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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다는 것은―미리암 프레슬러의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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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숭아 댓글 0건 작성일 17-04-0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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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다는 것은―미리암 프레슬러의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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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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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의 주인공 '할링카'는?친모에게 학대를 받은 뒤, 보육원에 들어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일견 '할링카'의 성장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자세히 톺아보면?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퀴어로서 사랑에 빠져드는 그녀가?'할링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퀴어라는 자각은 없지만 말이다. 이 작품이 1995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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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링카'는 잠이 들기 전,?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보육원 생활을 곱씹으면서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한 명씩 한 명씩 평한다. '로우 이모'가 예전에 꺼냈던 친구라는 단어 때문이다. 그 중에서 '할링카'의 관심을 끄는 아이는 '레나테'와 '로즈마리'다. 먼저 '로즈마리'에 대해서 '할링카'는 이렇게 '내가 보기에는 그 애가 우리 기숙사에서 제일 예쁘(p.45)'며, '예쁘기 때문에 가끔은 그 애가 몹시 좋을 때도 있(p.47)'다고 말한다. 그리고 '로즈마리'와 '할링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범상치 않은(?) 행동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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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 애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내 침대 옆에 불쑥 나타나 서 있곤 했다. 눈으로 보기 전에 느낌이 먼저 온다.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내 침대에 앉아, 이불을 옆으로 밀치고 내 옆에 눕는다. (…) 그 애가 배를 깔고 누운 다음 잠옷을 목까지 끌어올리면, 나는 그 애의 등을 쓰다듬어 준다. 손바닥 전체로 하는 것이 아닝라 손가락 끝으로만 한다. 아주 부드럽고 약하게. 그렇게 해야 그 애가 좋아한다.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손가락 밑에서 그 애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내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애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그 애의 살결은 부드럽고 따스하고 감촉이 좋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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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즈마리'는 이 일 외에는?'할링카'를 특별하게?대하는 것 같지 않다. '로즈마리'는 '할링카'를 '끌어안을 때도 있(p.46)'지만 '다음 날 아침에 그 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p.47)'하며, 또 '엘리자벳이 집시를 놀리는 농담을 할 때에도 그 애는 아이들과 함께 웃(p.47)'곤 한다. 또 '할링카'는 '로즈마리'가 '등을 쓸어 주는 일도 결코 없다(p.47)'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링카'는 '로즈마리'의 목소리가 들리면 반나절 동안이나 몸을 떤다. 그녀가 낮 동안에는 '할링카'가 투명 인간인 마냥 쳐다보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할링카'는 이런 '로즈마리'에 대해서 장장 3페이지를 할애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로즈마리'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그녀가 자기 대신 마치?'뚱뚱한 암소 같은(p.48)' '듀로'라는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을 두고 '하지만 상관 없는 일(p.48)'이라고 말한다. 로즈마리를 향해 있던 양가적인 애정이, 이미?다른 아이에게로 옮겨갔기 때문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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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바로 '레나테'다. 보육원에서 가장 어리고 잠들기 전마다 우는 아이지만 '할링카'는 '레나테'를 볼 때마다 오르키드 난초를 생각한다. 오르키드 난초는 '할링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절정체다. '책에서만 읽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p.34)'르는 꽃이지만, '이름이 예쁘니 아주 아름다운 꽃일 것 같다(p.34)'고 '할링카'는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그 오르키드 난초가, '레나테'와 연관되어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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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테하고는 "지금 몇 시야?"라고 묻던가, "오늘 점심에 뭐 나왔어?"라든가, "세탁실에 전구가 하나 나갔어."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말만 하지만, 왠지 친밀감이 드는 아이다. 레나테가 이 곳에 들어온 이후부터 나는 오르키드 생각을 더 자주 한다. 아마도 그 애의 모든 것이 갈색이고, 연약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애는 머리카락이 연한 갈색이고, 눈도 연한 갈색이며, 피부도 연한 갈색이다. 오르키드는 보라색, 양홍색, 진홍색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 생각이 자주 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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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할링카'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때문에 '할링카'는 '레나테'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며 '로즈마리' 이야기를 하고 '레나테가 내 친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p.43)'라고 말하지만, 이후 '물론 그 애를 내 동생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p.44)'는 말을 꺼낸다.??이 문장은 사실 '할링카'가 어떤 아이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문장이다. 이후 '할링카'의 회상에서 잠깐 등장하는 '삐삐'란 아이에 대해서도 '할링카'는 이렇게 설명하는데,?그 부분을 보면 '삐삐' 역시 '할링카'와 어느 정도 애착을 형성시킨 관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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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할링카'는 '레나테'와 가까워진다. '할링카'는 '어머니 쉼터'를 조성하기 위한?기금을 모금하면서 얻어온 초콜릿을, 자신의 모금함에서 몰래 돈을 빼낸 뒤 '레나테'에게 줄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귀여운 변명(?)을 덧붙인다. '나에 대한 처벌로써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지 않도록 공평하게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하고 싶었다(p.88)'고. '할링카'는 '레나테'에게 초콜릿을 줄 생각을 하니 '아주 괜찮은 결론 같아서 갑자기 모든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p.88)'고 말한다. 이후 '할링카'는 다소 우악스럽게 잠을 자고 있던 '레나테'의 입으로 초콜릿을 밀어 넣고, 이에 놀란 '레나테'는 일어나서 '할링카'를 바라본다. 이때 '할링카'는 분명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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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테가 내 동생이었다면, 그 애를 정말 귀여워했을 것 같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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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할링카'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자신의 비밀 장소를 '레나테'에게 공개한다. 그곳에서 둘은 서로에게 초콜릿을 먹여준다. 촛불이 일렁거려 서로의 얼굴이 계속 변하는 바로 그곳에서, '할링카'와 '레나테'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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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내가 있었던 보육원에 어린애가 하나 있었는데…"

내가 말을 이었다.

