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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고독했던 레즈비언―조셉 셰리드 레퍼뉴의 「카르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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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숭아 댓글 2건 작성일 16-05-06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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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고독했던 레즈비언―조셉 셰리드 레퍼뉴의 「카르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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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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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문학작품에 등장하기 시작한 뱀파이어는 인간의 금지된 욕망, 그 중에서도 성적 페티쉬가 형상화된 크리쳐다. 뱀파이어가 무는 부위는 목이나 가슴 등 성감대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희생자는 피를 빨릴 때 성적 쾌감에 가까운 쾌락을 느꼈다. 뱀파이어는 항상 낯선 남자로, 희생자는 아리땁고 가녀린 여성으로 상정되어 있던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특히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그 시절, 뱀파이어와 희생자의 관계는 이성 간의 성관계를 연상시켰다. 시대의 한계였다.

?그러나 여기 지금, 레즈비언 뱀파이어 캐릭터인 카르밀라가 있다. 카르밀라는 문학작품 최초의 레즈비언 뱀파이어로, 이후 여성 뱀파이어 캐릭터의 원형으로 자리잡았다. 뱀파이어로 등장하니만큼 그녀의 행동은 기존 뱀파이어들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뱀파이어-희생자 관계는 「카르밀라」만의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외로이 사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숫기가 없는 편이었지만, 당시에는 분위기에 취해 말도 잘하고 대담해져 있었다(p.40)'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인 로라는 카르밀라를 처음 보았을 때 첫눈에 반한 사람 특유의 대담한 행동을 취한다. 하지만 카르밀라는 그보다 더 대담하고 노련하게 로라를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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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간 우린 어렸을 때부터 운명적으로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나 봐. 나는 너한테 이상하게 끌리는 느낌인데, 너도 그런지 모르겠어. 지금까지 내겐 친구가 한 명도 없었는데 지금 생긴 건 아닐까?"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맑고 까만 눈동자가 나를 간절히 바라보았다.

그녀에 대한 내 감정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말처럼 "끌리는 느낌"이었지만, 동시에 왠지 반감 같은 것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불분명한 감정 속에서도 가장 또렷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었다. 그녀는 내게 관심을 보이며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너무도 아름답고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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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과 동시에 반감을 느끼는 이유는 당연하다. 로라는 지금 그 당시에는 금지되어 있던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다음 페이지에서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젊은 사람들은 충동적으로 서로를 좋아하고, 심지어 사랑한다(p.43)'라는 문장으로 정당화한다. 이러한 로라의 반감은 작품 초반부에 계속되는데 딱히 특이한 부분은 아니다. 카르밀라의 격렬한 스킨쉽에 대한 감정의 흐름을 로라는 친절하게 '그런 기분이 지속되는 동안은 그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수 없었지만, 애정이 점점 커져 숭배가 되고 혐오가 되는 것이 느껴졌다(p.46)'고 설명한다. 그 당시 사회에서 지탄받을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의외로 이런 지점은 카르밀라가 뱀파이어라는 부분을 통해 쉽게 넘어가버린다. 카르밀라가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로라가 이런 감정을 갖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언뜻 보면 레즈비언 혐오처럼 느껴질 수 있는 지점이나, 한편으로는 동성애에 대한 고찰을 뱀파이어라는 장치를 통해 서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르밀라의 구애는 격렬하다. "사랑인 동시에 잔인한 환희(p.46)"라든가 "너는 내 거야. 내 것이어야 해. 너와 나는 영원히 하나야(p.47)"라는 문장에 로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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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야?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 같잖아. 그러지 마, 싫어. 나는 널 몰라. 네가 그런 표정으로 이상한 말을 할 때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단 말이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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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카르밀라의 모습은 로라의 시점에서 '남성적인 면모(p.48)'로 표현되지만 작중 카르밀라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기품 있고 세심하여 여성적이다. 그 당시 여성만의 질병처럼 여겨졌던 히스테릭한 면모까지, 카르밀라는 완벽하게 여성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로라가 카르밀라에게 느끼는 반감은 그 당시 레즈비언들이 겪었던 사회적 시선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자신의 여성을 노리는 낯선 남성이 형상화된 것이 일반적인 뱀파이어라면, 카르밀라 역시 레즈비언이 공포의 대상이었던 뱀파이어로 형상화된 것이다. 작중 내내 로라의 마을 슐로스에서는 많은 이들이 죽어나간다. '삼림 감시원의 딸(p.49)', '돼지 치는 아저씨의 젊은 아내(p.50)', '젊은 농부의 누이(p.54)' 등 희생자는 모두 여성이다. 누군가의 딸이나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누이로 호명되는, 남성에게 종속된 채로 호명되어지는 이들이다. 결말 부분에서 카르밀라의 처단자들이 모두 나이 든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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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로라에게 사랑을 말하는 카르밀라의 언어는 언제나 직설적이다. 이것은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특수한 크리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허용되는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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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밀라, 넌 너무 낭만적이야. 네가 하는 얘기는 하나같이 대단한 연애 소설 같아."

카르밀라는 말없이 내게 입을 맞추었다.

"카르밀라, 넌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해. 뭔가 애절한 사연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난 누구와도 사랑에 빠진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걸. 하지만 상대가 너라면 모르지."

달빛 아래 속삭이던 그녀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카르밀라는 흐느낌에 가까운 거센 탄식과 함께 수줍어하는 묘한 얼굴을 다급히 내 목에 파묻고는 떨리는 손으로 나를 잡았다.

