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조금 무너질 때 ― 근하 단편집 『봄이 오고 있어』 > 전지적 퀴어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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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조금 무너질 때 ― 근하 단편집 『봄이 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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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북극곰 댓글 0건 작성일 18-12-1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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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 작가의 <봄이 오고 있어>의 경우 '여성퀴어 단편만화집'으로 출간되었으나, 글의 측면에 집중하여 이 텍스트에 접근한 리뷰어님의 의사를 존중하여 그대로 리뷰란에 기록합니다.

(관련정보) https://www.tumblbug.com/spring_is_coming






 세상이 조금 무너지는 순간을 느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중요한 시험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조금 넋을 놓고 있을 때나, 먹다 남은 된장찌개를 대충 끓여 싱크대에 기대서서 밥을 먹을 때. 혹은 연인과 헤어진 직후 뒤돌아서서 왔던 길을 되돌아갈 때. 그럴 때면, 겨울 저녁의 인적 없는 놀이터에서 혼자 차가운 시소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고는 한다.

 아주 조금 가라앉아 있는 느낌.

 근하 작가의 단편집 <봄이 오고 있어>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등장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시소를 타며 가볍게 붕 떠올랐었지만, 지금은 혼자 남아 모래에 박혀 앉아 있는 순간들. 직접 경험할 땐 영원 같지만 지나고 보면 아주 짧은 한 순간이었던 시간들을, 작가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로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 속에는 이제 막 함께 시소를 타기 시작하는 열일곱 살의 순간도 있지만, 한참을 혼자 시소에 남아 지난 실수를 후회하는 마흔 살의 순간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시시한 영화>라는 제목의 이야기이다.


제일 후회되는 일은 내가 좋아하던 영화를 그에게 소개해주고 보라며 닦달했던 일이다. 그러면서 그가 영화를 보고 난 후 시큰둥해하면 난 괜히 서운해했다. 그 다음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을 겪은 후, 관심받으려 울분을 내쏟는 연기를 했던 일 정도.


언제나 한 시간 정도 위로받았다.


 그는 이제 막 시소에 혼자 남았다. 하지만 헤어진 애인과 다니던 길이나 카페를 다니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지난 연애의 이런저런 사소한 후회들을 적으며 무던하게 이별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그 사람 없이도 혼자 영화를 보는 취미까지 생긴 그는 그날도 어김없이 혼자 영화관에 앉아 시시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넌 아마 나랑 헤어져도 잘 살 것 같다.

뭐? 

아마 그럴걸. 

왜 그런말을 해? 

우리 게임할래? 누구 한 명이 연락을 안 하면 그대로 헤어지는 거야. 아마 다시 만나기 싫으니까 연락하기 싫은 걸 테니까. 어때? 

그래 좋아. 


 그러나 그 사람과의 기억은 깨진 유리를 밟은 것처럼, 작지만 문득 걸을 수 없을 만큼 크게 따끔거렸다. 그는 그 사람과 함께 여름을 보내고 싶었고, 무난히 겨울을 지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이 좋아하던 책을 함께 읽어보지 않았고, 그 사람의 슬픔을 모른척했다. 결국 그는 3일 만에 먼저 연락을 했었고, 돌아온 답변은 헤어지자는 통보였다. 이제는 그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 줄 알았는데, 또 후회할 일이 하나 늘었다. 그는 영화가 슬퍼서인지 아니면 뒤늦은 후회가 싫어서인지 혼자 있는 영화관에서 조금 울었다. 하지만 그 날은 혼자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본 날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 기억은 조금씩 잊혀질 것이다.


 책 속의 사람들이 느꼈던 것처럼,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설 때, 지하철이 출발할 때, 영화관을 나설 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을 때. 내 세상 또한 조금 가라앉는다. 그 순간들을 기록한다면, 이 책의 장면들과 닮아 있을 수 있을까. 순간 속에서 절망과 실망을 느끼지만 무던히 털고 일어나 별일 없이 다음 날을 보내는, 작은 가라앉음에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모습들로 기록될 수 있을까.

 아직은 갈 길이 조금 멀어 보인다.



김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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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쿠크다스 멘탈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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