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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 그는 1960년대 초 히피들의 대부였다. 그의 반전운동, 반미 운동은 이미 1950년대의 그의 시 속에 있었다. 그를 유명하게 한 작품은 ‘Howl'이다.
그의 ‘Howl'과 기타 시의 추천사를 저명한 미국시단의 원로,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가 썼다. 그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이유는 알렌 긴스버그는 동성애자이며 외설적이며 반미적인 ‘엉터리’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아우성’은 1960년대 폭풍적 인기를 얻었다. 이 ‘아우성’이 외설문학으로 판매 금지 명령을 받았을 때 세상 사람들은 이 시집을 사 읽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살이가 기인적인 데가 있어 곧 유명하게 되었다. 콜롬비아 대학시절 창녀와 함께 살고, 친구로 지낸 일화 같은 것들이 그를 ‘재미있는 시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우성’이후 ‘긴스버그 선집’이 나왔고, ‘하얀 수의’가 나왔다. 그는 시집의 인세와 강연료로 먹고 사는 몇 안 되는 미국의 시인이다. 이 시집엔 ‘아우성’의 8편, ‘긴스버그 시선집’의 21편, ‘하얀 수의’에서 15편을 선정, 번역하였다.
그의 시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의 시가 새로운 것이고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간격과 긴장을 그만큼 서술한 시인이 드물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의 멸망’으로 1974년 시집저작상을 받았다. 그는 로버트 로웰보다 더 잘 알려진 시인이다. 로웰처럼 사회적인 시를 쓴 반체제시인이지만 중공의 공산주의에 비판적이었고 10억 인구를 굶게 하는 체제비판으로 냉대를 받기도 했다.
그는 그를 가리켜 ‘불교, 유대교, 모슬렘, 기독교인’이라고 말한다. 미국 의회도서관 시인(현 계관시인의 전신)을 두 번 역임한 리드 휘트모어는 알렌 긴스버그가 미국 최고의 민중시인이라고 말한다. 그가 미국의 첫 번째 민중시인 월터 휘트먼 다음의 위대한 시인이라고도 평한다. 왜 그럴까? 참으로 평범한 소시민의 자유를 구가해서일까? 시를 사랑하는 사람임엔 틀림없고, 시인의 긍지를 잃지 않고 있는 미국인이다. - 1990년 7월 최연홍
[역자의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