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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뷰 : 알리사 브루그먼 <알렉스, 소년에서 소녀로> - 명랑한 가족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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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배 댓글 0건 작성일 15-09-0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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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소년에서 소녀로>

알리사 브루그먼, 또하나의문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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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책 소개를 인용해 봅니다. "간성(INTERSEX), 혹은 양성(BIGENDER)이라고 불리는 삶의 이야기", "모호한 생식기를 달고 태어났고, 어쨌든 ‘고추’가 있다는 이유로 엄마와 아빠가 남자로 키웠지만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하며 자란 알렉스"의 이야기라는 말을 듣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알렉스는 인터섹스 비수술 MTF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여성 청소년이었습니다. 어쩌면 퀴어문학, 특히 청소년 소설에서 다뤄진 주인공 중에 가장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것 같습니다. 개념 자체에도 익숙하지 않을 독자들은 조금 어리둥절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퀴어문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나 다층적인 정체성을 번역 출간한 시도가 매우 반갑습니다. 알렉스가 트랜스젠더이자 레즈비언이라는 점은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잘 구분해 보여주고, 자신을 호기심 있게 관찰하는 의사에게 수술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서 비수술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 그러나 사실, 이 글에서는 주인공 알렉스의 정체를 탐구하는 것이 옳지 않게 느껴집니다. 알렉스의 표현을 따르자면 사람들은 늘 자신을(우리를) '교통사고 보듯' 하거든요. "안 보는 척하지만 보지 않을 수 없고, 보고서는 '아이구 세상에!'" 합니다.(55쪽) 이렇게 연민하다가 분노하다가 신기해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알렉스는 명랑하게 살아갑니다. 자신은 빠르게 손뼉치기(클래핑)를 잘 한다고 얘기하는 사랑스런 주인공을 위해, 저 역시 알렉스의 클래핑처럼 책의 장점이나 열심히 얘기해보렵니다.


? 이 소설의 화자는 '나'와 '알렉스'입니다. 둘은 늘 붙어 다니면서도 분열되어 있는 두 명의 자아입니다. 아주 거칠게 구분하자면 남성성 상징하는 '알렉스', 그리고 여자인 '나'는 대화하고 다투면서 일상을 함께합니다. 물론 다소 성별이분법적이고 일차원적인 구분일 수 있으나, 사실 우리 모두 양성적 자아을 갖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흥미로게 읽을 수 있을지도요. 두 자아는 많은 곳에서 의견이 부딪치지만, 서로를 일방적으로 증오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결국은 한 쌍으로 붙어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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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왜 중요하지?
하지만 중요하다. 정말, 정말 중요하다. 어느 쪽인지 사람들은 알고 싶어 한다. 길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다시는 안 볼 사이일 때에도 사람들은 당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판단하려 든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대부분이 회색 지대는 생각하지 않는다. 헛갈리면 기분 나빠한다.
판단하기 어려우면 불쾌해한다.
나에게 그건 회색 지대다. 희끄무레한 회색. 우리는, 알렉스와 나는, 얼 그레이 백작과 그레이 백작 부인이다. (2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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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고백하자면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즉 장점^^)은 가족관계를 아주 새롭게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렉스는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혐오범죄의 피해자가 된 후 새로 전학온 학교에서는 (공식적인) 여자아이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여학생들의 교복을 입고,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기기로 한 것이죠. 이 결심을 가족들이 무던히 받아줄 리 만무합니다. 물론 그동안의 퀴어문학에서도 가족들은 끝없이 갈등했습니다. 하지만 (특히 청소년 소설에서는) 결국 사랑으로 화해하고, 부모가 자녀를 수용하는 결론이 되지요. 그런데 이 신선한 소설에서는, 퀴어한 자식을 받아들이고 감싸주는 손쉬운 결말이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고, 자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옳고 부모는 틀린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리얼한 가족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특히 알렉스의 어머니가 무려 "공유되는 모성(motherhoodshared.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남기는 상담글들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어머니 자신도, 댓글을 달아주는 다른 어머니들도 알렉스의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어머니만 위로하는 무지를 보여주거든요. 실제 당사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정보나 진심어린 위로는 없고, 당사자들의 대화가 부재한 상황에서 타인의 편견들만 침투하는 장면을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때 모성의 신화는 깨어지고 가족의 진짜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납니다. 서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최선을 다하고있다고 믿는, 하지만 사실은 서로를 조금 원망하는, 진짜 가족 말이죠. 성소수자인 알렉스는 사실 부모가 자신을 정말 받아들이고 있는그대로 사랑하는것이 아니라 자기위로, 나르시시즘의 차원에서 그렇게 '보이려' 한다는걸 알고있습니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성소수자의 가족관계를 조명하는 시도는 청소년소설에 많이 없는 시니컬한 태도라서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오해 말아주시길, 소설 자체는 대단히 명랑합니다!)


? 신간 리뷰인만큼 스포일러를 지양하려 애씁니다만 소설의 결말 역시 가족들끼리의 표면적 화해를 거부하고 독립적인 삶을 응원하고 있어서 인상적입니다. 결국 이 용감한 청소년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이 아닐까요.? 누구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대 관계"로부터 벗어날 권리가 있다.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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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 @blueriox

퀴어문학 마니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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