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스스로를 포옹해본 적이 있습니까? ― 천운영,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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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칠월 댓글 0건 작성일 15-09-25 01:1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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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작 <포옹>은 소설집 <바늘>에 가장 마지막으로 실린 작품이다.
?일종의 고해로 시작한다. 나는 이 작품에 어떤 퀴어적 시선을 적용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으며, 완독 후 좋은 작품이었다는 느낌 이상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대놓고 말하자면 이 처연한 이야기에 주인공들이 여성이다, 라는 것 외에 퀴어로써 감히 어떤 모호한 해석을 들이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너무 컸다는 얘기다. 나는 깔끔하게 포기했고, 작품을 부러진 자아의 이야기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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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 싶지 않음과 돌아가지 못함?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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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의 시작을 여는 인경은 ‘맹신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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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귀가가 늦어지거나 셔츠에 립스틱 자국이 발견된다고 해서 오해를 하거나 그릇된 상상으로 피로에 지친 남편을 닦달하는 아내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너그럽고 사려 깊은 아내가 될 것이다. (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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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은 자신이 원하는, 원해야만 하는, 원하므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미래를 추측하고 확언한다. 마치 스스로를 완벽하게 도망치도록 도와주려는 듯이. 인경은 말한다. “그래야만 했다”라고.
?반면 인경의 뒤를 이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나’는 ‘외면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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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아무 걱정 할 것 없어, 이젠 너와 나 둘뿐이다. 나 청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너를 청도로 돌려보내지 않으마. 두 마리 소가 내 얼굴과 가슴을 미친 듯이 핥아댔다. 그리고 어둠의 소가 내 몸을 뚫고 들어왔다. 나는 선선히 다리를 벌렸다. 눈을 뜨자 내 몸에 올라탔던 검은 소는 작고 작아져 쥐새끼처럼 날렵하게 달아났다. 이불에서 독한 향수냄새가 났다. 그리고 다음날 머리맡에서는 십만원권 다섯 장이 든 흰 봉투가 발견되었다. (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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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착같이 도망치고 싶다. 깨부수고 나가고 싶다. 하지만 체념하고 싶다. 그래서 말한다. “그래야만 했다”라고.
?결국 인경도 ‘나’도 현실을 자신에게 맞춰 비틀어버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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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인경은 특이할 만큼 정서적인 유대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굳이 어떤 공감도 하지 않고 동정에 갇히지도 않는다. 둘이 함께인 것이 지나치게 낯설기까지 하다.
?그런 그들이 최후의 포옹을 한 까닭을, 나는 “그래야만 했다”에서 찾았다. 깊어져만 가는, 나 자신과 현실 사이의 어마어마한 괴리를 거울에 비춰보듯 서로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괴리와 괴리가 겹쳐지는 순간 그들은 하나가 된다. 어떤 문장의 중의성처럼, 그들은 같은 말을 두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오다가 조각난 뜻을 만나 이윽고 하나로 합쳐진다.
?그렇게 그들은 인경이 바랐듯 진실로 죽는다. 그리고 ‘나’가 원했듯 말끔하게 기억을 지운 채 바닷속 푸른 섬-해방에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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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결단코 서로를 이해하고 품으려 들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감정은 차가울 만큼 절제된 채, 마치 거세의 흔적처럼 문득문득 드러날 뿐이었다.
?그것까지?일종의 사랑이다.?애잔하고 척박하다고 해도.
?나는 그들이 다른 자신을 만난 후에야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고 자신에 대한 최후의 연민이며, 동시에 상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되어...... 서로를 포옹하는, 합일하는?절정을 맞는다.
?인경의 굽은 등과 ‘나’의 손길, 그리고 다시 그 손을 거부하지 않는 인경.
?그것은 지친 영혼의 아픈 파편들이 알맞게 만났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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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포옹이?있다.
?나는 깊은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나를 안아 달랬다. 나를 온전히 안을 수 있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나 자신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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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그녀가 내게 손을 내민다. 내가 그녀의 손을 잡자 시간이 멈춘 듯 사방이 고요해진다. 파도소리도 엔진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집어등 불빛만이 환하게 빛난다. 발끝이 살짝 들린다. 나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녀와 나는 손을 마주 쥐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불빛을 돌며 춤을 춘다. (2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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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월
시인
늦은 밤이 여물도록 눈을 뜨지 못했다
해가 뜨면 네가 내게 누구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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