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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여장남자 시코쿠> 의 겉을 할짝거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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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글토리 댓글 0건 작성일 15-10-27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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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여장남자 시코쿠》, 문학과 지성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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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문학은 정말이지 피곤한 연인이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몰라?” 라며 팔짱끼고 토라진 여자 친구 같기도 하고 “어때? 내 말이 맞지?” 어깨를 으쓱하고 승리의 눈웃음을 짓는 남자 친구 같기도 하다. 상대의 눈으로 세상을 함께 읽어가는 즐거움이 시의 묘미라고 생각하는 나는 ‘미래파’가 등장하자 시집을 놓아버렸다. 어느새 시는 시인만의 것이 되었고 데이지 공주를 되찾기 위한 마리오의 여정처럼 시집 안에는 한 편, 한 편, 독자를 위한 스테이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장남자 시코쿠>라는 제목에 솔깃해 책을 집어든 독자를, 황병승은 자기만의 메타포로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렇다고 시인 자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상징과 언어의 결합을 해석하기 위해 프로이트와 라캉을 끌어들이며 글을 쓰는 건 참으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냥 퀴어를 퀴어하게 읽은 얘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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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시코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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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장남자 시코쿠>와 <시코쿠>, <시코쿠 만자이(漫才)>에 등장하는 ‘시코쿠’. 여장남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몇몇 사람들은 우선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이다. 드랙퀸인가, 트랜스젠더인걸까, 아니면 단순히 은밀한 취미…? 우리가 머리 싸매며 고민할 필요 없이 시코쿠는 ‘열두 살, 그때 이미 나는 남성을 찢고 나온 위대한 여성[1]’이라고 자신을 칭한다. 그녀가 ‘미래를 점치기 위해 쥐의 습성을 지닌 또래의 사내아이들에게 날마다 보내던 연애편지들’의 대답은 ‘똥’으로 돌아왔지만 도마뱀은 쓰고 ‘찢고 또 쓴다’. 찢고 쓰고 또 찢는 행위는 어쩐지 중독적인 슬픔의 냄새가 나는데, 그런 자신에게 비참함을 느꼈는지 비참함을 느끼게 한 세계에 화가 나는 건지 그녀는 ‘나에게도 자궁이 있다 그게 잘못인가’ 라고 역설한다. 무심코 응, 잘못이 아니지 중얼거리며 도마뱀의 꼬리가 되어 편지를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드는 외침이다. 그러나 남자이며 여자이고, 여자이며 남자인 시코쿠를 불온하게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감추거나 혹은 드러내거나 6은 9도 되어야 했으므로[2]’ ‘외로운 신사숙녀 시코쿠’는 치마를 갈가리 찢는다.

? 시코쿠는 영화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 2000)》의 헤드윅과 닮아있다. 커다란 금발 가발을 쓰고 XX염색체보다 더 요염하고 퇴폐적이게 노래하는 헤드윅은 동과 서, 속박과 자유, 남자와 여자, 정상과 밑바닥의 중간에 서있는 장벽이다.[3] 시코쿠 또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라고 규정짓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중간자적 존재다. 시 안에서 그녀는 벽이며 다리[橋梁]이자 모든 이형(異形)을 대표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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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은 자신을 니거(nigger)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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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시코쿠를 선봉으로 앞세운 황병승 시의 퀴어적 정체성은 어쩌면 시집 해설에 나온 말 같이 소재의 특이성보다 향락을 강요하는 초자아의 명령을 수용하지 않는 경우 초래되는 다른 형태의 주체성의 현현[4]일지도 모른다. 머리 아픈 이유야 어찌됐건 시적 화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세상을 향해 취하는 포즈는 굉장히 퀴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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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짜는 뒤통순가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중략)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커밍아웃>[5]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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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소문과 더러운 시선, 게이가 항문으로 치환되어 읽히는 부조리함에 오히려 입술을 뜯어버리고 항문으로 말할까 하는 화자의 태도가 도발적이다. 흑인이 자신을 니거(nigger)라고 부르는 것처럼 퀴어는 자신을 퀴어(queer)라고 부른다. 욕설의 전략적인 사용은 황당하지만 뼈있는 반어다. 물론 ‘소문이 싫어 고양이 수염을 잠깐 달[6]’기도 있고 ‘뒤뜰의 작은 창고에서 처음으로 코밑의 솜털을 밀고 누이의 젖은 치마를 훔쳐 입[7]’기도 하지만 때론 ’순돈육 자지를 달고 불 속을 걸[8]‘을 때도 있다. 불편함을 건드리는 것, 불편함과 마주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행위가 시대에 대한 일탈과 반항이며 황병승의 목적이라면, 나도 그를 마주보며 씨익 웃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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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글토리

책, 영화, 드라마,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퀴어 작품들을 광적으로 소비하는 탐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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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병승, <여장남자 시코쿠>, 《여장남자 시코쿠》, 문학과 지성사, 2012. pp. 52-55.

[2] 황병승, 위의 책, <시코쿠> pp. 64-67.

[3] 헤드윅, <Tear me down> 중.

[4] 황병승, 앞의 책, p. 187.

[5] 황병승, 위의 책, p. 18

[6] 황병승, 위의 책, <핑크 트라이앵글배(盃) 소년부 체스 경기 입문(入門)>?p. 102.

[7] 황병승, 위의 책, <너무 작은 처녀들> p. 159.

[8] 황병승, 위의 책, <에로틱파괴어린빌리지의 겨울> p.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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