그녀의 보드라운 뺨이 홧홧하게 내게 전해졌다. "자기야, 자기야." 그녀가 웅얼거렸다. "나는 네 안에서 살고 있어. 나를 위해서라면 넌 목숨까지 바치겠지. 나도 그만큼 너를 사랑하니까."

나는 깜짝 놀라 그녀에게서 물러섰다.

뜨거운 열기와 온갖 의미가 가득한 눈길로 카르밀라는 나를 읭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고 차가웠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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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카르밀라의 사랑론 역시 로라에게는 너무 버겁다. "내가 냉정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사랑은 언제나 이기적이지. 사랑이 깊을수록 더 이기적이야. 네가 그걸 모르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워. 저는 죽을 때까지 나를 사랑하며 함께할 거야. 아니면 저승에서까지 나를 증오하며 함께하든가. 난 타고난 성격이 냉담한 편이지만 무심한 건 아니라고(p.63-64)"라는 문장이나 "응, 아주 잔인하고 기이한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어. 사랑은 희생을 원하는 법이니까.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희생 말이야(p.64)"라는 문장을 볼 때 카르밀라가 원하는 희생이 무엇인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뱀파이어로서의 희생이라고 하면 역시 카르밀라에게 온전히 피를 빨려 사망하는 것이겠지만, 사실 카르밀라가 레즈비언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원하는 희생은 그게 아니다. 카르밀라는 로라가 자신의 동반자가 되길 원한다. 이곳을 떠나 단 둘이서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가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로라와 카르밀라가 영유하던 둘만의 생활은 슈피엘스도르프 장군의 등장으로 종말을 맞는다. 조카딸을 밀라르카, 혹은 카르밀라, 아니 미르칼라 카른슈타인 백작부인에게 잃은 장군은 카르밀라를 '악마(p.27)', '살인마(p.87)', '괴물(p.104)', '그년(p.114)'으로 호칭한다. 레즈비언인 카르밀라는 기존 사회의 인간이라는 위치에서 탈락한다. 카르밀라가 작품 내내 고수하는 고귀하고 품위 있는 태도와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또 이것은 작품 말미에서 주인공이자 희생자였던 로라가 카르밀라를 죽이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던 것과 연결된다.?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로라는 카르밀라를 자신의 기억 속 형태로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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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파이어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해 사랑의 열정과 비슷한 격정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인내와 책략을 구사함으로써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든 뒤 접근하지요. 자신의 열정에 싫증이 나고 유혹한 상대방의 생명력이 고갈될 때까지는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어요. 하지만 그럴 때는 식도락가의 섬세함으로 살인의 쾌락을 아끼고 절제합니다. 그래서 능란한 구애의 기교로 서서히 상대에게 다가감으로써 쾌락의 강도를 높여가지요. 이때는 상대에게서 연민과 동의 같은 것을 구하려고 안달하는 것 같아요. 보통은 상대방에게 거침없이 다가가서 힘으로 제압한 뒤 질식시키고 생명을 모조리 빨아들임으로써 축제를 끝냅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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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로라는 카르밀라에게 특별한 존재였음은 확실하다. 로라가 '내 증상은 삼 주째 계속되고 있었으나, 인근의 사망자들은 고작 사흘을 앓고 죽었으니 말이다(p.72)'라고 서술한 것을 볼 때나 슈피엘스도로프 장군의 조카딸도?오래 가지 못하고 죽었던 것을 볼 때 이 점은 더욱 확실해진다.?그리고 그것은 로라도 마찬가지이다. 희생자 포지션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라는 작품의 끝을 맺으며 이런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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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순간까지 카르밀라는 종종 모호한 모습으로 떠오릅니다. 때로는 장난기 많고 나른하고 아름다운 아가씨, 때로는 폐허가 된 예배당에서 몸부림치던 악마가 되어 나타나지요. 그렇게 꿈결처럼 상념에 잠겨 있노라면 종종 응접실 문가에서 카르밀라의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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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심한 동요를 일으킵니다. 귀하의 거듭된 청이 있었기에 몇 달 동안 신경 쇠약에 시달리면서도 이 글을 쓴 것이며, 그래서 용케 파멸에서 벗어난 이후로도 오랫동안 낮과 밤을 끔찍하게 만들고 독신의 삶을 소름끼치게 만든 극도의 공포를 다시 떠올린 것입니다(p.118)"라고 로라가 서술했던 문장과?서로 부딪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독신'이라는 단어에 주목해볼 때, 어느 쪽이 로라의 진심에 가까운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로라에게 있어서 카르밀라는 처음으로 만난 친구이자 황홀경을 맛보여 주었던 사람이었고 첫 구애자였다. 또한 그녀는 카르밀라의 최후를 전달받았을 뿐, 직접 목격하진 못했다. 어떤 의미로 레즈비언 흡혈귀였던 카르밀라는 로라에게 있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인물이 아니었을까. 당시 금기시되었던 동성애를 행했기 때문에 기득권을 쥐고 있던 나이 든 남성들에 의해 처단당했던 여성들의 모습이 카르밀라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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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셉 셰리드 레퍼뉴, 「카르밀라」,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09, p.40-41.

2) 위의 책, p.47.

3) 위의 책, p.60.

4)?위의 책, p.119-120.

5) 위의 책,?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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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숭아님의 댓글

박복숭아 작성일

하루종일 회사 업무를 보다가 늦게 작성했는데, 중간에 세 번이나 날려먹어서 더욱 늦어졌습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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