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쓰기, 정체성 살기 - 강영숙, 『라이팅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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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브 댓글 1건 작성일 16-01-05 01:15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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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라이팅 클럽』, 자음과 모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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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쓰기, 정체성 살기 ? 강영숙, 『라이팅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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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그의 유명한 에세이 「작가의 죽음」에서, 현대 작가는 작품 바깥에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작품과 동시에 태어난다”고 이야기한다(1468) [1]. 그렇다면, 성 정체성은 어떨까? 우리는 스스로의 성 정체성으로부터 분리되어 그것을 객관화하고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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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은 주인공 영인과 글쓰기 행위의 관계를 고찰하는 작품이다.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연애편지부터, 복수심에 가득 차 쏟아내는 글, 상상력을 동원한 습작 소설 등을 써 내려가며 주인공은 “글을 쓰리라! 글을 쓰리라! 죽어도 쓰리라.”고 굳건하게 다짐한다 (56)[2].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녀의 글쓰기는 항상 실패로 끝난다. 어린 시절, 선망하는 J작가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원고는 “온통 좍좍 그은 붉은 줄투성이”가 되어 돌아오고(94), 어머니인 김 작가는 그녀의 글을 보고 “넌 어쩌면 이렇게 글을 재미없게 쓰니? 넌 정말 재주가 없어”라는 혹평을 던진다(181). 직장이 생긴 뒤 글을 쓰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결국 “생활과 글쓰기는 절대로 병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그녀는(151) 끝내 “소설은 쓰지 못”하게 된다(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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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인의 삶은 『라이팅 클럽』이라는 흥미로운 소설이 되어있다. 비록 책상에 앉아 글을 쓰지 않지만, 삶을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하나의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다. 바르트의 말처럼 영인은 작품 바깥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대신에, 자신의 삶이라는 작품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영인과 글쓰기의 관계는 성정체성의 형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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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인의 삶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자신을 거절하는 남자들을 견디다 못해 욕망의 대상을 여성으로 치환한 뒤, 면도칼을 씹는다는 소문의 여고생 R에게 고백하고, 키가 작고 공주 같은 K와 첫 키스를 나눈다. 그 후 남성인 S선생님을 짝사랑했다가, 『강철군화』를 읽는 남자 B에게 반해 동거를 하고, 선을 본 남자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그와 헤어져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독자들은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키스 이외에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 영인은 양성애자일까? 아니면 치기 어린 마음으로 여자를 잠깐 만나 본 이성애자일까? 영인과 교제하다가 남자와 결혼한 K는 동성애자일까? 성관계를 통해 별다른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영인은 혹시 무성애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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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인은 그 무엇도 아니다. 영인은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대신에,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녀의 삶이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이었던 것처럼, 그녀가 겪어온 많은 만남도 영인이라는 한 인물을 구성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무엇‘이다’라는 개념이 바깥에서 올 때에 그것은 언제나 폭력을 동반한다. 한 사람의 젠더 혹은 성적 취향을 하나로 규정지으려는 움직임은 언제나 모호한 것, 그리고 변화하는 것에 대한 차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이란 무엇‘이다’라고 규정하는 사회 체계 속에 태어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이 무엇‘이다’라는 규칙 속에서 스스로 부딪히고, 자문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정의함으로써 서서히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개인은 삶의 바깥에서 이미 완성된 성 정체성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물음표들 속에서 그 삶을 직접 살아가며 성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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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란 언제나 미완성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바르트의 통찰, 그리고 소설을 쓰지 않는 주인공의 삶이 고스란히 소설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강영숙의 통찰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 땅 위의 많은 성 소수자들의 삶과 닮아있다. 끝나지 않는 과정의 연속이었던 영인의 삶이 결국 하나의 소설이 되고, 그녀가 지금껏 만나며 욕망해온 많은 사람들로 인해 개인의 서사가 완성되는 것처럼, 그것은 이미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질문하고 의심하라. ‘이다’라는 명제를 거부하고 내가 무엇 ‘일 것’인지 고민하며 끝없이 움직여라.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누구를 욕망하는지, 나는 무엇인지, 묻고, 답하고, 뒤집고, 반박하고, 살아가라.?그리고 많은 질문 속을 헤매며 구성된 정체성이 영인의 경우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이 되어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1] Roland Barthes, “The Death of the Author,” The Norton Anthology of Theory and Criticism, ed. Vincent B. Leitch et al., W. W. Norton: London, 2001. 1466-70. 필자 번역. 이하는 페이지 수만 표기.
[2] 강영숙, 『라이팅 클럽』, 자음과 모음: 서울, 2010. 이하는 페이지 수만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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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브 (zcyclamen@hotmail.com)
바이로맨틱 그레이-에이섹슈얼 시스젠더. 애견인 & 문학도. 안으로부터의 힘을 꿈꿉니다.
적당히 읽고, 많이 생각하고, 조금 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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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ㄹ님의 댓글
ㅇㄹ 작성일그 무엇도 아니다, 라는 문장이 정말 공감갑니다. 책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리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