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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 고이 숨겨둔 진단서 두 통을 <반짝 반짝 빛나는> 것으로 만드는 상냥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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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악어새 댓글 0건 작성일 15-09-08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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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きらきらひかる)>

에쿠니 가오리 (江國 香織)

 

 

 

0.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열흘전에 결혼했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에 대해 설명하기란 아주 복잡하다(12p)' 이렇게 시작한 소설은 외과의사 무츠키와 번역가인 쇼코를 번갈아가며 그들의 '복잡한' 결혼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복잡한 사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알코올 중독에 걸린 아내와 호모 남편(16p)' 이 소설은 이 두사람이 꾸려가는 반짝반짝 빛나는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1. 책상 서랍 속 고이 숨겨둔 진단서 두 통.

 


 무츠키와 쇼코의 침실 서랍장 제일 윗 서랍에는 두통의 진단서가 들어 있다. 하나는 '쇼코의 정신병이 정상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내용, 하나는 '무츠키는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정략 결혼은 아니어도, 적어도 '전략적 결혼'임에 분명한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전략'과 '결혼'이라는 생경한 조합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사랑이 넘친다.  쇼코는 우울증이 시작되면 무츠키에게 곤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무츠키의 애인인 곤은 단정한 무츠키와는 대조적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젊은 남자다. 쇼코는 무츠키도 곤도, 아주 좋아 한다. 무츠키 역시 쇼코를 아낀다. 쇼코가 우울할 때는 그녀를 달래주고, 쇼코가 좋아하는 술을 함께 마신다.

 

 '전략'과 '결혼'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렸을 때, 우리는 아주 당연하게 이 공동체가 일종의 '신파극'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이들의 공동체가 순탄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쇼코와 무츠키가 꾸린 가정이라는 공간은, 끊임 없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도전 당한다. (아내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쇼코의 미즈호, 아이를 바라는 양가의 부모님. 그들은 '이게 정상적이지 않니?' 라는 말로서 끊임없이 쇼코와 무츠키를 곤란하게한다. 쇼코는 우울증이 시작되면 자학적으로 변하고, 무츠키는 집에 사람들이 놀러오면 한시간 반을 유리창을 붙잡고 닦아야 하는 결벽증 환자이다. 그러나 쇼코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왜 모두들, 애기 애기 하는건지.
예상과 달리, 쇼코는 울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
지금 이대로 그냥 있어도 돼. 라고 나는 말했다.
(...)
쇼코는 정말이지 난감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다들 어떻게 된 것 같아. 라고 말했다.
"왜 지금 이대로 지내면 안되는 거야. 그냥 이대로 지내도 이렇게 자연스러운데."
그냥 이대로 지내도 이렇게 자연스러운데. 자연이란 말의 정의는 차치하고, 당당하게 그렇게 말한 쇼코 때문에 나는 가슴이 메이고 말았다.
(104-105p)
 


 '이게 정상적이지 않니' 라는 말은 일종의 매직워드다. 누구나 그 단어 앞에 서면 작아지고 만다. 마음 속 한 구석에 넣어둔 진단서가 하나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 진단서는 '모순된 언어(15p)'로 쓰여져있는 글이다. 끊임없이 공격해오는 최강의 창 '정상성'과 끊임없이 살아가는 끈질긴 방패 '존재'의 언어 말이다. 대개의 경우 방패는 끈질기기는 하지만 내구도가 높지는 못해서, 자꾸 부서지며 파편을 남긴다. 그런것들은 자꾸만 서랍속에 쌓여간다. 그럼에도 쇼코는 '자연스럽게'이야기한다. 그냥 이대로 지내도 이렇게 자연스러운데. 하고.

 

 


2. 단정 짓지 않는 상냥함

 


 재미있는 것은, 쇼코 역시 무츠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쇼코는 무츠키와 그의 친구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호모라고 여자들 말 쓰는 것은 아니네(69p)" 쇼코의 말은 짐짓 무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무츠키는 쇼코의 그런 말을 그대로 되짚는다. "그녀는 호모와 성 전환 수술자를 동일시하고 있다(69p)" 무츠키는 쇼코의 말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인다. 무엇이 무츠키를 관대하게 했을까. 그것은 무츠키가 쇼코를 "내 아내는 정말이지 좀 유별나다(32p)"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츠키와 쇼코의 집에는 두 사람 외에도 다른 존재들이 있다. 보라 아저씨와 곤의 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보라 아저씨와 곤의 나무라는 것은 모두 쇼코가 지어준 이름으로, 무츠키는 그것을 '세잔느의 그림'과 '곤이 선물한 유카알레판티스페스 나무'라고 부른다. 그러나 쇼코는 꿋꿋하게 보라 아저씨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곤의 나무에게 홍차를 건넨다. 쇼코의 이런 비일상성은 무츠키로 하여금 쇼코를 '유별난 사람'으로 부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유별남은 무츠키 답게도, 아주 객관적이다. 무츠키는 쇼코의 그런 행동을 책망하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대신, 아주 진지하게 대응한다.

