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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괴> 파괴된 사랑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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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숙_ 댓글 0건 작성일 15-08-22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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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열린책들, 1999, 김남주 역)

 파괴된 사랑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

 

 

 

 프랑스 소설
 
 일단 도입부부터, 필자는 난관에 봉착했다. 이런,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서사 중간 중간의 역사적 사실들과 철학자의 이름, 위인들, 그들의 사상, 그런 것들은 상식 없는 필자를 당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당히 인터넷의 힘을 빌리면 겉핥기식으로 맥락은 알아들을 수 있으니. 그러니까 꼭 그래서 '프랑스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일곱살 여자아이인 주인공의 맹랑함과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전쟁이라는 소재에 대한 통찰이 프랑스의 느낌을 주었다. 배경은 분명히 중국이라 했건만. 어디선가 프랑스의 향기가 솔솔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외국인 지구라는 또 다른 이질적인 배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예술적이다. 그리고 필자는 '예술'에 대한 정의가 각자 마음속에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사랑의 파괴'인가?

 무지렁이인 필자는 저자의 의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감히 짐작해보건대, 제목은 꽤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먼저, 주인공과 주인공이 맺고 있는 관계와 주변 환경에 대해서 알아보자.

 

 일곱 살. 소설의 주인공은 일곱 살 여자애다. 필자는 그때 아마도 콧물이나 흘리며 칠렐레 팔렐레 놀러 다니기 바빴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대단히 맹랑하고 허구적이다. 외국 애들은 저 나이 때에 저런 지식을 가지고 있나? 하고 의심케 되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 소설은 1인칭이며, 마치 저자의 자전적 소설인 것처럼 꾸며져 있다. 그래서일까? 시선의 높이는 분명히 일곱 살인데, 지식은 성인의 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적어도 필자보다는 아는 것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서술 방식에서부터 어떠한 기시감을 느낀다면, 아마 '야, 내가 어렸을 땐 말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어른의 잘난 척을 듣고 있는 것 같다는 것. 살면서 숱하게 만나게 되는 '왕년에 내가~'를 여기서도 만나게 된다는 것에서, 약간의 친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주인공은 일곱 살이다. 그리고 중국의 상리툰 외인 지구에서 살고 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와 오빠. ?'말-다그닥, 다그닥!-'을 가지고 있는 제법 대단한 여자애다. 처음에 주인공보다 나이 많은 소년, 소녀들은 주인공을 '전쟁(놀이)'에 끼워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훌륭한 어필을 통해 정찰병으로서 입대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훌륭한 임무 수행을 통해서 아군을 승리로 이끈다. 여기서 잠시 설명을 덧붙이자면, 외인 지구의 아이들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가며 전쟁을 한다. 그 대상은 어른의 '적'과 같다. '독일'은 어른의 세계에서도,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세계의 바깥, 전쟁에서 빗겨나간 이곳에서도 결국 아이들은 어른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첫 번째 '사랑의 파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잔악함과 이기심의 상징인 전쟁을 답습했다. 가장 사랑이 넘치고 가장 사랑 받아야 할 존재들이 내보이는 가학적인 모습과 잔악함으로부터 파괴를 느끼는 것이다.

 

 두번째 파괴는 주인공이 제 사랑-엘레나-을 대하는 태도다. 주인공은 엘레나를 곤경에 빠트림으로써 자신이 가지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엘레나를 엘레나가 마음을 열었던 남자아이로부터 떨어트려 놓았다. 주인공은 엘레나를 향한 한 남자아이의 사랑을 파괴한 셈이다. 초록 창에서 제공한 사전에 실린 첫 번째 정의에 따르면,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하였다. 단순한 시선으로 보았을 때, 주인공의 태도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라고 보기엔 힘들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러한 주인공의 태도와 주인공과 엘레나 사이의 밀고 당기기는 작품 후반에 이르러서는 또 다른 파괴를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은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제 사랑이 산산이 부수어질 것을 알면서도, 결국엔 엘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지극히 주인공에게만 의미 있는 방식으로. 그럼으로써 사랑은 파괴되고, 주인공은 사랑이 파괴된 곳을 떠난다. 그리고 자신을 열애하는 소녀들에게 엘레나가 자신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의 지독한 고통을 안겨준다. 매우 즐겁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엘레나의 소식을 듣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되는데, 이 부분의 서술이 인상적이다.

 

 고마운 엘레나, 그 애 덕택에 나는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모두 배우지 않았던가?
 고맙고 고마운 엘레나, 그 신화를 줄곧 지키고 있다니. -169p

 

 파괴된 사랑은 복구되지 않았고, 주인공은 줄곧 사랑을 파괴적인 방식으로만 대해왔던 것이 아닐까. 혹은, 필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란 것이 부질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이란 사실은, 끝나는 순간 완벽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맨 끝의 후기에 따르면 이 소설은 실화이며, 엘레나는 저자에게 이 소설에서 수정할 것이 있다는 말을 전해왔다고 한다. 물론 그 요청을 저자는 가볍게 무시해주었다. 이로써 네 번째 파괴, 어린 시절의 우상, 어린 시절의 사랑은 이제 '사실'에 대해서 화를 내는 우스운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어쨌거나 사랑이 파괴되는 그 과정을 알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역사 공부를 하고 읽는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숙_

과연 이런 리뷰가 괜찮을까 싶어 걱정되는 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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