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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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 '안나'의 자전거에 '제이'가 체인이 걸어놓은 것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제이의 얼굴에서 미소를 본다. '안나'는 자전거와 일체화되는 존재였고, 그런 '안나'의 자전거에 걸린 체인은 '제이'의 소유욕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 '나'처럼 '제이'도, 예전처럼 '안나'를 소유하고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런 '제이'를 보며 '문득 나도 내일 자전거 체인을 하나 사러가야겠다는 생각이(p.58)' 든다. '안나'는 이전처럼 앞으로도 '나'와 '제이'에게 계속 소유될 거라는 것을 알아차린 후, '안나의 얼굴은 더 이상 내 얼굴보다 더 예뻐 보이지 않(p.59)'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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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전거 도둑」은 '안나'를 '제이'와 '나', 이 두 명이 함께 소유하려 애쓰는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P'는 그저 계기였을 뿐, 작품의 중심은 '안나'와 그녀와 일체화된 것으로 표현되는 '자전거'에 쏠려 있다. 이 세 명의 여성이 보여주는 기묘한 공동생활의 끝은 어디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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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수린, 「자전거 도둑」, 『폴링 인 폴』, ?문학동네, 2014, p.36~37.

2) 위의 책, p.34.

3) 위의 책, p.44~45.

4) 위의 책, p.49~50.

5) 위의 책, p.52.

6) 위의 책, p.35.

7) 위의 책, p.38~39.

8) 위의 책, p.45~46.

7) 위의 책,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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