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달밤」은 화자가 애정을 가지고 아끼는 ‘소애’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화자는 ‘소애’가 먹고 싶다고 했던 육개장을 “인생 마지막 과제인 것처럼 정성을 다해서 요리”(16쪽)한다. 화자는 음식을 하는 중간중간, 소애에 대해 생각하는 중간중간, ‘언니’를 호명한다. 화자가 ‘언니’라고 부르는 ‘은주’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화자는 ‘은주’의 장례식장에서 먹었던 미지근한 육개장을 떠올린다. ‘소애’를 위한 생일상은 자연스럽게 ‘은주’를 위한 제사상과 연결된다. 화자가 두 사람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정성 어린 마음과 사랑을 표현하는 일”(해설, 김보경 문학평론가)이나 다름없다. ‘소애’와 ‘은주’는 화자를 가운데 두고 연결되어 있다. 화자와 ‘소애’의 관계는 ‘은주’와 화자의 관계와 유사하게 반복된다. ‘은주’가 화자가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처럼 화자는 ‘소애’가 음악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은주’와 화자의 사랑은 화자와 ‘소애’의 사랑 안에서 끊임없이 다시 재생되며 기억되고, 기록된다.
표제작 「방어가 제철」의 화자는 과거에 한 시절을 함께 경유했던, 오빠 ‘재영’의 친구 ‘정오’와 재회한다. ‘재영’과 ‘정오’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세 사람은 영화, 음악, 책을 공유하며 취향 공동체를 이루면서 외로움을 나눴다. ‘재영’과 ‘정오’가 대학에 가면서 관계가 소원해지던 중,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재영’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완전히 와해된다.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대에 가고 싶어 하던 화자는 자신의 미술 학원비를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던 ‘재영’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어느덧 삼십대가 된 화자는 지병으로 돌아간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정오’에게 연락해 ‘재영’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재회한다. 방어가 제철인 계절에 만난 ‘정오’와 화자는 방어를 먹는다. 「달밤」의 화자가 죽은 ‘은주’를 생각하며 제사상을 차렸던 것처럼, 이후 두 사람은 3년간 매 계절 만나 제철 음식을 먹으며 ‘재영’을 기억한다. 함께 식사를 하는 일상적인 의례를 통해 두 사람은 ‘재영’의 죽음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혼자서는 할 수 없던 애도를, 함께 완수한다.
[알라딘 제공]
-
183출판사문학동네(2021)ISBN 9788954679930“당신의 소설이 나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말하게 될까봐말할 기회가 영영 없을까봐 초조했다.” _황정은(소설가)아름답고 광포하고 쓸쓸한 소용돌이로 휘몰아치는최은미 소설세계의 눈부신 분기점정제된 문장을 차분히 쌓아올려 단숨에 폭발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작…
-
182출판사큐큐(2019)우리는 네가 원하는 삶으로 가봤으면 좋겠다우리의 지금을 응원하는 아홉 편의 퀴어 소설 퀴어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퀴어문학 출판사 큐큐는 일 년에 한 권 국내 작가들과 함께 한국 퀴어 문학 시리즈 '큐큐퀴어단편선'을 출간합니다. 첫 시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