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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작가 김비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나나누나나>는, MTF트랜스젠더(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FTM트랜스젠더(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의 이야기다. 외모 때문에 자신의 남성성을 위협받는 주인공은 낮에는 헬스클럽 강사로, 밤에는 대리운전수로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스스로의 남성성을 위해 여성비하적인 발언조차 서슴지 않고 남성들 간의 우정에 희망을 거는 그이지만, 그조차도 받아주지 않는 편협한 세상은 쓰디쓴 조소를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눈썹달>은 평소 화장하기를 즐겼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여성으로 호적정정해달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과정을 아이러니하게도 신명난 소극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최근 가장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는 호적정정 문제를 한 집안의 문제로 끌고 들어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묘사하는 풍자가 일품이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비춰지는 <해수탕>은 성전환 한 트랜스젠더가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여탕을 가는 과정을 조망한다. 성전환 이후 몸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까지 여성으로서 자리하고 싶은 주인공은 고아원에 있는 한 소년에게 모성을 느끼며 그를 아들로 대하려 하지만, 아이는 갈수록 삐뚤어질 뿐이다. 트랜스젠더에게 모성은 있는가를 묻는 작품이다.
<입술나무>는 초등학생인 주인공 소녀가 빨간 치마를 입는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집 나간 어머니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트렌스젠더가 가지는 부성을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해수탕>과 묘한 상관관계를 형성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십대 청소년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다룬 <알버트링>은 정체성과 학교교육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 시대의 성적소수자 청소년들을 정면으로 다룬 문제작이다.
그 외에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만의 내면세계에서 방황하는 한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그린 공포소설 <토마토가 떨어진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늙은 동성애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묘사한 <그의 나이 예순넷>, 동성애자 형제의 서로 다른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충격을 주는 <참 다행이야>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