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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뷰: 불안한 세계 속 뚜렷한 가능성 - 강병융, 『손가락이 간질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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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난 댓글 0건 작성일 18-04-3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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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세계 속 뚜렷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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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융, 손가락이 간질간질 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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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융, 『손가락이 간질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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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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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책 없이 밝은 퀴어 소설을 만난 것이 얼마만인지. 파스텔 톤의 표지와 다음이 도무지 걱정 되지 않는 이야기의 흐름이 어울려 귀엽고 풋풋하고 간질간질하고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런 수식어를 적으면서도, 나는 의심 많고 불행에 찌든 인간이어서 자꾸만 불안했다. 아이는 정말로 괜찮은 걸까? 구멍 난 세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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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 결승전을 치르는 마지막 순간, 주인인공 ‘아이’의 ‘왼손 가운뎃손가락 끝이 결정적으로, 강력하게, 견딜 수 없게, 짜증스럽고도 몹시 어이없게, 마구’(19쪽) 간지럽다. 간지러움 때문에 잘못 던진 볼은 힘없이 날아가지만, 타자가 그 볼을 쳐내지 못해 아이의 팀이 우승한다. 아이는 ‘최고의 선수’라는 칭호도 얻는다.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우승 이후의 즐거운 변화를 바란다. 하지만 나이 많은 남자 형제 ‘브라더’와 브라더와 결혼한 ‘시스터’의 관계는 점점 묘하고 의미심장한 기류를 타고, 너무너무 보고 싶은 ‘백이’는 아이에게 여전히 냉랭하다.

?? 아이가 바라던 변화는 왼손 가운뎃손가락에 눈이 생긴 뒤로 찾아온다. 눈이 생긴 날, 아이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 등산을 하며 세 번째 눈에 익숙해지고, 친구 ‘WILL’과 함께 대화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밤, 브라더와 시스터, WILL, ‘감독님’에게 자신의 눈을 공개한다. 이후 용기를 얻게 된 아이는 구청에서 주최하는 우승 축하 행사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세상에 공개한다. 세 번째 눈은 핑거 아이Finger Eye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아이는 강인하고 귀엽고 무해한 이미지로 많은 방송에 출연한다. ‘가수 겸 배우인 소녀’와 기분 좋은 감정을 나누기도 하고, ‘최고의 엠시’와 ‘디자이너&엔터테이너’가 함께 만든 휴먼 예능 ‘세상 밖으로’의 파일럿 방송에 고정 출연자가 될 것을 제안 받는다. ‘세상 밖으로’에서 아이는 항문에 세 번째 눈이 달린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방송이 나간 이후 세 번째 눈이 달린 사람들의 ‘아이밍아웃eyeming out’이 이어지고, 세상은 점점 사랑으로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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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이 간질간질』은 많은 설정들을 가지고 있다. 그 설정들은 비교적 직접적으로 현실 세계를 나타낸다. 아이의 성장 과정은 우리의 성장 과정에 대한 비유라 볼 수 있으며, 손가락에 눈이 달렸다는 설정은 ‘다름’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아이가 설명하듯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는 호칭’인 ‘브라더’와 ‘시스터’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이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상황, 내지는 아이의 생물학적 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야구에 적합하지 않다고 억압받아온 상황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아이가 사랑하는 대상인 백이를 묘사할 때 이분법에 기초한 성별을 나타내지 않는 것, 아이가 백이를 불러내었을 때 백이가 ‘다름’을 걱정하는 것 등을 통해서 아이의 성적 지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수고와 노력을 통해 조립된 너무나도 밝고 경쾌한 소설. 그러나 나는 소설에 드러난 논리의 결여와 시혜적 시선 때문에 읽는 내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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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나이가 많은 남자 형제를 ‘브라더’라고 불렀어요. 커서도 그게 고쳐지지 않아 그냥 브라더라고 부르고 있어요. 나는 그게 편해요.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는 그런 호칭이 좋아요.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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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터’와 ‘브라더’는 그 단어를 말하는 주체의 성을 지정하지 않기에 ‘언니/오빠/누나/형’보다는 성중립에 더욱 가까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어들은 대상의 성을 지정하고 있으므로 ‘언니/오빠/누나/형’의 완전한 대체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언어 안에 나이에 따른 위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과 아이가 ‘브라더’와 ‘시스터’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연결되면서, 아이의 심리적·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 ‘미성숙한’으로 표현되는 ? 성격을 오히려 부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브라더와 시스터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아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낮추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그들의 이름을 불렀었더라면, 하는 비참한 심정으로 아이가 자신의 가족들을 ‘시스터’와 ‘브라더’라 부르는 장면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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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 절정의 순간에 커밍아웃을 하는 스타들의 심리도 알 것 같았어요. 나를 항상 온전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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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는 용기를 만들고, 용기는 삶의 변화를 만들어요.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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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기가 없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끌어 세상과 다시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했어요.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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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좁은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간들이 산다. 손가락에 눈이 있는 인간도 살고, 물론 그렇지 않은 인간은 더 많이 살고 …(중략)… 쥐의 얼굴을 한 혹은 사람의 얼굴을 한 쥐가 대통령인 나라가 극동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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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들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온전한 모습으로 밖으로, 집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꺼린다. 대부분의 경우 숨어서 살고 있다. 아직은 용기가 넉넉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등장해도, 혹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2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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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나오지 않는 행위는 비겁하고 용기 없는 행위일 뿐인가? 그렇게 함으로써 느끼는 괴로움은 오로지 개인만의 책임인가?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과연 용기의 근원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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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밖에도 아이와 관계 맺고 있는 인물들이 다만 ‘가족’, ‘친구’, ‘연인’, ‘지나가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등의 역할만을 수행하며 소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 등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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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내가 끝까지 이 이야기를 읽어나갔던 이유는 기존 대부분의 퀴어 소설에서 나타난 암울한 결말을 피해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버려지지 않고, 자신의 꿈을 스스로 바꿔 가는 소설 속 퀴어의 존재가 희박한 문학?세계 안에서,?『손가락이 간질간질』의 세계 속 아이의 밝음이란 긍정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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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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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내주는 연애 소설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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