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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푸트니크의 연인'과 우리의 궤도 안에서 ―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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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칠월 댓글 0건 작성일 15-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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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러시아어로 ‘동반자’,?상당히 로맨틱하고 쓸쓸한 이름이다.

?어째서 ‘동반자’라는 단어가 쓸쓸함으로 읽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 작품의 제목을 이렇게 고쳐썼다. <동반자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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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모두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어째서 그렇게 고독해질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고 각각 타인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까지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3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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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뮤의 연인, 스미레

?우선 누구나 이 책을 읽고 주인공을 스미레, 혹은 뮤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전제를 둔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의문을 가진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분명 스미레가 지칭하는 뮤이지 않은가?

?하지만 서술자인 ‘나’를 서술자에만 국한하고 뮤와 스미레 2인 구도를 형성하면, 거기에서 뮤는 결코 ‘연인’의 위치에 있지 않다. 뮤는 절대적으로 ‘위성’이다. 그래서 완벽한 고독과 파멸을 뜻한다.

?스미레는 뮤-고독한 위성의 연인을 자처했다.?때문에 뮤의 ‘저쪽’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심지어 ‘저쪽’으로 건너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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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의 연인, 스미레

?진짜 주인공이 스미레도 뮤도 아닌 주요 서술자, ‘나’라고 해보면 어떨까.

?작품 내내 스미레에 대한 ‘나’의 애정은 짙어진다. 그렇지만 어딘지 공허한 ‘스푸트니크’에 어울린다. 그가 하루키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냉소적이고 히피한 캐릭터나 감성적인 보헤미안 캐릭터였다면 그저 그 정도에 머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냉소적이면서 몹시 안정적이고, 감성적이면서 지나치게 평온하다. 바로 이것이 그를 우주 가운데로 쏘아올렸다.

?그는 서술자로 선택되었기에, 자신이 연인으로 선택한 스미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인의 ‘동반자’는 뮤가 아닌 ‘나’이다. 그의 일방적 연인인 스미레가 후에는 그를 직접 동반자로 지목하기 때문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동반자가 되면서 서술자에서 청자(독자)의 자리로 옮겨간다.?즉, 주인공=서술자=‘나’=동반자=독자로서, 전개에 따라 점점 진짜 ‘주인공’이 독자라는 가정이 뚜렷해지는 구조를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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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미레

?뮤의 장치적?역할 중 하나는 스푸트니크를 언급함으로써 스미레를 ‘연인’으로 각성시키는 것이었다.

?비트니크 대신 엉뚱하게 튀어나온 스푸트니크의 진짜 목적지는 다름아닌 스미레. 착수된?스미레는 자연스럽게?발화를 가공, 뮤에게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까지는 스푸트니크가 청자인 스미레를, 연인은 화자인 뮤를 가리키는 것이 자연스럽다.

?‘연인’이 스미레 본인이 되는 까닭은 우리가 조금 더 작품 내부로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다.

?아니, 자기의 몸을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조차도 없었다.(22p)

?거울은 곧잘 비추어진 나를 상징한다. 스미레의 방에는 거울이 없다.

?그러나 ‘비추어볼 수’ 없기 때문에 자의식은 오히려 팽창한다.

?스미레의 첫사랑은 강렬하고 파괴적이다. 스미레의 두 의식, 작가로써의 그것과 첫사랑의 열병에 빠진 인간으로써의 그것은 거세게 융합한다. 스미레는 뮤에게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를 사랑하는 스스로에게 몰입한다.

?뮤의 새까만 눈동자 안에 비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선명한 모습을 스미레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거울 너머로 빨려들어간 자기의 영혼처럼 보였다.(56p)

?이렇게 결국 스푸트니크는 뮤에게서 발화된 스미레(객관화된 청자)가, 연인은 사랑에 빠진 스미레 자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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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의 합치점은 이것이다. 스미레는, 그녀 자신이?위성일 수는 있지만 결코 연인이 아닐 수는 없다는 것.

?그녀가 사랑하는 이에게 붙인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라는 이름이, 공교롭게도 그녀 자신에게 돌아갔다. 스미레가 썼듯이, 이해는 항상 오해의 전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그녀만이 연인일 수 있었다.

?이 작품에는 고독에 대한 오해의 전부가 있었고, 하나뿐인 오해를 오해의 전부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위성을 쫓은 스미레가 있었다.

?‘동반자’란 누군가에 의해 칭해지는 말이다. 나는 뮤와 ‘나’를 넘어서 모두를 동반자로 칭한 주체가 바로 스미레였다고 생각한다.

?스미레는 그녀의 동반자-즉 우리 모두의 연인이었다. 같은 인간이며 같은 위성이지만,?우리가 고독의 상징일 때 그녀는 사랑의 기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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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이제는?어째서 ‘동반자’가 쓸쓸한 느낌을 주는지 알 수 있다.

?점멸하는 존재에게 유일한 초월이 되는 다른 존재, 스푸트니크의 연인.

?그는 나로 하여금 고독을 잊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또다른 고독이 여기에 있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나는 거기에서 사랑 외의 다른 것을?오해할?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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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월

시인

내가 흘린 음악을 만지고 당신?봉숭아빛으로 물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당신을 다치게 한 줄로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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