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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을 앞두고 난생처음 화제의 연극무대에 출연하게 된 ‘채선’과 그 연극을 보고 단숨에 그녀에게 반한 이십대의 ‘지연’. 『우리가 통과한 밤』은 두 여자가 서로를 향한 이끌림을 강렬하게 느끼며, 혹은 그 마음을 애써 부인하는 사이 각자의 결핍이 서서히 메워지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언니가 나를 왜 끊어내지 못하나 생각해보세요.”
난생처음 화제의 연극 무대에 출연하게 된 채선과
그 연극을 보고 단숨에 그녀의 팬이 된 지연
더이상 누군가에게 무엇도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을 지나
내가 더없이 나인 것 같은 열기에 빠져들기까지 통과한 세 번의 계절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조명하는 연극에 출연하게 되었지만 그런 호들갑과는 달리 채선에게는 연극배우로서 무언가를 이루어야겠다는 욕망이 없다. 그저 마흔 살을 앞두고 일어난 작은 해프닝으로 넘겨버릴 뿐. 연극에 있어서도, 관계에 있어서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지 않던 채선의 삶은, 그러나 그녀를 찾아와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지연으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축으로 기울게 된다.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에 흥미가 없는 채선과 달리, 지연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지 아는 인물이다. 그 당당함으로 채선을 향한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지연은 그녀에게 맹렬히 돌진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건 채선과 지연이 스무 살 가까운 나이 차와 동성연애라는 이중의 압박 속에 자리해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에는 대개 두 인물을 둘러싼 ‘바깥’의 압력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리라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통과한 밤』은 그에 대해 길게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소설은 채선과 지연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가운데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 그 자체에 집중한다. 크리스마스쯤에 만나 이듬해 가을에 이르는 짧지 않은 세 번의 계절 동안 채선과 지연이 주고받은 그림엽서와 편지, 두 사람이 만들어 먹은 음식, 둘만의 놀이를 차곡차곡 그려나감과 동시에 그만큼이나 쌓여나가는 감정의 무늬를 세세히 묘사하는 것이다. [출판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