 

 

"저, 우리 욕조에다 물 받아서 금붕어 풀어놓아볼까? 금붕어의 수영장. 그리고 이 끝에서 저끝까지 수영하는데 몇분이나 걸리는지 기록하는거야. 나팔꽃의 성장 기록처럼 말이야. 여름이 끝날 때까지는 어느정도나 진보할까?
(...)
"금붕어 모이 먹어 볼래? 바짝 말라 있고 냄새나고 맛은 없지만, 금붕어의 기분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양하겠어, 라고 말하고 나는 타올로 발을 닦았다. 앞으로 15분이면 욕조는 가득찬다. 그렇지, 그래프를 작성하자, 라고 생각하였다. 한눈에 금붕어의 진보를 알 수 있도록, 꺽은선 그래프를 그려 쇼코에게 선물하자. 차가운 물속에서 금붕어는 분명 우아하게 수영하리라.   
(136-137p)

 


 쇼코에게 있어서 무츠키의 유별남과, 무츠키에게 있어서 쇼코의 유별남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는 것일까. 어떤 이유 때문에, 쇼코는 무츠키를 (그리고 곤을) 좋아하고, 무츠키는 쇼코를 꿋꿋이 아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들의 상냥함에 있다.

 


"어떤 사람이야? 신랑"
"자상한 사람"
그렇게 대답하고서 끔찍하도록 기분이 우울해졌다. 자상한 사람이라니, 그렇게 한마디로 가볍게 단정짓는 듯한 말투,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무츠키는 훨씬 더. 나는 난감했다. 훨씬,의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113p)

 


 아이를 가지는 게 '정상'적이지 않니? 하고 묻는 세상 속에서 쇼코와 무츠키는 서로를 함부로 '정의'하지 않는다. 둘의 언어들은 마치 언어 밖의 세상을 더듬는 것처럼, 아주 감각적이고 비일상적이다. 그들은 서로의 정체성 바깥을 더듬으며 느끼는 그대로를 상대로 인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더듬음을 통해, 그들은 서로의 빛깔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지평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순간이다. '세잔느의 그림'이 '눈 앞에서 세잔느가 재미있다는 듯 미소(203p)'짓게 되는 순간.

 

 

 

3. 반짝반짝 빛나는

 

 

 이 책의 제목이 반짝반짝 빛나는, 인 이유를 생각해보자. 쇼코는 무츠키와 자신이 선을 본지 1주년이 되는 날, 무츠키를 불러 곤을 선물한다. 결혼한지 1년이 아니라, 서로를 만난지 1주년 된 날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번역자 김난주씨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남편의 애인의 머리를 빨간 리본으로 장식하여 선물이라고 내미는 아내의 사랑감각이 어떻게 반짝반짝 빛나지 않을 수 있겠어요. (207p)

 


 이들의 공동체는 주위의 '정상성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내고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방식으로 그 삶을 존속한다. 대개의 경우 사랑은 희생을 요구한다고 생각된다. '사랑'과 '전략'을 떠올렸을 때 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하거나, 필연적인 신파극을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주위에서 접하는 사랑의 이름들이 공격적인 형상으로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니'. 이 소리까지 듣고보면, 머리속 한 구석의 작은 서랍이 불안하게 달칵달칵거린다. 대개의 정의 되지 않는, 언어 바깥의 것들이 서랍속에서 달달달 떨며 불안하게 요동친다.

 

 서랍속의 하얀 진단서, 어쩌면 모순된 언어이거나, 언어의 부스러기 같은 것들은 어느 서랍속이나 들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에게 상냥하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 불안한 조각들을 꺼내어 하늘에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처럼 띄울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 아닐까.

 

 

 

 

덧붙임.

일본 소설 특유의 기묘하고 상냥한 문체는, 한편으로 이 문제가 마치 환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처럼 보이게 한다. 커밍아웃하는 사위. 정신병을 고백하는 며느리. 이 두단어 만으로도 이미 머리속에 신파가 그려지는 것은 우리가 소위 '물 싸대기'가 난무하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악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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