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들을 '가짜'로 만드는가? - 강지영, 「그녀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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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브 댓글 0건 작성일 15-12-01 00:21본문
강지영, 「그녀의 거짓말」, 『굿바이 파라다이스』, 씨네북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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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을 ‘가짜’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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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거짓말」은 주인공 여자의 신체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손목에 솟아오른 복사뼈를 따라 올라가 보면 당신의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에 이른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손톱이 어여쁘다”와 같은 서술(9)[1]은 여느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때 여자는 “말이 없다”(9). 말을 할 수 없다. 이미 누군가의 손에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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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MTF 트렌스젠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전환 수술로 인해 빚더미에 앉게 되고 매일을 수금업자에게 쫓기는 주인공의 삶도 눈길을 끌지만, 그보다 본고는 작품을 관통하는 커다란 키워드 중 하나인 ‘가짜’ 담론에 주목하고자 한다. 작품 속에는 두 명의 가짜가 등장하는데, 바로 이혼으로 인해 서로에게 ‘가짜 남편’과 ‘가짜 아내’가 된 남자와 여자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짜들’이 걷는 행보는 서로 평행을 이루는 듯 하면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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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두 ‘가짜들’은 공통적으로 일종의 죽음을 경험한다. 의도치 않게 살충제를 넣은 콜라를 마시게 된 ‘가짜 남편’은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는 생각에 도망친 ‘가짜 아내’는 그날 밤 잠자리를 같이 한 남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의 기회는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남편은 무덤 문을 열고 나오는 나사로처럼 되살아나는 반면, 죽음을 물리치지 못한 아내는 ‘가짜로서의 속성’을 더욱 굳혀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사체를 닦던 남편이 아내의 “가짜 성기”(35)를 발견하는 순간, 여자는 “칼자국과 바늘자국이 선명”한 “가짜 음순과 가짜 질”을 지닌, “이제는 가짜가 되어버린 나의 아내”로 완전히 낙인 찍힌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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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물어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녀를 가짜로 만드는가? 그녀는 왜 “화장실에 갈 때마다 […] 징그러운 남의 살”을 보며 울음을 터트려야 했을까(33-4)? 아내에게 ‘가짜’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은 수술로 만들어진 그녀의 신체 때문이다. 즉, 아내의 정체성은 그녀의 몸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성격, 직업, 배경, 인간관계 등 한 개인을 구성하는 다른 모든 요소들은 사라지고, 이때의 아내는 몸뚱이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된다. 여느 카니발리즘(cannibalism) 영화에서 보이듯, “지난가을 담가 놓은 포도주 병을 비우고 […] 옮”겨 담을 수 있는 고깃덩어리에 다름 아니게 되는 것이다(35). 결국 그녀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을 생물학적 신체에 구속하려는 사회의 규범적 질서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이미 우리의 ‘몸’역시 “그 자체로 하나의 구성물”(100)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2] 그러나 여전히 ‘진짜 몸’ 이라는 본질적 개념을 상정하고 그것에서 벗어난 모든 몸을 타자화하려는 태도, 그리고 신체를 통해 개인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인식이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가짜’를 만들어내고 그들을 살해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을 살해한 남자는, 그녀의 숨통을 끊어놓기 전 “너?”라고 묻는다(28). 그 짧은 한 마디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타자화와 경멸의 뉘앙스는 우리 주변의 가짜들이 매일 같이 견뎌야 하는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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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거짓말」의 주인공은 죽은 뒤에도 글의 화자로서 계속해서 등장한다. 이때 상황을 바라보며 서술하는 여자의 영혼(혹은 원형 또는 본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자신이 꿈꾸던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태어났을 때처럼 남성의 몸을 지니고 있을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수술자국이 선명한 몸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세 가지 형상 중 어느 것이 ‘진짜’인가? 이와 같은 서사구조를 통해 이 소설은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자신의 영혼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낼 것인가? 과연 그 그림은 ‘진짜’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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