"그 애도 너와 똑같이 잤어. 이불 귀퉁이를 얼굴에 대고 잤지. 이름이 삐삐야. 난 그 애가 내 동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무척 많이 했었어."

"이상하다. 난 내게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언니가 있었으면 하고 늘 생각했었지. 모든 것을 도와 주고, 잘 아는 큰언니 같은 사람 말이야."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우리 사이에 갑자기 긴장감이 감돌았다. 촛불이 흔들렸고, 밖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난 집에 친구가 한 명 있어."

레나테가 천천히 입을 떼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우정을 증명하기 위해 최근에 겪었던 일 가운데 가장 안 좋았던 일을 서로에게 말해 주었지. 스스로 창피해하는 그런 일 말이야."

나는 그 애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안 좋은 일을 말한 적이 없었다. 로우 이모에게조차. 이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모에게는 더욱 더 말할 수 없었다.

"그게 진심이니?"

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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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부끄러운 것을 말하고 나면, 그 친구에게 못되게 굴거나 친구를 배신할 수 없게 돼. 만약 그런 짓을 하면 상대방도 배신할 수 있을 테니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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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비밀을 번갈아 공유하는 이 의식을 통해 '할링카'와 '레나테'는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그날 밤 '레나테'는 '할링카'의 침대가에 불쑥 나타나 그녀에게 키스하며 "잘 자"라는 말을 남긴다. 이 일 때문에?다음날 둘은 서로 어색하게 마주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엘리자벳'이 '레나테'의 어머니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들먹이자 '할링카'는 '레나테'를 위해 난생 처음으로 주먹을 휘둘러 '엘리자벳'과 맞서 싸운다. 그리고 '레나테'는 싸움의 원인을 묻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용감하게 밝힌다.?사랑이 이 둘을 성장시킨 것이다.?'할링카'는 이 사건 이후로 '레나테'를 '레나'로 부르게 되는데, '레나'는 '레나테'의 어머니가 부르는 애칭이다. 그리고 둘은 손도 잡고 키스도 한다. '레나테'의 키스에 대해 '할링카'는 '뽀뽀를 하고 싶으면 아무 때나 하는 아주 이상한 아이(p.153)'라고 하지만, ?'이제는 나도 그런 것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p.153)'고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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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링카'에게 있어 '레나테', 아니 '레나'는 아주 소중한 사람이 된다. '할링카'는 기금 모금 활동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모금하여 상을 받게 되나, 그 상이 낯선 사람과의 소풍이라는 걸 알고 나서 매우 실망한다. 그러나 '레나'의 설득과??'따지고 보면 나에게만 상관 있는 단 하나의 내 진짜 상품은 이미 갖고 있는 셈(p.165)'이라는 생각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후반부에는 '로즈마리'에 대해 갖고 있던 감정이 '레나'로 옮겨간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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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는 칼라에 수가 놓여진 예쁜 파란색 옷과 치마를 가지런히 접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 애가 할 일이 제일 많았다. 그 애의 옷장 안은 언제나 토끼들이 휘젓고 다닌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엘리자벳과 옷장을 같이 썼지만, 도리스가 집으로 가는 바람에 옷장이 하나 비게 되자, 엘리자벳이 로즈마리에게 혼자 쓰라고 했다. 엘리자벳은 그 애가 절대로 다른 사람과 옷장을 나누어 쓸 수 없는 아이라고 말했고,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로즈마리는 꽤 지저분한 아이다.

레나는 안 그렇다. 그 애의 옷들은 옷장 속에 언제나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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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레나'는 더 이상 잠들기 전에 울지 않는다. 또한 '레나'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할링카'는 자신이 '방금 전에 행복한테 의자를 내주었던 것 같다(p.210)'고 말한다. 사랑을 통해 소녀들은 성장하고, 행복해졌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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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언젠가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에 대해서 오프라인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이 책이 퀴어문학이라는 이야기를?했고, 그 말을 들은?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이토록 명명백백한데 왜 '잘 모르겠다'라는 대답이 나왔는지?내가 더 어리둥절해졌다. 어쩌면 '퀴어의 존재 지우기'로 생겨난?편견이 그들의 눈을 가리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동성 간에 오가는 감정은 절대 애정이 아닐 거라는 편견 혹은?그들의 애정은 뭔가 다를 거라는 편견이 많은 퀴어문학의 존재를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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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리암 프레슬리,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사계절, 2006, p.45~46.

2)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은 완전히 청산되지 않아, '할링카'는 '로즈마리'와 '듀로'를 두고 '두 사람 모두 꼴도 보기 싫다(p.80)'고 말한다.

3) 위의 책, p.42~43.

4) 위의 책, p.81,91~93.

5) 위의 책, p.109.

6) 위의 책, p.111~112.

7) 위의 책, p.182.

8) 이 장면 이후 '레나'는 '할링카'가 아끼는 빨간 블라우스를 내일 소풍갈 때 입고 가라며 빨고 다림질까지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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