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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한 골방에서 강화길의 <방>을 읽다 발견한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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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빅뷰티 댓글 1건 작성일 15-08-0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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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강화길,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수상작.

보러가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1012012425&code=96

 

그 방을 기억한다. 강화길이 다룬 <방>만큼이나 재앙과도 같았던 방. 내 생에 첫 러브하우스.
필자가 애인과 함께 살고자 처음 구한 집은,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 있었다. 반지하라도 거실 하나에 방이 두 개나 딸린 18평대 연립빌라였으니,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5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듣자마자 (가난한데 마음은 급한 레즈비언 커플은) 집을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덜컥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삿날 재앙은 닥쳤다. 아니, 재앙은 발견되었다. 화장실 한쪽에 떡하니 위치한 ‘똥통’이라는 이름의 재앙 말이다.

 

정화조. 우리가 발견한 똥통의 정식 명칭은 정화조였다. 변기에 앉아 왼쪽을 바라보면 앉은 자리에서 불과 20cm 떨어진 벽면에 네모난 철문이 있었다. 조임새가 낡아 늘 반 뼘 정도 틈이 벌어져있던 그 철문의 안쪽에, 해당 빌라 전세대의 분뇨, 즉 똥오줌을 저장해놓는 정화조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윗집 사람들의 은밀한 흔적은 ‘정화’시킬지언정 당장 가까이 있는 우리에게는 진하게 발효된 암모니아 가스만을 제공했다. 냄새는 거실은 물론 안방, 작은방까지 스멀스멀 뱀처럼 기어들어와 온 집안을 하나의 거대한 변소로 둔갑시켰다. “하자가 있으니 집값이 싼 것”이라는 주인의 말에 계약을 물릴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곧 단념하고 짐을 풀었다. 주인의 말마따나 서울땅에서 100만원으로 집다운 집을 구하기란 바라는 자가 되려 염치없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당장 방 한 칸이 간절한 상황이었으므로.

 

그렇게 약 1년 간 똥통 옆에서 씻고, 똥냄새 속에서 밥을 지어 먹고, 사랑한다 말하고, 달라붙어 잠을 잤다. 냄새 때문에 잠을 설치는 날에는 진통제를 삼켜 코의 감각을 무디게 했다. 물론 종종 울며불며 싸우기도 했다. 암모니아 가스는 우리에게 탈모와 피부병, 천식을 안겨주었다. 나는 애인이 잠든 밤이면 몰래 울음을 삼키며 이렇게 되새김질하곤 했다. 탈출하고 싶어. 아무래도 탈출하고 싶어. 그래도, 잠든 애인의 순한 얼굴을 바라보면 한 번 더 읊조리게 됐다. 탈출하고 싶어, 너와 함께.

 

강화길의 <방>을 읽은 것도 그 똥내 묻은 골방 안이었다. 어느새 겨울이었다. 창을 닫아놓아도 윗니와 아랫니가 절로 딱딱 부딪혔고, 자꾸 손이 얼어 손가락 관절이 굳는 탓에 장갑을 끼고 책장을 넘겼다.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방>은 가상의 재난을 전제로 한다. 한국의 지방 도시 중 한 곳이 (핵폭발 등 어떠한 재난에 의해) 파괴되었고 정부는 해당 도시를 청소 및 재건할 복구인력을 대대적으로 모집한다. <방>의 주인공인 레즈비언 커플은 이 일에 지원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일당이 세기 때문이다. 소위 노가다에 가까운 험한 일이더라도 바짝 돈을 모아 서울에 방 한 칸 마련할 수 있다면, 방다운 방 한 칸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으로 수연과 재인, 두 사람은 재난도시로 향한다. ‘전염과 부패, 부식과 오염 같은 단어들’로 설명되는 도시, 빛이 사라지고 열기가 40도를 웃도는 도시에서 두 사람은 건물의 잔해를 옮기고 부수는 일을 한다. 임시거처로 마련된 옥탑방에서는 석회가 뿌옇게 섞인 수돗물을 받아 마신다. 쉬지 않고 일하지만 도시는 점점 더 부서져가고, 유난히 갈증을 호소하며 수돗물을 들이켜던 수연의 몸도 나날이 부서져간다. 부서져가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도시의 방을 떠날 수 없다. 이 방을 견뎌내야만 서울의 방다운 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골방에 들어앉아 <방>의 그녀들을 지켜보며, 나는 어떠한 기시감을 느꼈다. 소설 속 재난은 분명 가상의 일로 구상된 것인데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햇빛 한 줌 들지 않아 화분 하나 키울 수 없는 방, 사람의 몸을 부서지게 하는 방, 방 자체로 재난인 방. 강화길이 그리는 <방>은 가상의 방인 동시에 내가 있는 골방, 바로 나 자신의 재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방다운 방을 꿈꾸며 <교차로>나 <벼룩시장>을 뒤지다가 한숨 쉬어본 적 있는 우리 모두의 재난에 관한 고백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강화길의 <방>에 매료된 계기는 일상적 재난에 대한 이입과 공감뿐만이 아니다. 내내 잿빛 도시를 묘사하는 이 소설이, 결국에는 무지하게 낭만적이더라. 재인과 수인, 언제나 함께 하려는 두 사람의 경향과 선택은 비극을 낳는다. 이 비극을 확인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다만 밝힐 수 있는 것은, 때때로 어떠한 비극은 우리가 꿈꾸는 낭만을 부른다는 것이다. 방다운 방을 얻는 것보다 더욱 간절한, 당신에 관한 낭만 말이다. 봉쇄령 내려진 도시이든, 똥내 나는 골방이든, 다만 내 '옆에 앉아 있기로' 결정한 당신은 몹시 낭만적이다. 그 낭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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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뷰티(@sobigbeauty)

150cm, 74kg.

살찐, 아름다운, 플러스사이즈 활동가.

전신성형수술로 몸이 아닌 마음을 고쳐먹은 여자.

퀴어.

헬스트레이너인 애인과 동거 중. 애인에게 놀멍쉬멍 PT를 매일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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