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습니다
신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신이 차별주의자라는 생각,
그로부터 시작된 다섯 가지 ‘불경한’ 상상과 압도적 그래픽의 콜라보레이션
광화문 한복판에 신이 강림했다. 사건은 놀라웠지만 신의 형상은 익숙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아담과 손가락 장난을 치고 있는 그 남자의 얼굴로, 신은 남자 · 백인 · 이성애자 · 비장애인의 형상으로 내려왔다. 신이 강림한 날, 퇴근 후 서울의 좁은 아파트 부엌에서 허겁지겁 밥을 차리는 영희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방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신의 얼굴을 보며, 신의 형상이 저러하니 나를 경애해달라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역시, 신은 남자로구나….”
『천국보다 성스러운』은 치밀한 세계관과 담대하고 전복적인 사고실험, 인간 본성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로 한국 SF 팬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김보영 작가가 신앙과 젠더, 종교와 페미니즘이라는 만나기 어려워 보이는 영역들을 신의 강림이라는 기이한 사건 속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서울 아파트의 비좁은 부엌 한구석에서 시작된 주인공 영희의 다섯 가지 상상은 광화문의 하늘과 그 아래 혼잡한 광장, 인류가 절멸한 먼 미래를 오가며 한국 사회의 일상화된 모순과 역사를 지배해온 ‘신성한 보편’에 ‘불경한’ 질문을 던진다. 절대자가 차별주의자라면, 우리는 그 절대성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이 책은 ‘적막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작가’로 알려진 변영근의 ‘오프닝 그래픽’으로 시작된다. 태양과 같은 광량을 내뿜으며 현신한 신의 모습을 몽환적 색감의 압도적이고도 서정적인 풍경으로 그려낸 변영근 작가는 소설의 흐름과는 다른, 그래픽으로만 이루어진 짧고 상징적인 또 하나의 서사를 완성했다. 한 권의 소설책 안에 변주된 이야기를 담아낸 만큼, 오프닝 그래픽은 본문 페이지와는 다른 별색 잉크로 인쇄된 색지를 삽입하여 제본했다. 두 작가의 협업은 책으로 묶이기 전 미술관 ‘전시공간全時空間’에서 먼저 공개되며 호평받았고, 『천국보다 성스러운』으로 정식 출간되었다.
[예스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