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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 -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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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글토리 댓글 0건 작성일 15-08-25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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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1,2≫, 웅진씽크빅 펭귄 클래식,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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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신이 이마에 표시를 한 그런 사람의 하나다. 카인처럼 오점과 표시를 가진 존재다. 네가 내게 온다면, 세상은 널 혐오할 거다. 넌 박해받을 것이고, 널 불결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죽음을 넘어서까지 진심으로 사랑하더라도 세상은 우리를 불결하다고 할 것이다.????? ≪고독의 우물2≫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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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카인의 후예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혹은 날 때부터 자기 이마에 새겨진 카인의 낙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래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은 그런 낙인의 고통을 한껏 짊어진 인물, 스티븐 고든에 대한 이야기다.

아름다운 아내와 호감 가는 사내인 남편, 이상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이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 무척이나 고대했던 아들은 아니었지만 그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불리던 '스티븐'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갖는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스티븐은 어깨가 넓고 엉덩이는 좁으며 강인한 턱을 가진 아이로 자라는데 다리를 벌려 말에 타고 펜싱을 배우며 자신이 다른 여자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항상 남자가 되고 싶어 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 타인이 선이라고 규정하는 생활양식과 전혀 다른 것을 원하는 자신의 존재에 비애를 느끼면서도 그녀는 '온전한 스스로'의 모습을 포기할 수 없었고 격렬한 사랑의 감정을 거부할 수 없었다. 완전한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살아갈 수 없었던 스티븐은 자기 정체성에 죄악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카인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시선은 낙인이 되어 전쟁으로 생긴 뺨의 상처만큼이나 그녀의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마음껏 사랑할 자격조차 박탈당한 인물의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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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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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핵심 소재이자 이 책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되는(것 같은) 단어 ‘여성 동성애'

나는 이 설명을 전면적으로 까진 아니어도 일단 부정하고 싶다.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라는 것은 ≪고독의 우물≫이 출간된 1920년대에나 적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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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가 여자를 좋아함 = 이성애자

여자가 여자답지 못하거나 여자를 좋아함, 남자가 남자답지 못하거나 남자를 좋아함 = 동성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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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이 지극히 단순하고 부정확한 구분은 성소수자의 개념이 세분화된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등의 단어가 편리하게도 이 시대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편리함을 한껏 이용해 명확하게 짚어보자면 스티븐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트랜스젠더인 셈이다. 그녀 혹은 그는 언제나 남성이 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육체가 가지지 못한 남성성을 흠모하였으며 스스로의 존재를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연인에게는 여성 대 여성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을 남성으로 상정하고 상대와의 관계를 전통적인 남녀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금서가 될 정도로 파문을 일으켰던 이 작품 때문에 재판에 회부된 래드클리프는 이 책이 동성애가 아니라 이성애 윤리를 표방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성적지향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정체성의 문제를 화두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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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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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당시 금서였다며?' 라고 흥미진진하게 책을 펴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전혀 야하지도 않고 폭력적이지도 않으며 심지어 정치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가끔가다 지나치게 계몽적인 단락들이 나오긴 해도) ?영화를 보는 듯 세심한 배경 표현, 75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몰입도, 금세 인물에게 감정이입 되는 밀도 있는 심리묘사가 들어차 있을 뿐이다. 단지 영문학에서 최초로 여성 동성애(혹은 그와 비슷한 것)를 전면적으로 다루었고 명성 있는 작가의 작품인데다가 '성도착증'이 '전염‘될 만큼 잘 썼다는 이유로 금서 처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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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작중인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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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우물≫을 읽다보면 자꾸 책날개를 들춰보고 싶을 만큼 작가인 래드클리프 홀이 연상된다. 작가, 짧은 머리에 넥타이, 부유한 집안 출신, 거금의 상속, 애연가, 동성의 연인. 이렇게 주인공 스티븐과 작가인 홀의 공통점이 너무 많아서 스티븐을 통해 작가를 엿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소설이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슬쩍슬쩍 작가와 비교하며 즐거운 오류를 범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작가 자신을 모델로 쓴 자전적 소설이라면 조금 슬플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향한 스티븐의 절규, 거부되는 사랑, 부서지는 우정.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책을 읽고 있는 것뿐인데도 무척이나 괴로웠다. 책을 읽는 내내 어린 아이처럼 해피엔딩을 꿈꾸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주인공이 진정으로 행복해졌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마지막엔 슬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몇 번이나 마지막 장을 들춰보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읽어냈고 결국 예감은 적중했다. 그렇게 홀은 내 얼굴에 황량한 바람을 뿌려놓고 책을 끝맺었다.

책을 덮고 나서 스페인의 곡조를 상상하며 가사를 따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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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야! 그대를 보기 전에 내 마음은 평화로웠다네

그러나 이제 난 고통스럽다오. 내가 그대를 보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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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글토리

책, 영화, 드라마,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퀴어 작품들을 광적으로 소비하는 탐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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