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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너에게도 언제나 ‘사소한 문제들’은 있어왔다 ― 안보윤, <사소한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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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칠월 댓글 2건 작성일 15-07-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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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붙은 꼬리표는 어떤 방법으로도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 입학식 때 간질발작을 일으켰던 아이는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게거품으로 불리고 있다. 문방구에서 샤프를 훔치다 걸린 아이는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의심 섞인 눈초리를 받았다. 체육시간에 큰 소리로 욕을 해 벌을 받았던 아이도 수행평가 때마다 최저 점수를 경신했다. 사람들은 다른 이의 추한 면면을 결코 잊지 않았다. 쉽게 잊지 않도록 이름을 새기고 꼬리표를 붙였다.

(안보윤, 사소한 문제들 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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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문제들>은 폭력의 중심에 내밀하게 파고들어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리고는 가장 외부적-관객적인 시선이 되어 제목을 말한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이야기도 타자화를 거친 후에는 극도로 ‘사소해’져 버린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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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문제들>은 부정할 수 없이 잔인하다.

?뒷표지에 쓰인 문장,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말이 어째서 온전히 희망일 수 없는지 소설 속 약자들은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알고 있다. 그러나 독자는 객관의 함정에 빠진다. 삶은 계속될 테니, ‘사소한 문제들’을 겪고도 어쨌든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결코 어렵지 않다.

?이것은, 소설을 읽는 순간마다 다가오는 슬픔이 결코 독자의 가슴에 흉터를 새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많은 경우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 본인은 ‘슈렉’도 ‘호모새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가 되어버린 약자들은 더 호소할 수밖에 없다. 아영처럼, 두식처럼, 살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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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은 단순히 산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너무 어렸지만 ‘살아남아야’ 했고, ‘살아남는다’와 ‘행복’이 절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지독하게 알아야만 했다. 두식은 그저 살아온 사람이었다. 비통과 만행들이 그를 갈기갈기 찢은 후에야 그는 조금더, ‘살아남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영은 살아 있음을 향해 일그러진 다리를 뻗어나가고, 두식은 불타버린 책방과 함께 모든 과거를 종결짓는다.

?이것이 소설의 서사이다. 이처럼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뚜렷한 현실성을 가진다. 성 착취, 혐오범죄, 도박빚, 큰 제목으로 읽기만 해도 정말 ‘사소할’ 만큼 팽배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 수많은 사소함에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수많은 절망들 속에서 모두가 자신의 절망만을 끌어안기 급급해, 타인의 절망에는 차갑도록 덤덤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어차피 세상이 절망 투성이라서, 끔찍한 사건들에 무감각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현실적 사건에 비해서 자세한 부분부분이 몹시 극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은 얼핏 다행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이 ‘소설’임을 잊지 않게끔, 두식의 옛 직장 동료라는 노골적 조언자와 성현의 아내처럼 사건 절정의 발화점이 되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또는 인터넷 게임 속에서 엄마에게 말을 거는 아영 등의 면면이 있었다. 이런 요소들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탱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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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소설은 영화 <도희야>를 떠올리게 했다. 두 작품 사이의 가장 큰 공통분모는 약자와 또다른 약자가 만나 각자의 비통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일종의 ‘케미스트리’다.

?약자는 약자를 알아본다. 알아보고 더 쓸쓸해진다. 알아보았기 때문에 더 강해질 수도 있다. 약자는 약자를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고, 동일시하기도 하며, 애틋하게 증오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이윽고 약자로써의 영혼이 성숙되면 약자는 그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구원한다. 혹은 다른 약자와의 연대를 통해 ‘약자들’을 방어하며, 부나방이 아닌 짐승이 되어 생존을 위한 본격적 투쟁으로 뛰어든다.

?<도희야>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주인공 영남이 도희를 태운 차를 몰아 빗속을 지나는 장면은 그들이 한 마리의 짐승처럼 세상 가운데로 파고드는 느낌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사소한 문제들>에서 두식과 아영은 각자의 자기 구원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두 작품이 내밀하게 이어지는 까닭은, 구원과 투쟁이 결과적으로 같은 맥락에 이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최종 맥락이 SURVIVE살아남다에서 LIVE살아 있다로 나아가는 지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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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은 후 희망이라는 말조차 진짜 희망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되새겼다. 하지만 절망이라는 단어는 한없이 절망의 본연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삶은 그래도 계속된다.”라는 문장이 앞의 두 문장을 포함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에게서 본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이 더는 반복되지 않는 미래, 그들이 ‘사소한 문제들’로 취급받지 않는 미래, 그때까지 함께 살아남아서,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희망답지 않은 희망과 선명하게 번득이는 절망, 삶은 그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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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월

시인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못하는 것 사이에 7월은 온다

밤바람을 닮은 여자의 손에 기대었다

댓글목록

김칠월님의 댓글

김칠월 작성일

감사합니다 :)*

실버버드님의 댓글

실버버드 작성일

읽어봐야 겠네요. 리뷰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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