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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소설이자 레즈비언 소설의 현대 고전으로 꼽히는 패니 플래그의 소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큰 인기를 누린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원작인 이 작품은 세상의 폭력과 무관심이 빚어낸 절망적인 삶에서 벗어나도록 서로를 이끌어 주는 여성들의 진한 우정과 연대의식, 나아가 깊은 사랑까지 보여 주고 있다.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1980년대 말에 만나 우정을 나누는 두 여인과 1920~1930년대에 만나 사랑을 나누는 두 여인이 등장한다. 1985년 버밍햄,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를 방문한 40대 주부 에벌린은 요양원에서 80대의 스레드굿 부인을 우연히 만난다. 노부인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미국 남부 휘슬스톱 카페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제나 생기발랄했던 이지는 어린 시절 무척 따랐던 오빠 버디가 기차 사고로 죽고 나서 사람을 멀리하고 사랑을 거부하는 아이로 자란다. 하지만 이지가 열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 스물한 살가량의 아름답고 친절한 소녀 루스가 스레드굿 가를 찾아오면서 이지는 다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루스에게 한눈에 반한 것이다. 이지는 루스에게 사랑을 거침없이 고백한다. 언제나 자신에게 당당한 이지는 사랑 앞에서도 솔직하다. 루스 역시 이지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지만 약혼자가 있는 루스는 사회의 관습을 저버리지 못하고 이지를 힘겹게 떠난다. 이지는 그런 루스를 원망하고 저주하지만, 루스의 남편이 폭력적인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친구 빅 조지를 대동하여 루스를 구해 온다. 이지가 오빠에 대한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루스가 그녀를 구원했듯, 이지 역시 불행한 삶으로부터 루스를 구해 내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남성의 폭력 안에 갇힐 뻔했던 루스는 이지의 끝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삶을 되찾는다. 이지는 루스와 휘슬스톱 카페를 차려 안전한 터전을 마련한 뒤 아이를 함께 키우며 새로운 가족을 꾸려 나간다. 이지와 루스가 기찻길 옆에 차린 휘슬스톱 카페는 스레드굿 집안의 또 다른 가족인 흑인 요리사 십시와 그녀의 아들 빅 조지가 함께 지내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온갖 떠돌이 부랑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며, 아직 인종차별이 존재하던 시대에 흑인들도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부랑자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통에 가게가 어려워지거나, 흑인들에게 음식을 판다는 이유로 KKK단에게 위협을 당하지만 이지는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신념이 분명하고, 이에 당당하기 때문이다. 아직 인종적 편견이 남아 있고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1920~1930년대를 이지와 루스는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 나간다. 휘슬스톱 카페는 소외받은 이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카페에서 음식과 함께 온정을 나눈 이들은 후에 이지가 곤경에 처했을 때 가족처럼 그녀를 도와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남들 눈치만 보며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고 살아온 에벌린에게 자아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용감한 한 여성의 이야기가 50~60년 세월을 지나 다른 한 여성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궁극적으로 삶을 변화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