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존재하라 ― 조 월튼, 『나의 진짜 아이들My Real Children』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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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난 댓글 0건 작성일 18-11-29 17:50본문
나의 진짜 아이들, 조 월튼, 아작, 2017(2014)
1. 혼란, 덜 혼란, 매우 혼란
조 월튼의 대체역사물 장편소설 『나의 진짜 아이들My Real Children』(2014)의 치매에 걸린 90세 여성 ‘패트리샤 코웬’이 “오늘 상태 혼란.”이라 적힌 기록지를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패트리샤’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해주지 못하는 그 단어에 항소하고 싶어 한다. 요즘 아이들처럼 “하지만 선생님! 나는 오늘 아주 조금만 혼란스럽단 말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가 정말로 혼란을 느끼는 순간은 아이들을 생각할 때이다. 그는 사랑하는 동성 연인 ‘베아트리체(이하 ’비‘)’와 함께 세 아이를 키워 냈던 ‘패티’의 삶과 남편 ‘마크 앤더슨(이하 ’마크')’의 폭력 속에서 네 아이를 키워 냈던 ‘트리샤’의 삶으로 나누어진 세계를 동시에 기억하고 있다. 그의 두 가지 삶에 대한 기억에 따라 세상의 역사 또한 두 갈래로 나뉜다. 패티의 삶에는 ‘핵전쟁’ ‘죽음’, ‘파괴’, ‘암’, ‘우익’, ‘이기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세계가 있고, 트리샤의 삶에는 ‘희망’, ‘가능성’, ‘구글’이 존재하는 ‘열린 세계’가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2] 패티의 삶
[그림3] 패트리샤
2. 주체, 패트리샤
2장부터 4장까지에는 마크를 만나지 않은, 팻과 트리샤로 나뉘지 않은, 혼란 상태를 겪지 않은 패트리샤 코웬이 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하느님’ 즉 신神 자체가 아닌, 사람으로 구성된 기독교 단체와 패트리샤 사이의 갈등이다.
‘2장 아담’에서는 1933년 7월, 웨이머스의 바닷가에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던 ‘팻시’*가 아버지, 오빠와 함께 모래놀이를 하다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아버지는 팻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고귀한 사람들이고 너희는 그저 미스터나 미스 같은 칭호만 붙일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야. 너희도 구석구석 그 사람들만큼 훌륭하거든. 그들만큼 멀리 갈 수 있어.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실을 자았을 때 누가 고귀한 신사였겠니?” (30쪽)**
‘3장 검은머리물떼새’에서는 전화에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팻시가 옥스퍼드 입학 면접을 본다. 고향 칼라일로 돌아가던 중 기차 연착으로 인해 베로인퍼니스의 노동자의 집에서 하룻밤 얻어 잔 뒤, 바닷가에 가서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검은머리물떼새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 후 전쟁이 오래 이어졌고 그녀에게서 너무도 많은 것을 앗아갔다. 그런데 바다는 그녀가 눈길도 주지 않았을 때도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 하느님처럼 여기 이렇게 가만히 있었다. 거기서 예수님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고, 바다도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고 있었다. 지상의 아버지와 오빠를 잃었지만, 하늘의 아버지는 여전히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아버지와 오스왈드를 잃지 않았다. 그들을 다시 볼 희망이 있었다. 순간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게 놔두었다. 주위에는 바다와 새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대단히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44-45쪽)
‘4장 조정경기’에서는 옥스퍼드 세인트힐다 칼리지에서 팻시가 ‘기독인 연합’ 으로 대표되는,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사회를 마주친 상황과 기독인 연합의 동성애 혐오homophobia에 피해를 받고 있는 친구를 위해 저항하는 사건이 표현된다. (물론 팻시의 언술에도 호모포비아적인 것이 드러나긴 하지만...)
“그런 게 불법이라니 말도 안 돼.” 패티가 말했다. “결혼생활을 벗어난 것이니까 비도덕적이고 깨끗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불법일 수는 없어. 말도 안 돼.”
…(중략)…
“넌 너무 순진해.” 이안이 말했다. “사람들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는 는 건 좋아. 하지만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도 생각해야지.”
“어떻게 보는데?” 패티는 멍해졌다.
“네가 자꾸 그 애를 옹호하면, 사람들은 너도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할걸.”
…(중략)…
“안으로 들어가자.”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걸음을 옮겨 그에게서 멀어졌다. (56-57쪽)
패트리샤는 두 개의 삶 모두에서 평회행진에 참여한다. 또한 각 세계에 핵전쟁이 벌어졌든, 벌어지지 않았든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팻의 세계에서 패트리샤는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지키기 위해 운동을 조직한다. 트리샤의 세계에서 패트리샤는 핵군축운동과 지역 사회를 보호하는 운동에 참여한다. 패트리샤라는 인물이 반복적으로 행하는 수행된 행위act of commission는 그의 앙가주망engagement이다. 그는 실존적 행위의 반복을 통해, 정체성의 분열과 세계를 인식할 수 없게 되었다는 혼란한 소설의 배경 속에서도 주체로 등장할 수 있게 된다.
3. 선택하라, 선택하지 못해도 존재하기 위해서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그 시간을 두 번 살 수 없다.
목차 바로 뒤에는 다음의 시가 인용되어 있다.
소네트 엔트로피를 거슬러
벌레는 나선형으로 나무를 뚫고 지나가지만
구멍에 남는 가루는 알지 못한다.
한때는 버젓했을 탁자,
갑자기 유리잔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전자들은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제 갈 길을 찾아간다.
소용돌이치며 사라지는 희미한 담배 연기여,
연인들의 이름이여, 지난날의 빛이여.
아마 당신은 그립지도 않겠지. 모든 게 한낱 농담일 테니.
우주는 서서히 멈춰 선다.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것을.
그러나 잃은 거라곤 오직 기억뿐이니,
비록 어떤 색들은 희미하게 바래져야 하지만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다고는 믿지 마시라.
후회는 말 그대로 너무 늦게 올지니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여라. 증언하여라.
계속하여라.
존 M. 포드, 2003년 10월 13일 (9쪽)
엔트로피는 “다시 가용할 수 있는 상태로 환원시킬 수 없는, 무용의 상태로 전환된 질량(에너지)의 총량”이다. “자연 물질이 변형되어, 다시 원래의 상태로 환원될 수 없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엔트로피의 카오스 속에서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이는 패트리샤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소설 속 상황과 연결된다. 그러나 시는 ‘하고 싶은 말’을 하라, ‘증언’하라, ‘계속’하라고 독자들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패트리샤가 ‘선택권’이 없음에도 ‘선택’하려고 말을 맺는 소설의 결말과 이어진다.
선택할 수 없더라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증언할 수 있다.
* 패트리샤의 애칭.
** 조 월튼 저, 이주혜 역, 「「나의 진짜 아이들」」, 아작, 2017.
*** 네이버 두산백과네이버 두산백과, “엔트로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25759&cid=40942&categoryId=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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