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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구속 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충분한 선택
퀴어Queer: 무지개로 빛나는 우리의 사랑
나는 10년간 함께 살면서 살림을 꾸려간 내 아내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몰라. 내가 멍청이니? 아내가 아닌 거 모른 거 아냐. 결혼식을 올리면서도 그게 결혼이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었어. 그래도 나는 아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 저 집도 아내 이름으로 사서 난 이렇게 쫓겨났어. 혼인신고도 하지 못하는 나는 남이니까. 평생 남이었으니까. _「Sofie to Dorothy」
민경의 아버지가 하는 모든 말이 틀렸다. 민경이 사귀는 것은 남자가 아니고 당신 눈앞에 있는 나이며, 룸메이트는 대학생이 아니라 직장인들도 많이 구하면서 지내고, 일단 우리는 룸메이트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빌라, 낡기는 했지만 안은 따뜻하고 넓었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집을 천박하고 궁색하다고 말하다니. 저 턱을 하늘까지 올리고 우리를 한껏 내려다보는 민경의 아버지에게 화가 났고, 자존심이 상했다. _「너의 결혼식」
수록작 대부분에서 인물들의 성별은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은 중성적인 이름을 사용하며,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 말투도 전형성에서 대체로 벗어나 있어 독자가 생물학적 성별을 손쉽게 파악하지 못하도록 소설적으로 의도되었다. 이 책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그럴수록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인물들의 생물학적 성별에 유의해서 읽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통해 “작가가 그들의 사랑을 이성애와 의도적으로 구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황지운의 소설에서 사랑은 개인적이라 저마다의 사연과 깊이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로 범주화되기 어려운 사건들이다. 「Sofie to Dorothy」에서 묘사되는 1980년대 레즈비언들의 삶과 사랑이, 「너의 결혼식」에서 민경과 선우가 나누는 사랑과 사회적 억압의 맥락을 공유하는 동시에 무척이나 다른 문화와 사정을 가지고 있듯 말이다. 「안녕, 피터」에서 특전사 출신 게이 유진과 그를 남몰래 사랑하는 영수의 감정, 「사라왓부인모임」에서 서로를 가족처럼 염려하며 다투고 화해하는 마음들, 「운동은 몸에 좋아요」에서 외로이 상경하여 서로에게 의지해온 주현과 영진의 애틋함까지…… 소설마다의 다채로운 사랑이 모여 한 권의 무지갯빛 사랑이 떠오른다.
[예스24 제공/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