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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과 끝, 윤이형의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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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숙_ 댓글 0건 작성일 15-09-1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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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시작과 끝, 윤이형의 <루카>

 문학동네, 2014

 

 필자는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종교에 퀴어가 얽혀 있다면 더 그렇다. 일단 좀 질척하고, 또 좀 신파 냄새가 나고, 또… 어쨌거나 내 취향은 아닐 거야. 그런 선입견이 있다. 종교와 퀴어라니. 퀴어 퍼레이드를 막아섰던 일부 종교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필자는 종교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건 편견이고, 혐오이며, 사실은 매우 피곤한 요소다. 혐오하는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스트레스는 때때로 위벽을 긁는다. 때문에 윤이형의 <루카>를, 그 첫 장을 들여다보며, 필자의 안에서는 두 개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에는 좀 편견 없이 봐. 좋은 소설이랬어.

 야, 이걸 보면 넌 분명히 심경이 복잡해지고 피곤해질 거야.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두 목소리 모두 따를 수 있게 되었다. <루카>에는 종교인인 게이가 나오고, 그 둘의 사랑 얘기가 나오고, 헤어짐이 나오고, 헤어진 이후 '나'를 찾아온 전 애인의 아버지가 나오지만, 놀랍게도 이 소설은 필자의 마음에 딱 들어 맞았다. 언젠가 잃어버리고는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작은 퍼즐 조각 하나를 찾아 끼워 맞춘 듯한 기분이었다. 어떠한 해답을 얻은 것은 아니었으나 생각의 지평은 넓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다.

 

 <루카>의 표현은 덤덤하면서도 섬세하다. 딸기가 루카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다음에 혼자 방에 누워서 음, 하고 소리를 내는 그 장면. 필자는 그 장면을 어렵지 않게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명확하게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소설은 흔치 않다. 대개는 유령처럼 머릿속을 부유하기 마련인데, 루카는 선명했다. 그러면서도 쾅쾅 들이박는 그런 종류의 소설은 아니었다. 너무나 형체가 공고하여 그 세계를 유영하다 보면 이리저리 부딪혀 멍들게 되는, 그런 소설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헤어진 것을 사실은 알고 있지만, 함께 교회에 간 연인과도 같은 사이라고나 할까? 헤어진 연인에게만 내보일 수 있는 특유의 다정함이라든가? 당연하게도, 구질구질하단 뜻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너무나도 잘 아는, 그래서 헤어져야 할 이유까지도 알게 된 사이에 가깝다. 어쩌면 그렇게 딱딱 잘 맞추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줄 수가 있는지. 그러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불편한 지점을 딱딱 잘 맞추어 긁어줄 수가 있는지.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채 살아간다. 어떤 일들은 그저 어쩔 수 없고 어떤 일들은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으며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 그저, 그럴 수 없다. (225p)

 

 '그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필자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딸기가 끝내 자신의 믿음, 삶이라는 이름의 그 완고한 종교를 지켜낸 것도, 루카가 자신을 배척하는 교회를 다시 찾게 된 것도, 루카의 아버지가 믿음을 잃었음에도 계속 설교를 해야 했던 것도. 모두 그저,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은 무언가를 놓고 무언가를 잡는다거나, 무언가를 포기하고 무언가를 얻는다는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사람은 때로 그저 그런 선택을 하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줄 필요성이 있다. 그 사람의 시선과 그 사람의 생각에서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필자에게 퀴어가 당연하듯,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당연하고, 누군가에게는 두 가지 모두 당연할 수 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았다. 필자가 머리로 이해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혐오하고 배척하던 그 사실을, <루카>는 헤어진 연인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다정함으로 이야기한다.

 

 매주 일요일에 교회를 가는 애인을 보며, '종교는 기도와 믿음이 아니라 네 주머니의 푼돈으로 유지되는 거야.'라고 생각했었던 조금 미안한 과거가 있음을 고백한다. 누군가의 세계는 이해하거나 좋아할 수 없지만, 충분히 유의미한 범위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때때로 상충하는 세계가 서로 부딪혀 깨져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때 <루카>를 떠올린다면 조금은 '그저, 그럴 수 없는 것' 혹은 '그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전혀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때가 있으니.

 

 어쨌거나 <루카>는 질척하지도 않고 신파도 아니지만, 읽고 난 후에 조금 마음이 먹먹해질 수는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숙_

 <루카>로부터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작은 퍼즐 조각을 발견한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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