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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기독교권과 이슬람 세계 사이의 오랜 충돌을 그린 타리크 알리의 5부작 가운데 하나인 <술탄 살라딘>. 이 책은 한 유대인이 살라딘의 서기가 되어 그가 구술하는 과거 이야기를 받아쓰고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순간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형식을 통해 십자군 전쟁 영웅 살라딘의 총체적인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박진감 있는 서술, 뛰어난 속도감, 숙명적 관계의 역사적 묘사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설득력으로 중세 이슬람의 내밀한 풍경을 그려낸 이 책은, 그러나 살라딘의 이야기라는 설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즉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큰 줄기는 살라딘의 생애를 따라가지만 피튀기는 전투장면이나 신출귀몰한 영웅의 활약상에서 슬며시 비껴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소한 사건과 주변 인물들의 내면 묘사에 보다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하렘의 여인들, 장군, 환관, 학자 들의 욕망과 좌절, 사랑, 치정, 공공연한 동성애, 음모와 배신 그리고 칼과 칼의 대혈투 등 예루살렘 공략 전날의 중세 이슬람 군상이 피와 살을 지닌 존재로 우리 앞에 되살아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인간의 희로애락을 펼쳐보인다.
또한,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 신자들을 엄격히 규율하면서도 성적 방종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는 기독교인, 이슬람의 천국이 남성에게만 열려 있다고 비판하는 여주인공 자밀라와 할리마를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이슬람 사회에 한발 다가서는 동시에 그 세계의 명암을 두루 체험하게 하는 것도 이 책이 갖는 큰 미덕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특히, 자신의 동성 애인을 누이와 결혼하게 한 알 부하리에 대해 자비를 베푸는 술탄의 에피소드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